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편집장은 대학시절 같은 과 여학생이 보이면 가까운 길도 돌아서 가곤 했다. 세련된 외모에 영어까지 잘하는 ‘그녀’들한테 주눅이 들어서였단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투머로우> 편집부의 유일한 남직원으로 동료들과 힘을 모아 최고의 인성교육 잡지를 만들고 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 고향은 경남 진주라는 지방도시다. 진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2000년 3월,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평생을 지방에서만 살던 내게 서울 생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차와 사람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고층빌딩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신기했던 건 전철과 에스컬레이터였다. 세상에, 기차가 땅속을 달리고 게다가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이라니! 한번은 신촌에 놀러갔다가 유난히 경사가 높고 긴 이대 전철역의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하도 신기해 그 자리에서 다섯 번을 탄 적도 있다.

한편으론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에서 살아야 할 내가 너무도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나는 천만 분의 1밖에 안 되는 존재구나’라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런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영어교육과 여학생들이었다. 외모나 옷차림이 세련된 것은 물론, 영어실력 또한 경상도 억양이 구수한 내 영어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했다. 그 친구들 앞에 설 때면 주눅이 들었고, 그때부터 캠퍼스에서 우리 과 여학생이 보이면 가까운 길도 돌아서 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에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 터졌다. 우리 학교 캠퍼스 한가운데에는 다람쥐길이라는 오솔길이 있다. 그날도 나는 수업을 마치고 다음 강의실로 가느라 부지런히 다람쥐길 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우리 과 여학생 셋이 걸어오고 있었다. 못본 척 뒤로 돌아 다른 길로 지나가려는데, 이게 웬일? 뒤에서도 우리 과 여학생 둘이 오는 게 아닌가. 사면초가, 진퇴양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바로 다람쥐길 옆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다람쥐길 옆은 높이 약 6m의 낭떠러지였다. 물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아니고 경사 50도 정도의 비탈이었다. 체중 110kg의 거구가 6m 아래로 떨어지다시피 했으니 발목이 성할 리 없었다. 오른 발목을 접질려서 열흘 정도 다리를 절며 학교를 다녔다.

그 뒤로도 나의 ‘나홀로 캠퍼스생활’은 대학 내내 계속됐다. 같이 밥 먹자는 친구가 있어도 ‘바쁘다’ ‘다른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혼자 밥을 먹었다. 메뉴를 정하느라 고민하지 않아도, 상대와 속도를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조별과제나 팀플 때도 내가 맡은 일만 할 뿐 ‘다른 사람은 얼마나 했나?’ ‘내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에 입사했다. 겪어보니 직장 일은 공부와는 전혀 달랐다. 학교 공부는 순전히 혼자 해야 하고, 우등상을 받든 낙제를 하든 그 책임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직장 일은 혼자 힘만으로 되는 게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프로젝트 하나도 선배나 윗분들의 검토와 보완을 거쳐가며 일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걸러지는 오류도 많고, 일이 잘못되더라도 책임을 나눠 진다. 한번은 내가 저지른 실수로 제작부장님이 윗분들께 꾸중을 들었다. 부장님께 너무 죄송했지만 부장님은 오히려 “윗사람으로서 관리감독을 못한 내 잘못”이라며 덤덤해 하셨다.

‘이게 바로 사회생활이라는 거구나!’

동료나 상관들은 내 부족함이나 약점을 언제든 채워줄 준비가 된 분들이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잡지를 만드는 일은 일종의 팀플이다. 혼자서는 절대 감동적인 기사를 만들 수 없다. 개개인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기자, 사진 찍는 사진기자, 글과 사진을 보기 좋게 편집하는 디자이너 등 팀원 모두가 마음을 모아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그 과정이 치밀할수록 기사의 완성도는 점점 높아진다. 입사하고 몇 년 동안은 남의 의견을 듣기보다 내 주장을 내세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일을 하는 동안 내 지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얄팍한지 차츰 깨달으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직장이 학교와 다른 점이라면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대하기 껄끄러운 친구는 피하면 그뿐이지만, 기자가 취재원 앞에서 그랬다간 당장 ‘모가지’감이다. 기자로 일하면서 숱한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는 국회의장, 대기업 CEO, 미녀 아나운서 등 유명인도 많다. ‘그들에 비하면 난 내세울 것도 없는데, 행여 날 무시하지 않을까?’ 부담스러웠지만 착각에 불과했다. 다들 소탈하고 편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낯선 이를 대할 때 생기던 공포와 부담도 사실은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게 없던 지혜와 마음이 내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이런 즐거움을 대학 다닐 때 알았더라면….’ 생각할수록 아쉽기만하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날 그 다람쥐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여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얘들아, 안녕? 우리 같이 밥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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