주한 덴마크 대사_토마스 리만

“다시 20대가 된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리만 대사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해외 경험’이라고 답하면서 교환학생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지원해 1년만 해외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해외생활은 새 환경에서 새 자극을 받고 새 시각을 얻는, 일생일대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그의 조언을 듣는다.

 

코펜하겐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부터 덴마크 외교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산행정부처 과장, EU 정무부처 과장, EU 조정부처 부장 등 요직을 거쳤으며, 주 스웨덴 덴마크대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했다.
코펜하겐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부터 덴마크 외교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산행정부처 과장, EU 정무부처 과장, EU 조정부처 부장 등 요직을 거쳤으며, 주 스웨덴 덴마크대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했다.

‘덴마크 대사의 집무실은 어떤 모습일까?’

토마스 리만 대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덴마크 대사관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집무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기자가 그동안 만난 주한 외교관들의 책상은 서류와 책, 컴퓨터, 필기구 등이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인지 지나치게 화려한 공예품이나 장식물은 찾기 어려웠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리만 대사의 집무실도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앉는 부분이 푹 파인 북유럽식 의자, 우리에게도 친숙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포스터….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구석에 걸린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포스터였다. 리만 대사가 말했다. “저는 북한 대사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지요. 분명히 한국과 같은 민족이 살고 있지만, 정치체계가 다르다 보니 분위기나 사람들의 행동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덴마크 국민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며, 북핵은 평화 유지에 역행하는 행위이자 한반도와 아시아에 큰 위협’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이목을 끈 건 리만 대사의 뒤에 걸린 큼지막한 선박 사진이었다. ‘대체 무슨 배이기에 안데르센 포스터보다 큰 걸까?’ 리만 대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 저 배는 6·25전쟁 당시 덴마크 정부가 한국에 파견한 병원선 ‘유틀란디아 Jutlandia’ 호입니다. 배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까지 파견해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해 주었지요. 물론 민간인들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유틀란디아는 덴마크로 돌아갔지만 의료진들은 그대로 남아 의료지원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도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세워진 것이죠.”

 

‘북유럽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은 덴마크 올보르 시내에 위치한 음악당(출처:덴마크관광청 미디어센터)
‘북유럽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은 덴마크 올보르 시내에 위치한 음악당(출처:덴마크관광청 미디어센터)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1951년 1월 덴마크를 떠나 파견되어 1953년 10월 덴마크로 귀환하기까지, 유틀란디아에서 치료를 받은 UN군 장병은 4,981명, 민간인은 수만 명에 이른다. 유틀란디아의 파견은 토마스 리만 대사 개인에게도 의미가 깊다. 바로 그의 할아버지 ‘칼리만’이 유틀란디아의 파견에 관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칼리만은 1939년 소련-핀란드 전쟁에 참전한 외과 전문의였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몇년 뒤 6·25전쟁이 터지자 덴마크 정부는 칼 리만에게 자문을 구했다.

‘한국에 병원선을 파견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의 답변은 ‘Yes’였고, 유틀란디아는 2년 9개월 동안 세 차례나 덴마크를 오가며 수급해 온 약품과 의료장비로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칼 리만의 손자가 이제는 덴마크 대사가 되어 한국과 덴마크의 관계 발전과 교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 길이 130미터, 폭 19미터에 네 개의 수술실과 356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42명의 간호사를 뽑는 데 4천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출처:외교부).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 길이 130미터, 폭 19미터에 네 개의 수술실과 356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42명의 간호사를 뽑는 데 4천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출처:외교부).

“유틀란디아는 양국 관계가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굳건히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지리적으로는 먼 두 나라가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죠.”

많은 사람들이 덴마크 하면 동화작가 안데르센, 디자이너 핀율, 도자기 로얄코펜하겐 등을 떠올린다. 리만 대사의 설명에 ‘이제는 유틀란디아를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틀란디아는 1965년 해체되어 이제는 사진으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반갑게도 지난해 코펜하겐의 주 덴마크 한국 대사관 내에 ‘유틀란디아 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유틀란디아와 한국에 대한 덴마크 국민의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월 1일 서울보인고교에서 초청 강연회를 마치고(출처:덴마크대사관 트위터).
지난 9월 1일 서울보인고교에서 초청 강연회를 마치고(출처:덴마크대사관 트위터).

새 환경에 노출돼야 새 자극을 받고 새 시각이 생긴다

우리 나이로 쉰셋인 리만 대사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덴마크 외교부에 입부한, 25년 경력의 노련한 외교관이다. 외교부나 국제기구, 글로벌기업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은 대학생들의 열망이 커져가는 요즘, 그가 생각하는 외교관의 자질은 무엇일까?

“우선 대학을 졸업하거나 석사를 취득하는 등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국제무대에서 일하겠다는 포부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자기 나라에만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책으로 치면 한 페이지만 읽은 사람과 같습니다. 외국으로 나가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 자극을 받을 수 있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요.”

어려서부터 유난히 호기심이 강했기에 다른 문화에 대한 적응도 빨랐다는 리만 대사. 한국은 아일랜드와 스웨덴에 이어 그의 세 번째 해외 근무지다. 외교관이라면 해외에 부임하기 전 그 나라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하기 마련이지만, ‘사람이야말로 책이나 자료보다 더 좋은 정보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험만큼 좋은 지식은 없지요. 서울은 천만 명 이상이 모여 사는 한국의 수도이지만, 그렇다고 서울에만 있어서는 한국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지방도시를 찾고 학교나 정부기관을 방문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게 최고의 경험이자 가장 큰 정보원이거든요.”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리만 대사의 행보는 실로 왕성하다. 덴마크 관련 문화예술 행사나 상품 홍보 행사는 물론, 각종 세미나나 컨퍼런스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한다. 일선 중고등학교 학생 및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에도 열심이다.

대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다양한 외부 스케줄까지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저 혼자서 모든 업무를 다 처리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각 분야별 전문가인 대사관 직원들이 저를 돕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저희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런 직원들을 저는 100%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들 사이에서 조율자communicator 역할을 하지요. 저보다 더 열심히,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여름 휴가기간, 딸 소피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리만 대사(출처:덴마크대사관1 트위터).
여름 휴가기간, 딸 소피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리만 대사(출처:덴마크대사관1 트위터).

두 나라 젊은이가 비전을 공유할 미래를 꿈꾼다

그는 ‘일하다 보면 피곤하고 힘들 때도 많지만,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양국 관계가 증진될 생각을 하면 힘이 솟는다’ 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 내내 그의 표정은 여유롭고 밝았다. 실제로 두 나라 사이의 교류는 매년 활발해지는 추세다. 두 나라 간 유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방한했을 때는 우리 정부와 산업, 보건, 금융 등 총 10개 분야에서 협력을 도모하는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이 MOU 체결을 그간 대사로서 수행한 업무 중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는다.

9월 12일은 리만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지 만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잊지 못할 추억도 많이 쌓았다’고 말한다. 2년 전 에는 늦둥이 외동딸 소피도 얻었고, 대사관저 근처의 북한산 둘레길은 그가 즐겨 찾는 산책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추억에만 머물지 않고 2년 앞을 향하고 있다.

“2019년은 한-덴마크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에서도 60번째 생일은 회갑이라고 해서 크게 생각하잖아요? 2019년을 한-덴마크 문화관광의 해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한국에선 덴마크 문화를, 덴마크에선 한국 문화를 알리는 행사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고요. 한-덴마크 유학생 모임도 결성해서 두 나라 젊은이들이 비전을 공유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후세에 물려주고 싶습니다.”

 

물과 공기가 깨끗한 청정국가 덴마크에서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쉽게관찰할 수 있다. 덴마크 중부의 도시 실케보르에서 찍은 밤하늘의 모습(출처:덴마크 관광청 미디어센터).
물과 공기가 깨끗한 청정국가 덴마크에서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쉽게관찰할 수 있다. 덴마크 중부의 도시 실케보르에서 찍은 밤하늘의 모습(출처:덴마크 관광청 미디어센터).

리만 대사가 소개하는 덴마크 이모저모

갭이어
덴마크의 청년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 1~2년 동안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자원봉사, 여행 등을 하며 인생을 설계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리만 대사 역시 대학 입학 후 1학년 과정을 마친 뒤 이스라엘에서 그곳의 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하며 6개월을 보냈다.

휘게 라이프
휘게 라이프란 단순하고 소박한 덴마크식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덴마크인들은 가
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거나, 양초를 켜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할 때 등 일상 속 사소한 행복을 중시한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만의 기쁨을 찾자는 것이다. 덴마크는 최근 UN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행복지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친환경국가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원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여느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물이 깨끗해서 정수기를 쓰지 않고 수돗물을 바로 마실 수 있다. 공기도 한국의 대도시보다 훨씬 깨끗하다. 덴마크의 이같은 친환경국가로서의 면모는 먹거리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한국인이 밥을 먹듯 덴마크인은 ‘흑빵’을 주로 먹는데, ‘섬유질이 많아 건강에도 좋은 만큼 한국인 여러분도 꼭 드셔보시길 권한다’는 게 리만 대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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