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정상혁 보은군수

인터뷰를 하기 위해 군수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각종 문서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상이었다. 책상 옆에는 여러 단체, 기관과 협약식을 맺는 장면의 액자가 즐비했고, 벽면 군데군데에 보은군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책상 옆 옷걸이에 다소곳이 걸려 있는 수수한 점퍼 한 벌. ‘아, 이렇게 일하시는구나!’ 정상혁 군수의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요즘 11개 읍·면을 순방하신다고 들었는데 무척 바쁘시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쁩니다. 어차피 각오하고 달려든 거니까요. 제가 41년생입니다. 두 달 전에 대학 동창들을 만났는데 몸도 마음도 많이 늙었더라고요. 희망이 없고 부정적인 생각 속에 젖어 있고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저와 이야기 나누면 기氣를 받아 갈 겁니다.(웃음)

세상일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전부 그렇게 보이지요. 바쁘지만 즐겁습니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행복하게 삽니다.

 

그래서인지 군수님이 무척 건강하고 젊어 보이십니다. 지난 5월, 보은 스포츠파크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하고 온 젊은이들의 동문회가 열렸는데 군수님이 축사를 하셨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 다녀오시면서 느낀 점들을 말씀하신 대목이 감명 깊었습니다.

네. 재작년에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등 세 나라를 방문했는데 좀 놀랐습니다. 어느 마을에 가서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으려고 차를 세웠는데 저쪽에서 아주머니들이 아이 대여섯 명을 업고, 안고, 끌고 오는 거예요. 아이들 눈에는 눈곱이 끼고 콧물이 흐르고 파리떼가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을 보고 미소를 지어요. 그 모습을 보고 밥을 먹을 수 없어서 제가 같이 간 사람들에게 ‘우리 밥 한 끼 굶읍시다!’ 해서 일행 22명의 도시락을 사람들에게 모두 주고 왔습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눈물겨운 장면들을 많이 봤습니다. 집이나 살림이 열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요. 생활이 비참하지요. 그런데도 우리가 지나가면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듭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늘까지 인생을 바로 살아왔는가’ 생각하고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해외에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산다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좋은 것도 보고 안 좋은 것도 보고 사고하면서 실제 삶에 적용해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정신이에요. 살아서 은혜를 갚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갚는다는 의미죠. 혼란한 이 시대에 티끌만한 은혜라도 태산같이 여기면서 항상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살자는 게 제 인생관인데, 하늘에 감사하고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뭘까 생각하다가 인재를 기르는 일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삼년산성. 보은 오정산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쌓는 데 3년이 걸려서 삼년산성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삼년산성. 보은 오정산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쌓는 데 3년이 걸려서 삼년산성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투머로우>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인성교육이란 걸 따로 하지 않았어도 대가족이고 가난하다 보니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저절로 자라났는데, 요즘은 청소년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부모님들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천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면서도 마음 바탕에 기본적인 철학이 형성돼 있었어요. ‘내가 잘못 살면 내 인생도 망가지고 내 후손도 잘못된다’ 하는 철학요. 말로 교육을 하신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신 거예요. 저도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자녀들에게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살아라. 그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자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요즘은 출세, 성공을 강조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자녀들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가도록 기다려줘야 하는데 부모의 욕심을 주입하지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주위가 특별히 혼란하지 않으면 살면서 배우고 체득하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인성입니다. 자연에서 배우고 농사지으며 배우지요. 농사는 욕심 가지고 안 됩니다. 하늘이 가뭄을 주면 망하죠.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우리 부모님들은 하늘을 두려워하고 사신 거예요.

 

해마다 중·고등학생들을 미국, 북유럽에 직접 데려가셔서 체험학습을 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늘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싫어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자는 마음으로 지내왔지요. 두려움은 없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자란 환경에 익숙해져서 살아가는데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습관은 성격이 된다고 하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넓게 보고 멀리 나는 사람들은 사는 게 다르고, 남이 못했으니 나도 못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가능성을 보고 사는 사람이 인재입니다. 제가 학생들을 외국에 보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결국 사람이 모든 걸 하니까요.

군수가 되어 살펴보니 장학금을 성적이 좋은 인문계 학생들 위주로 주고 있어서 시혜의 폭을 대폭 넓혔지요.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누가 장학금 주면 감사해서 그분에게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공부했잖아요.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장학금을 주기보다 영어를 가르치고 해외로 보내서 시야를 넓혀주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상혁 군수는 농촌 학생들이 도시 학생들에 비해 경쟁력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자주 학생들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한탄하지 마세요. 꾀꼬리 우는 곳에서 꽃 냄새 맡으며 사는 사람과 시멘트 빌딩 속에서 사는 사람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걸으며 저수지도 보고 들꽃도 보고 열매도 따먹고, 걷다 힘들면 그늘에서 쉬고. 시험 잘 보는 게 성공이 아닙니다. 인간이 얼마나 성숙했느냐가 중요하죠. 농촌에는 아직까지 예절이 살아있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캠프를 시작하신 거군요?

네. 여름 방학 때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학생 각 50명을 뽑아 충북대학교 기숙사와 시설들을 이용해 군 예산 1억 원을 들여 영어캠프를 합니다. 학생들이 15일 간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원어민 교사와 영어로만 생활하는데 휴대폰 사용도 금지하고 용돈도 마음대로 못 쓰게 합니다. 제가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한번 보러 가면 학생들이 너무 즐거워하고 좋아하죠. 재정이 열악한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들을 외국에 데려갈 계획을 세웠어요. 새로운 세계에 가서 보고 듣고 배우면 큰 인물로 자랄 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중학생은 미국에 가고 고등학생은 북유럽에 다녀오는데, 중학생들은 LA의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에서 수업도 받고 LA 북부한인회에서 홈스테이를 제공해줘서 교포 가정에서 지내는 경험도 합니다. 교포들이 맨손으로 미국에 이주해서 어려움을 겪으며 영어를 배우고 일자리를 얻어 성공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생들이 가능성과 희망을 느낍니다. ‘아, 나도 되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지요.

 

226개 시·군·구청 중에서 보은군만 이런 사업을 하는데 제가 군수 할 때까지는 계속 할 겁니다. 해외 체험학습을 시키는 일은 군 예산으로 하지 않아요. 출향 인사들과 보은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후원하지요. “군수님, 참 좋은 일 하십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안 하는 일 아닙니까. 저희들은 아주 어렵게 공부했는데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다니 돕고 싶습니다.” 하며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지요.

 

학생들이 해외에서 경험하고 오면 확연히 달라지지요?

완전히 변합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생기고요. 목표가 생기는 거죠. 부모님들 여러 분이 제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외국에 다녀온 학생들은 모임을 만들어 한번씩 만나는데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하죠.

그런 학생들을 보는 맛에 일합니다. 인재를 기르는 게 가장 큰 보람이지요. 시골 아이들은 공부 좀 잘하면 의사하고 교사하려고 하지 다른 분야에 눈을 못 떠요. 꼴찌해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는 관심도 못 갖고요. 학생들이 외국에 다녀와서 말하는 게 달라지고 하고 싶은 게 생기는 걸 보면 모두 놀랍니다. 몇 백만 원 장학금 주는 것과 비교도 안 되죠. 인생이 달라지니까요. 특히 학생들이 저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제멋대로 못해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말도 들어야 하고 예절, 양보심도 배워야 하죠.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시간이에요.

 

6만 평 부지에 건설된 스포츠파크에는 야구장, 축구장, 체육회관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6만 평 부지에 건설된 스포츠파크에는 야구장, 축구장, 체육회관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군수가 되어 군민을 위해 일하실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셨나요?

저는 보은군 회인면에서 태어난 촌놈이에요. 하늘이 300평인 마을이죠. 학생이 모두 17명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어요. 여기는 보은 출신 유권자가 50퍼센트인데 보은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고 인지도도 약한 제가 군수를 두 번씩이나 하는 거예요. 군수 되기 전에 저를 알리려고 먼저 도의원을 4년 간 했어요. 그때 도청, 시청 공무원들이 저와 일해 보고 정상혁이 보은 군수가 돼야 한다며 선거운동을 다 해주었어요.

사실 저는 군수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어요. ‘보은에서 오래 살면 나중에 국회의원이나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뜻하지 않게 주위 사람들과 선배들이 제안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밀어줄 테니 정 사장이 보은에 와서 군수하세요. 보은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어요.”라고요.

그동안 저를 지켜보면서 성원해 주고 도와주고 함께해 준 사람들이 제게 군수로서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군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도 주었고요.

 

보은군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 변동추이를 5년 단위로 분석하는 ‘한국지방자치경쟁력지수’종합경쟁력 부문에서 전국 82개 군 중 2위를 기록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는 것으로 평가됐다(2015년 말 기준). 이러한 결과는 스포츠파크 조성으로 인한 스포츠인프라 구축, 도로 개량사업, 보은 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기업유치 등의 성과가 반영된 것이다. 한편 보은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대추는 일본과 미국 등으로 수출되어 우수한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전국 대표축제로 선정되기도 한 ‘보은대추축제’는 매년 성황을 이루며 개최되고 있는데, 올해는 10월 13일~22일까지 열흘 간 보은읍 뱃들공원 일원에서 개최된다.

 

정 군수님은 늘 도전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스포츠파크를 조성한 일 역시 큰 도전이었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추진하셨나요?

군수가 되고 보니 군민들이 하나같이 패배감과 열등의식에 빠져 있더군요. ‘누가 군수가 되든지 보은은 발전할 가능성이 없어. 똑똑한 사람, 돈 있는 사람 다 빠져나갔고….’ 하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고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지역발전은 다음 문제고 고정관념부터 깨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러다 스포츠와 문화예술 분야를 활성화하면 지역에 생기가 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포츠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스포츠 대회가 주로 열리는 지역을 찾아가 이틀을 지내면서 조사했습니다. 전지훈련 장소도 보고 식당, 여관 등 숙박 시설도 자세히 살펴봤지요. 시설을 갖춘 곳이 몇 군데 안 되어서 선택의 여지가없다 보니 대부분 바가지를 씌우거나 여건을 개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은에서 스포츠 단지를 조성해 각종 대회를 유치하고 전지훈련 장소를 제공하면 보은이 발전하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그래서 당장에 여관,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을 불러 모아 “손님을 모셔올 테니 군수의 허락 없이 밥값, 방값 인상하면 안 됩니다!” 했지요. 모두들 좋다고 했습니다.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장사씨름대회는 30년 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해왔는데 현재는 보은에서 하고 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씨름대회 유치비용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는데 도지사님이 제 뜻을 받아주시면서 지원해 주셨어요. 여자 축구대회를 하자고 했을 때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은 인구가 3만5천 명이 안 되는데 몇 명이 구경하러 오겠냐며 저를 말렸지요.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말라고 두 시간을 이야기해서 축구대회를 허락받았습니다. 돈도 없었고 조건도 안 좋았지만 제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다. ‘왜 안 되냐!’ 하는 믿음 말이죠. 막상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6,000석 운동장에 7,450명이 왔어요. 제가 동원했죠. 경품도 줘가면서요.(웃음) 난리가 났었습니다. 주민들이 TV 중계에도 나오고 얼마나 신기합니까. 그런데 기존 스포츠 시설로는 한계가 있어서 공동묘지 부지에 현재의 스포츠파크를 조성하게 된 겁니다.

 

보은대추 축제는 전국 최고의 농산물 축제로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보은대추 축제는 전국 최고의 농산물 축제로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포츠파크를 조성할 때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 완공했고 좋은 결과를 얻고 계신 걸로 압니다.

스포츠파크 부지는 1910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됐던 곳입니다. 묘지 연고자가 3,000명이나 돼서 이걸 진행하면 군수는 더 이상 못할 거라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못하게 되면 안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제가 여관을 하려는 겁니까, 식당을 하려는 겁니까? 제가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군민들 잘살게 하려는 데 협조해 주세요.” 했더니 사람들이 큰소리 한번 치지 않고 묘지를 다 정리하고 공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작년 12월에 완공했는데 올해 2월부터 서울 방배초등학교 야구부가 전지훈련을 하러 왔고요. 그걸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훈련을 하러 와서 주말마다 사람들이 들끓어요. 보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고교야구 주말리그, 대학 리그전, 사회인 야구대회 등 많은 경기를 치르다 보니 식당들도 꽉꽉 찹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된다고 믿으면 길이 열리지요. 부족하면 의논하고 아이디어 내고 또 내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군수가 되고 7년 동안 앉아서 도장만 찍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찾아가서 대화하고 설득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젊은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말라’는 겁니다. 큰 꿈을 가지고 먼 곳을 향해 가십시오.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로 가려고만 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한번 개척해 보십시오. 도전하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대한민국 기초단체장 226명 중에 제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아요. 70세가 넘어서 군수하면서 이렇게 즐겁게 사는 사람 봤습니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군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적인 데서 긍정적인 데로, 어두운 데서 밝은 데로, 불가능한 데서 가능한 데로 변화시키는 분 말입니다.

 

제가 인재를 기르는 일에 손을 댔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훗날에도 남을 일이지요. 그들이 제 뜻을 이어가리라 믿습니다. ‘야! 그 시골 출신 군수가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어! 우리들 마음에 희망을 심었고!’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한다면 ‘한평생 길을 가며 양보해도 100보를 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에 너무 성급하게 가지 말고 양보하며 오래 준비하고 때로는 참기도 하면서 가길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큰 과일을 땁니다.

무던하게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티끌만한 은혜라도 태산처럼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살면 그 사람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리라 믿습니다.

 

보은 報恩

신세 짓는 거야
은혜 받는 거지
받은 것 되갚는 게 보은이라구

티끌만한 은혜도 태산같이 아는 거
그게 사람 도리라구

베푸는 게 곧 받는 거란 걸 알아야해
마음이 어질어야 베풀 수 있어

잘난 체 하지 말고 겸손해야지
잘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누굴 원망하지 말라구

잘되면 잘되는 대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 돼

-정상혁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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