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 국악계의 '라이징 스타'로 떠올라 중학생 때는 '보디빌딩 도 대표'로, 그리고 다시 대금으로 '국악 명인'을 꿈꾸는 한 청년이 있다.  

주인공은 영남대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하고 있는 권민창(22, 음악과 국악전공 3학년) 씨이다. 권 씨는 최근 열린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일반부 ‘종합대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대회에서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연주한 권 씨는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기악부문 1위에 올랐고, 결선에서 각 부문 1위에 오른 참가자들과 종합대상을 놓고 경쟁했다. 그 결과, 종합대상을 차지하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과 상금 200만원을 수상했다.

권 씨는 대학 새내기 때인 2013년에도 전국대금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하는 등 일찌감치 일반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권 씨는 청소년 시절 각종 학생부 대회를 휩쓸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KBS 성장다큐 꿈’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을 정도다.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일반부 ‘종합대상’에 오른 영남대 음악과 국악전공(기악) 권민창 씨./ 사진 제공=영남대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일반부 ‘종합대상’에 오른 영남대 음악과 국악전공(기악) 권민창 씨./ 사진 제공=영남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배우기 시작한 대금, '라이징 스타'로 도약하다
권 씨가 대금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권 씨는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대금 연주 소리를 우연히 듣고, 그날부터 대금에 빠졌다고.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대금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당연히 당시에는 대금 소리인지 몰랐어요. 교실 문틈으로 보니 담임선생님께서 대금을 불고 계시더라고요. 그 소리에 빠져서 한동안 넋을 놓고 듣고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한번 불러 볼래?’ 라고 하셨어요. 그 때부터 선생님과의 대금 연습이 시작됐어요.”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았다는 권 씨. “선생님께서는 본인 시간을 쪼개어 저를 가르쳤어요. 고학년 때는 주말도 없이 가르쳐 주셨고, 전국에서 열린 대금 대회에 저를 데리고 모두 찾아 다니셨어요. 저한테는 스승이자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당시 권 씨는 참가하는 대회마다 수상하며 독보적인 실력을 보였다. 권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끊임없이 노력해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성장 잠재력까지 인정받아 든든한 후원 약속까지 받았다고 한다.

“‘KBS 성장다큐 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당시 KBS 사장님께서 제가 끝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후원해 주겠다고 하셨어요. 대금 레슨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영어 등 일반적인 공부까지도요.”


'보디빌더'로의 우회 "도 대표 자리까지 올랐지만…"
하지만 권 씨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시절 잠시 대금을 손에서 놓았다. 중학생 시절 보디빌딩에 매료된 권 씨는 대금을 손에서 놓고, 대신 운동기구를 들었다. 무슨 일이든 한번 몰두하면 악바리처럼 해내는 근성은 여기서도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대금 연습을 하던 것처럼 운동 역시 지독하게 연습했다는 권 씨. 중학교 3학년이 끝날 즈음에 고등학생들을 제치고 보디빌딩 학생부 경상북도 대표선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도 경제적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도 대표선수가 됐으니 이제 동계훈련도 하고, 제대로 연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지원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포기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때 정말 엄청 울었어요.”

그렇게 3년 동안 쌓아온 꿈을 포기한 채 권 씨는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한다. 대금 연주도 하지 않고, 운동도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하던 고등학교 시절, 1학년이 끝날 즈음에 초등학교 시절 대금을 가르쳐주던 스승과 연락이 닿았다.
 

권민창 씨./ 사진 제공=영남대학교
권민창 씨./ 사진 제공=영남대학교

4년 후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전화, 다시 대금을 잡다
“고등학교로 전화가 왔어요. 지인인 학교 선생님을 통해 우연찮게 나에 대해 듣게 됐다고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연락을 드리지도 못해 죄송하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뵈러 갔어요. 선생님을 만났더니,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오던 후원금이 최근까지 지원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서 ‘대금 다시 한 번 해볼래?’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전 고민도 없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다시 4년 만에 대금을 잡고 명인이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권 씨. 고3 때 영남대 음대 콩쿠르에 참가해 기악에서 1등을 하면서 장학생으로 영남대에 입학하게 됐다.

중학생 시절 대금을 잠시 그만두고 다른 일에 몰두한 것에 대해 절대 후회는 없다는 권 씨.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아요. 그때 후원해주는 대로 차근차근 경력을 밟았다면 지금 저는 여기 없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청소년 시절 대금 하나만 보고 살아온 것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얻은 것이 많거든요.”

요즘 권 씨는 행사도 다니고, 대금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에게 레슨도 하며 활동하고 있다. ‘마디’라는 퓨전 국악밴드를 결성해 무대에서 공연도 한다.

권 씨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그냥 대금 소리에 빠져 대금을 시작했듯이 지금도 그냥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대금 소리, 우리 국악의 소리가 너무 좋아 하루하루 국악을 듣고 연주하며 즐기고 싶어요. 아직 최고의 자리에 올라 ‘명인’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하루하루 국악을 즐길 수 있다면 그거 자체로 행복한 삶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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