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특집 '교류'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간 단원들이 마음을 열고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에 자신을 돌아보며 주위 사람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행복한 젊은이가 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걸어가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해외봉사 포스터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해맑게 웃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문구는 내 마음에 새로운 도전정신을 불어넣었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매진한다. 중요한 시기였던 그때에, 나는 떠나고 싶었다. 26년 동안 쉼 없이 일과 학업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일 년 정도 마음의 여유와 의미 있는 활동들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할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런데 졸업 후 곧장 취업을 하길 바라셨던 부모님은 해외봉사를 반대하셨다. 하지만 나는 해외봉사를 통해 얻을 체험담과 스펙이 취업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무작정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지원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섭섭하셨는지 내가 출발하는 날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해외에 가보는 거라서 긴장도 되고 한편으로는 들뜨기도 했다. 한국에서 힘든 삶을 다 잊고 그저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고 지부장님과 단원들이 함께 모임을 가졌다.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지? 뭘 말해야 내 이미지를 좋게 볼까?’ 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말았다. 하루하루 지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말하는 단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의아했다. 나중에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감추는 내 모습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에, 혼자 남으신 친할머니를 모시는 일로 친척들과 잦은 분쟁이 있었다. 서로 모시지 않으려는 이유는 바로 할머니의 성격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온갖 심부름을 시키고 만일 들어주지 않으면 윽박지르는 분이셨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자주 다투셨다.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자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할머니 때문에 많이 지치셨다. 아버지도 중간에서 난처해 하셨고 그 원망을 어머니에게 풀다보니 부부싸움으로 번져 내가 성인이 될 즈음 아버지는 집을 나가셨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렇게 나가버린 아버지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별거 상태시다.

중학교 때 사춘기가 오면서 집안에 대한 불만과 내 안에 있던 외로움들이 반항과 방황으로 이어졌다.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고 매일 PC방, 당구장을 오가며 지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 집이나 밖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런 나 때문에 부모님의 속은 썩을 대로 썩었고 부모님과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나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가정이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약점이었다. 이런 힘든 가정사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혼자 속앓이를 하느라 내 마음은 많이 피폐해 있었다. 항상 즐거운 척, 좋은 사람인 척하는 내 자신에 대해서 신물이 났다. 그런데 같이 지내는 단원들은 사소한 부분부터 모든 것들을 다 이야기했다. 하루는 여자 단원들끼리 대화하는 걸 들었다.

“네가 나보다 현지인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거 같아서 섭섭해!”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당연히 네가 더 좋지~”

유치하고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솔직하게 꺼내놓는 걸 보면서 너무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저 애들은 어떤 말이든 다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단원들 중에는 나보다 훨씬 좋지 않은 가정환경과 큰 상처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런 약점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비난 받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소한 한마디와 공감이 서로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었다.

하루는 지부장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대영아, 너는 모임시간에 왜 이렇게 조용히 있어?”

“사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봐요. 다들 감추고 싶은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데 저는 못 하겠어요….”

“대영아.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말해봐. 조그만 부분부터 이야기를 꺼내보면 돼. 가린다고 네 상처와 약점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야. 네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입 밖으로 꺼내서 이야기해야 해. 무슨 말이든 상관없어. 너 자신만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봐.”

지부장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단원들을 보면서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입을 여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숨기는 것에 지쳐있었던 나는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튿날 모임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얘지고 진땀이 났다. 그래서 그냥 입을 벌려 나오는 대로 말했다. 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자 봇물처럼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저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항상 외로웠어요. 부모님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요. 나를 무시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단원들을 보며 나도 이야기를 하면 아픈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했다.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말이 많아진 사람이 되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예전의 나처럼 소통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새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돈 없이 떠나는 무전여행을 일주일 동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브라이버그Vryburg라는 도시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관념’이라는 주제로 마인드강연을 준비했는데 나와 같은 마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애씁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약점은 드러낼수록 더 빨리 치유가 됩니다. 마치 의사에게 환부를 드러내야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지요. 우리가 가진 어려움과 두려움이 사실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은데 혼자 갖고 있어서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드러내세요. 드러낼수록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워지면 행복해집니다. 진정한 소통을 하면서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하길 바랍니다.”

강연이 끝난 후에 몇몇 학생들이 나를 찾아와 상담해달라고 하면서 그들이 가진 아픔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났는지 이야기해주었다. 특별한 위로나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마음속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어느새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무척 기뻐했다.

나 또한 행복해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그 친구들과 SNS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남아공이 준 변화의 선물

무전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나는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일 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 왔던 아버지께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버지,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무섭고 대하기가 힘들었어요. 어머니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 불만도 굉장히 많았고요.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사고를 친 적도 많았어요. ‘왜 우리는 평범한 가족들처럼 살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 불만들 때문에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서 정말 죄송스럽기도 했어요. 아버지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가 이해해 드리지 못하고 속 썩여서 죄송해요.”

무뚝뚝한 아버지는 편지를 보시고 남아공에 있는 내게 자주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연락하면서 만나서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남아공으로 출국하는 날까지 냉전 상태였던 나와 어머니는 서로에 대해 섭섭했던 부분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서운한 마음을 풀었다. 지금은 어머니와 사소한 일들까지 의논하며 다정하게 지내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도 좋아지리라는 기대감에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과도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술 없이도 진솔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배운 새 마인드를 가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시 돌아가서 살고 싶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프리카에서는 잘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학교에 못 가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어린이들이 정말 많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일거리도 제공해 주고, 마음의 세계를 가르쳐 주어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이대영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진솔하게 대화하고 교류하는 법을 배웠다는 이대영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광고를 기획하고 싶다는 꿈 많은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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