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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스와질란드에서 모든 날들이 좋았고 행복했다!!
전진영 기자 | 승인 2017.06.12 10:35

성격과 외모, 말투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두 사람이 아프리카 스와질란드로 봉사를 다녀왔다. 둘은 그 시간이 자신들의 인생 전환점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안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스와질란드. 그곳에서 경험한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질문 하나만 던져도 술술~ 기나긴 사연이 이어졌다.

 

 

은서 씨가 해외봉사 다녀온 후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다는데, 어떤 학생이었어요?

은서: 어릴 때부터 말하자면, 저는 고립 그 자체의 인생을 살았어요.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서 부모님의 기대, 그리고 맞벌이 부모님을 위해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늘 똑똑하고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어요. 그리고 중학교 때 아주 사소한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어요. 한 친구가 저를 괴롭히니까 다른 친구들도 동조하더라고요. 제 머리끈을 갑자기 빼서 던져버리거나, 제가 보는 앞에서 물건들을 뺏어가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괜찮은 척을 했어요. 진짜 울고 싶고, 죽고 싶은 마음까지 올라왔지만 주변 친구들이 “은서야, 괜찮아? 엄마한테나 선생님한테 말해줄까?” 하면 괜찮다고 웃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참으면서 눈물 나는 일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숨기고 묻었어요.

그리고 기숙형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학교 친구들과 교실과 기숙사에서 24시간 지내도 저는 늘 사람들을 오해하고 혼자였어요. ‘이 친구들도 나를 싫어하고 멀리할 텐데 왜 내가 마음을 열어야 하지?’ 하고 철저히 제 자신을 숨겼어요. 그런데…. 그동안 묻어뒀던 마음속 상처들이 덧나기 시작했어요. 1학년 겨울에 학교에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공황장애를 경험했어요. 미국에 있는 내내 너무너무 우울하고 심신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2학년을 시작하는데 지금까지 꾸역꾸역 참았던 것이 한계가 왔어요. 마음이 터질 것 같아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홍은서
서일대학교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2학년이 되어 병원 실습 다니는 것에 여념이 없다. 졸업 후에는 단순히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보살펴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엄마, 내가 얼마나 중학교 때 힘들었는지 알아?” 그 한마디 했어요. 그 말 꺼내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중학교 시절 이야기, 공황장애 겪은 이야기 등을 모두 말했어요. 부모님은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며 충격을 받으신 듯 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고 무지하게 복잡했던 제 머릿속도 조금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마음속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종이에 적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니까 또 다른 현실이 있더라고요. 저는 좋은 학점을 위해 오로지 공부만 했어요. 평점 4.4점이라는 높은 학점을 받았지만 만족은 없었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나’라는 틀 안에 갇혀서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져갔어요. 고슴도치같이 가시 돋친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죠.

그래서 해외봉사를 지원했어요. 스와질란드로 떠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나라는 답답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얻고 싶었어요.

 

스와질란드라는 나라가 은서 씨를 어떻게 변화시켰어요?

은서: 지칠 대로 지쳐 답답한 마음으로 스와질란드에 도착했어요. 낡은 승합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제 마음을 뻥! 뚫리게 만들었어요. 손에 잡힐 듯한 낮은 하늘과 탁 트인 넓은 초원과 풀을 뜯고 있는 소들…. 낯선 해외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소망으로 바꾸어준 풍경이었어요.

그때부터 너무 바빴어요. 세수나 화장하는 게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좋았어요. 남아공 캠프, 교사 마인드교육, 찾아가는 마인드교육, 영어캠프, 청소년 캠프, 크리스마스 칸타타 등 아무것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어떻게든 만들어서 모든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나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20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웃국가인 보츠와나로 가고 있었어요. 그때 10명의 봉사단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가장 부끄러웠던, 아무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들을 돌아가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지? 나는 솔직하게 마음 표현하는 것이 너무 힘든데’ 하고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 차례가 됐을 때,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했어요. 털털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말하는 저의 이야기를 모두들 숨죽이면서 듣고 있었어요. 나중에 차에서 내렸을 때 “네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 네가 그렇게 힘들게 산 줄 몰랐어”라고 모두 한마디씩 해줬어요. 그전까지 제 날카로운 성격 때문에 수없이 부딪히고 갈등이 많았던 단원들과 부쩍 마음이 가까워졌어요. 남에게 제 이야기 하는 것이 무지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가끔 단원들이 제 냉담한 표현 때문에 상처받아서 서운한 일들을 말할 때가 있는데요, 조금씩 제 모습을 알아가면서 내 자신에 갇혀서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유롭게 뭐든지 재밌게 일했어요. 지부장님께서 “너희는 세계 최고의 리더야”라고 하셨는데 정말 저희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을 해나갔어요. 그래서 단원들이랑 마음을 합쳐서 지부장님이 하시는 말을 그대로 따라 일했어요. 생전 처음해보는 인원 관리와 행사비 관리로 골머리를 앓다가 행사가 끝나면 남는 시간에 무전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준비했는데 무대의상 제작을 맡게 된 거예요! 눈으로만 봤던 재봉틀을 가지고 직접 사온 천을 오리고 붙였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새벽 2시, 3시가 넘도록 동료 단원 한 명과 같이 눈물 나도록 일했어요. 결국 저희는 기한에 맞춰서 해냈고 행사는 아름답게 끝났어요. 칸타타를 보면서 감동에 젖은 스와질란드 사람들을 보면서 무척 감사했어요. 제 변화는 그렇게 이루어졌어요. 마음이 정말 행복하게 밝아지더라고요.

은경: 저도 은서가 변한 것이 보였어요. 처음에는 말도 잘 안하고 부정적인 말만 해서 걱정이 되던 친구였는데, 차 안에서 은서의 진짜 속마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더 가더라고요.

 

은경 씨도 봉사활동 하러 가기 전에 남다른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은경: 저는 호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으로 왔어요. 사천이라는 낯선 시골마을에서 지내는데 부모님은 항상 늦게 오시고 오빠는 멀리 살아서 집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학교에 가면 앞머리부터 치마길이까지 똑같은 스타일로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 화장실을 가더라도 짝을 지어서 가는 생소한 한국 여중생 문화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어요. 제가 영어를 쓰듯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말을 했더니, 애들이 저를 피하는 거예요. 그리고 뒤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하고 뒤에 가서 울곤 했어요. 고등학교 가서부터는 매일 사고치는 비뚤어진 학생이 됐어요.

대학생이 됐을 때는 친구 사이가 그냥 인사하고 밥 먹는 관계밖에 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다시 힘들더라고요. ‘아 맞아. 한국 사람들은 원래 이렇지’ 하고 단념하려고 했어요. 그때<투머로우>를 읽었어요. 표지모델인 선배 대학생이 저처럼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반항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미국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이 문제였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요. 인터뷰 기사를 읽고 제가 가진 생각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생각을 바꾸니까 같은 상황도 달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 표지 모델 분처럼 해외봉사 가서 제 자신을 성장시킬 날을 꿈꿨어요.

 

마음이 힘들어서 읽기시작했다는 <투머로우>를 이제는 스크랩까지 해서가지고 다니며 읽고 있다는 송은경. 에세이 수업에는<투머로우>만큼 도움되는 잡지가 없다고!

스와질란드에서 은경 씨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요?

은경: 아프리카라면 붉은 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남아공에서 스와질란드로 들어갈수록 초록빛 초원들이 나타났어요. 마치 제가 살았던 호주에 온 기분이 나서 상쾌하고 행복했어요. 거리가 정말 깨끗했고 사람들도 순수하고 정이 많아서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평온한 나라였어요.

그런데 같이 활동했던 단원들은 저와 매일 부딪히는 거예요. 제가 영어를 할 줄 알기에 현지인들도 다른 한국 동료들보다 저를 좋아할 줄 알았지만 저에 대해서 불편해하더라고요. 은서도 상당히 독특한 성격이기 때문에 저랑 부딪히는 것은 당연했어요.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든지 몰랐어요. 저 하나 잘못된 것을 몰랐던 거죠.

스페라는 스와질란드 친구가 있었는데 너무 이기적이고 남들에게 명령만 하는 모습이 싫어서 지부장님과 삼자대면을 했어요. 그때 스페가 자기 자신을 항변하는데 꼭 저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친구랑 지내기 싫어서 데리고 갔는데, 다른 사람들도 저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웠어요. 한번은 지부장님의 지시로 딱 3일간 아무 의견을 내지 말고 조용히 있었던 적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아무와도 싸우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제가 왜 사람들과 쉽게 사이가 틀어지는지 알았어요. 제 성격이 문제였어요. 직선적으로 무식하게 훅 들어오는 제가 많이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그래서 저를 피한 건데 저는 사람들과 사귀기 어렵다고 단정 짓고 오해해버렸더라고요. 중고등학교 카톡 친구들 100명에게 물어봤는데, “너는 이기적이고 남의 말 안 듣고 명령하기 좋아한다”고 모두들 같은 말을 했어요. 그때 제 자신을 정확하게 봤어요. 은서처럼 저도 ‘한고립’ 했더라고요. 내 생각만 믿고 피해의식에 빠져서 아무 말도 듣지 않는 고립이요.

지부장님이 저를 보고 말씀하셨어요. “은경아, 2가지를 말해줄게. 네 성격은 죽을 때까지 안 변해. 그래서 인정하고 남의 말을 들으면 되는 거야.” 그때부터 누구의 말이든 귀담아 듣고 인정하려고 해요. 물론 제 성격상 견디기는 쉽지 않지만 저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난 이후 많이 듣고 생각하고 있어요.

은서: 저도 솔직히 은경이하고 스와질란드에서 지내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부담되더라고요. 저와 반대되는 성격에 제가 가장 이해 못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스와질란드에서 같이 고생하고 마음 맞추다보니까 지금은 어느 친구보다도 가까운 사이 같아요.

은경: 맞아요. 은서랑 이렇게 둘이 커버 사진을 찍게 된 것도 아마 그 증거가 아닐까요?

 

송은경
서강대학교 2학년으로 재학 중이며, 미국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앉아서 공부하는것보다 사람들과 만나서 듣고 배우는 것을더 좋아한다. 그의 꿈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켜주는 마인드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스와질란드는 평생 잊지 못할 나라가 됐네요. 정신없이 바쁘게 봉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은경: 스와질란드 국왕님을 만났어요! 국제무역박람회에서 남부아프리카 15개국 정상 회의에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어요. 개막식에 국왕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아프리카 전통복장을 입고 찾아가서 국왕님 앞에서 문화댄스를 하게 해달라고 주최측에 부탁했죠. 스케줄이 미리 계획되어 있기에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어요. 국왕님 앞에서 아프리카 전통댄스를 선보였고 멀리서도 국왕님의 시선이 느껴졌어요.

다음 날 어느 대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그곳에도 국왕님이 참석하시더라고요. 한국에서 온 그라시아스 음악원 출신 언니들이 스와지 노래를 불렀는데 무척 감명을 받으시고는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에 무척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그래서 다음 약속 날짜에 집무실로 지부장님과 봉사단원 7명이 국왕님을 만나러 갔어요. 그때 악수도 했어요! 인자하게 웃어주시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마인드 교육을 응원해주시던 국왕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국왕을 만나 악수까지!

은서: 스와질란드 정부에서 마인드 교육을 적극 장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1년 동안 마인드 교육을 주로 했어요. 초중고 교사들에게 교사 마인드 교육을 하고, 전국 초중고 및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마인드 강연, 마인드 레크리에이션도 했어요. 저의 강연을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제 자신이 변하는 순간들이 즐거웠어요. 제가 중학교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던 것과 그로 인해 마음의 병이 생기고, 또 마음의 교류를 통해서 그 병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립과 소통이라는 영어 마인드 강연을 했어요.

약 300명의 신입생이 모인 간호대학에서, 교사 마인드교육에서, 청소년캠프에서 강연할 때 저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슬픈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글썽거리며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더라고요. 강연이 끝난 뒤에는 저를 찾아와 “너의 이야기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며 감사를 전했고 어떤 중학교 선생님은 요즘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고 조언을 구하시기도 하더라고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것을 볼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어요.

 

자신의 슬픈 기억과 부끄러운 치부를 아낌없이 말하면서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목소리까지 흔들리지 않는 두 사람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보다 상처받고 슬프게 살았던 시간이 억울하거나 원망스럽진 않나요?

은서: 저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면서 무지 원망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스와질란드에 가서 마인드강연을 하면서 알았어요. 제가 받은 그 상처들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 졌더라고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저에게 남들에게 말 못할 고민상담을 많이 해왔어요.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나한테 말하고 싶다는 거예요. 한국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던 제가 스와질란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 상처는 불행이 아닌 축복’이 됐어요.

은경: 저는 은서처럼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마인드강연을 하며 제 지난날 이야기를 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고립된 사람들이 마음을 조금씩 바꾸는 것을 봐요. 사고뭉치였던 제가 이렇게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죠. 스와질란드에서 경험했던 모든 시간들이 좋았고 저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어요.

 

누구나 슬프고 원망스런 과거가 있다. 그러나 그날을 곱씹을 때 밝게 웃으면서 ‘그 시간은 내게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표지 주인공들 또한 각자의 사연으로 오랜시간 어둡고 괴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스와질란드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들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더 이상 과거를 되돌아보며 후회하거나 눈물 지을 일 없는 그들에게 미래는 더욱 더 두근거리고 반짝반짝 빛날 시간이 될 것이다.

 

7,8월엔 주로 무전여행을떠났다. 아름다운 스와질란드를 몸소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학생들에게 마인드강연을 했다.
스와질란드의 정겨운 초가집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현지인들의 따뜻한 정을 만났다.

아프리카의 스위스, 스와질란드 자랑 좀 할게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아프리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우선, 아프리카 유일의 왕정체제 국가입니다. 국왕이 국민을 사랑하고 선정善政을 펼쳐서 국가분위기가 굉장히 평화롭고 자유로운 곳이에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는 빈번한 내전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은 국왕을 사모하고 국왕을 믿고 있어요. 그러한 신뢰감이 밑바탕이 되어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경제는 1970년대를 보는 것 같은 수준이지만, 거리가 깨끗해서 아프리카에 와 있나 싶을정도입니다. 물 또한 정말 깨끗해서 실제로 수질검사를 했을 때, 우리나라 서울의 물보다 훨씬 깨끗한 결과가 나왔어요. 게다가 음식문화도 발달해서 고기가 메뉴로 등장할 때가 많아요.

무전여행을 하면서 손에 닿을 것 같은 낮은 하늘과 푸른 초원 사이를 걸어 다닐 때면 시원한 바람에 기분 좋아질 때도 많습니다. 히치하이킹을 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차를 태워주고 어느 마을을 방문하든지 자신의 가족처럼 우리를 맞아주지요.

교육환경과 시스템도 잘 돼 있어 문맹률이 여느 아프리카 국가보다 낮고,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영어만 할 줄 알면 전국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 가능해요. 그리고 스와질란드만의 고유한 문화가 그대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매년 열리는 갈대축제나 다양한 부족축제 등 흥미로운 행사가 많습니다.

전진영 기자  gugong81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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