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는 지난해 아프리카 잠비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지금은 복학해 학교생활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잠비아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볼 때면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길을 가다 아프리카 사람이 보이면 잠비아에서 사귄 현지 친구들 생각이 절로 난다.

 

 

상대의 마음 살피는 법을 가르쳐준 ‘심바 자매’

잠비아에 간 나는 현지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 교실을 시작했다. 학생은 8명 정도였는데, 다들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법도 잘 몰라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했다. 그 중 여학생 둘은 쌍둥이였는데, 나는 그들을 ‘심바 자매’라고 불렀다.

수업은 아침 10시 30분부터 시작했는데, 심바 자매는 늘 지각을 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씩 늦었다. 참다 못한 나는 어느 날, 두 자매를 불러 야단쳤다.

“수업도 잘 따라오지 못하면서 항상 늦으면 어떡해! 다음에 또 늦으면 수업 아예 못 들을 줄 알아!”

언성을 높이는 내게 그들은 알았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심바 자매의 지각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더러는 수업시간보다 일찍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심바 자매를 보니 마음에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심바 자매가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내일 수업 끝나고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와줄 수 있어요?”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다음 날, 수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자매 중 한 명이 보이질 않았다. 일이 생겨서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는 남자단원들과 같이 출석한 자매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깝다는 집은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자매가 우리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이렇게 말했지만, 그 ‘조금’이 얼마큼인지 알 수 없었다. 더운 날씨에 슬슬 짜증이 올라올 즈음, 문득 심바 자매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 컴퓨터를 배우러 매일 오는구나. 그럼 몇 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 걸까?’ 나는 항상 수업에 늦는 그들을 부지런하지 못하다고만 여겼다. 왜 늦는지 이유를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1시간 30분짜리 컴퓨터 수업을 듣기 위해, 매일 왕복 2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온 심바 자매…. 그 거리를 걸으며 나는 처음으로 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1시간쯤 걸었을까? 드디어 집에 도착했고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심바 자매의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셔서 먼 지방에서 산다고 했다. 어머니와 심바 자매, 어린 동생이 함께 살았다. 오늘 결석한 한 명은 어머니 대신 가게를 지키느라 수업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심바 자매는 어떻게 지내고, 집은 어디며, 왜 항상 늦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지각하는 것만 보고 화를 내면서 그들이 게으르다고 단정지었던 것이다.

‘이 더운 날씨에, 아침 일찍부터 우리 수업을 들으려고 걸어왔겠구나….’ 비록 늦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을 자매에게 화를 냈던 게 미안했다. 그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와서 전문가도 아닌 내게 컴퓨터를 배우는 심바 자매가 너무나 고마웠다.

심바 자매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법을, 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 후로부터 같이 사는 단원들과 다투더라도 단순히 다툼으로만 끝내지 않고, 사소한 것이나 불편했던 것도 솔직히 털어놓고 내 생각이 맞는지 물어보고 확인했다. 물어보면 쉽게 풀릴 일을 왜 그동안 피하고 살았을까? 숨김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5개월 간 이어진 컴퓨터 교실은 마침내 끝이 났고, 심바 자매는 수료증을 받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컴퓨터를 배웠지만, 나는 그들에게 마음을 살피는 법을 배웠다.

 

 

어두운 교실 속 빛나는 아이들

잠비아에 있는 동안 빈민촌도 여러 번 방문했다. 그곳 아이들이 사는 모습만 봐도 가난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옷을 갖춰 입은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구멍난 옷에 찢어진 신발 차림으로 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아이가 자기보다 작은 갓난아이를 업고 돌봐주는 모습, 빈 깡통이나 페트병을 장난감으로 갖고 노는 아이들, 뜯어지고 바람 빠진 공을 차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있는 어린이 학교에도 다녀왔다. 다른 학교에 비하면 학비가 훨씬 저렴했지 만, 그마저도 낼 수 없어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그럼에도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빈민촌에 살았지만 얼굴은 참으로 밝았다. 어두운 교실에서 선생님의 질문에 앞다투어 손을 들고 발표하고, 선생님 말씀을 짧은 연필로 공책에 꾹꾹 눌러 쓰는 아이들을 보며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살면서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림카드나 알파벳카드 등을 손수 만들어 나눠주고,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투머로우> 독자들이 마음을 모아 빈민촌 학교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기뻐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작은 도움도 그곳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다.

 

‘잠비아에서 1년을 살았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잠비아에 가기 전 1년 동안 나는 ‘잠비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굿뉴스코 잠비아 지부장님과 해외봉사 단원들과 함께 의논한 끝에 어린이 학교를 짓기로 했는데, 그것이 학교 프로젝트다. 단원들이 한국에서 후원을 받아 잠비아에 가서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해 건물을 짓고, 학교에 필요한 물품이나 공구 등은 현지에서 후원받아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잠비아에 가서도 우리 봉사단원들은 현지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으러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찌는 듯한 더위 아래 발품을 팔며, 잠비아 사람도 아닌 한국 학생들이 기업에 찾아가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며 후원을 받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후원을 받아 학교를 설립해 정식등록까지 받았고, 지금은 20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다.

그밖에도 무전여행 등 부담스러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 부담을 피하지 않고 부딪혔을 때 부담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영어라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영어 성적은 늘 C였다. 하지만 못하는 것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덤벼들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외봉사를 마치고 복학한 뒤 영어발표 등 영어 과목만 3개를 수강했다. 학기 동안 계속되는 발표과제와 중간 및 기말고사 영어발표를 위해 5~10분 분량의 원고를 외우고 발표하면서 영어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을 넘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을 만난 적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잠비아에서 1년을 살았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잠비아는 역사적으로 민족 간에 내전이 한 번도 없었던 나라로 스스로 ‘평화롭다’고 자부하는 나라다. 길거리나 어딜 가도 서로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또 잠비아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다.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고,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고 한다. 잠비아에서 지내면서 모르는 것, 처음 경험하는 것도 참 많았는데, 그때마다 잠비아 사람들은 처음 보는 동양인인 내게 다가와 도움을 준 적이 참 많다.

보통 아프리카는 해가 지면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잠비아는 날이 어두워져도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보다는 안전한 편이다. 신기한 건 길을 걷다보면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걸면서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흔히 아프리카는 찜통처럼 더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잠비아는 여름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도 있다. 가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내복에 수면양말, 패딩점퍼를 껴입어야 할 만큼 춥다. 그럴 때는 더위가 기다려진다. 또 잠비아는 말라위, 앙골라, 보츠와나, 나미비아 등 주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이다. 해외봉사기간에는 버스를 타고 주변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할 기회도 많다. 나도 말라위와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녀왔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만의 특색이나 장점이 있고, 여러분이 생각한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자연, 사람, 문화, 그리고 주변 국가들까지 아프리카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잠비아로 오길 바란다.

 

김혜진
작년 한 해동안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일상의 크고 작은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주변 사람들과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많다. 그래서 현실을 바탕으로 관찰하며 찍은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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