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공부를 하러 북경에 간 지 10년이 되어 간다.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올 때마다 한국은 ‘여유가 없는 나라’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내 눈에 비친 한국은 빠른 것과 열심히 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올 때면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찾는다는 기대감에 들떠 오지만 며칠 못 가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여유를 잃어버리곤 한다.

이렇듯 내가 여유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장난기가 많고 굉장히 산만한 아이였다. 그런데 미술 시간만 되면 자리를 뜨지 않고 앉은 채 오랫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칭찬도 자주 들었고, 미술이 좋아서 계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6학년 때 미술선생님이 예술중학교에 가라고 권하셔서 4개월 동안 하루에 네 시간만 자고 그림만 그려 합격했는데, 합격증과 함께 스트레스성 아토피를 얻었다. 예술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느라 나는 시험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름대로 실력을 자신했던 터라 자부심은 점점 자만심으로 변해갔는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두 번 떨어지고 나서야 조금 겸손해지는 듯했다.

실패를 맛보고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가르쳐주신 중국인 선생님을 따라 북경에 갔다. ‘중국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그야말로 도피유학’이라는 생각에 그림 한 장 한 장을 그릴 때마다 온몸이 땀에 젖을 만큼 열심히 했다. 이를 악물고 준비해서인지 북경 중앙미술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상처 입은 내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지만 사실은 간사한 내 자신에게 또 속는 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는 특별했다. 나 또한 잘하려고 노력했고 잘해야만 했는데, 이러한 굴레 속에서 미술은 점점 어려운 것이 되어갔다. 대학교 2학년 때 시골 산속에서 3주 동안 그림을 그리는 수업을 받았다. 4월이었지만 이상기온으로 눈이 내리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내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나는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밖에 나가 봐두었던 곳에 자리를 폈다. 캔버스는 나무에 묶어 왼손으로 잡고 이젤과 팔레트는 두 발로 밟아 지탱했다. 그리고 먼 산에 구름 그림자가 지는 풍경을 그렸다. 바람이 세서 구름이 20초 정도 산 위에 그림자를 비추다가 사라졌는데, 구름이 오기를 웅크리고 기다리다가 구름이 산을 지나는 찰나에 흥분해서 색을 칠했다.

[자유의 조건, Oil on canvas, 50×60cm, 2017]
[자유의 조건, Oil on canvas, 50×60cm, 2017]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이 지나면 추위를 이기려고 술 한 모금을 마시고 다음 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문득 ‘내가 이곳에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 답은 하나였다. 경쟁심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잊고 지냈는데, 자연 속에서 캔버스와 단둘이 마주해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한 그림을 그렸다. 숙소로 돌아와 완성된 그림을 다시 봤을 때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의 차이를 느끼는 시점이자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긴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돌아가기 싫었다. 졸업작품을 교수님들이 바라는 대로 ‘잘 그린 그림’으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더 이상 그런 작품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작품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세상에 없는 독특한 작품을 내놓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작용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6개월 가까이 붓을 잡지 못했다. 무언가 그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막상 그리려 하면 모든 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극에 달해 못 그리는 지경에 이르자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일단 눈에 보이는 걸 그려보자’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 우리 집 현판 그림이었다. 한옥인 우리 집의 현판을 보고 자란 기억이 나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렸다. 늘 머리를 싸매고 창작해 고심하며 그리다가 그냥 그리는데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그린 그림이 무척 독특했다. 허무하기도 하고, 긴 고민 끝에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흥분되기도 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산속에서처럼 내 자신이 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내 욕심, 사람들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자 ‘자유’를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 그림을 그린 지 2년이 지난 요즘, 진정한 해방감은 자신에게서 벗어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 <자유의 조건>이라는 작품은 내가 하는 작업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 유화에서는 보통 흰 물체를 그릴 때 흰색 물감을 사용한다. 그런데 나는 흰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검은색 물감과 기름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작업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됐다. ‘흰 종이에 검은색 물감으로 흰색 물체를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모르나 이것이 자유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검은색은 나, 흰색은 자유다. 진정한 자유가 나에게는 없음을 이 그림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정성들여 칠하면 칠할수록 흰 부분은 덮여가고, 내가 손대지 않은 곳이 가장 밝고 흰 부분으로 남는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길도 마찬가지다. 내게서 나를 뺄 때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기에 ‘1-1=0’은 자유의 기본공식인 셈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1에서 1을 빼면 0이 되는 걸 누가 모르냐’고 묻기도 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좀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인생 도화지에서 나를 빼기가 그리 쉽더냐’고 되묻는다.

 

이상화
서울예고, 북경 중앙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 유화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입시와 경쟁, 다른 사람을 의식해 그림을 그리면서 심리적인 고통이 컸던 그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갈망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본지에 작품을 하면서 자유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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