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있는 국립 메치니캅대학 러시아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임현규 학생. 그의 꿈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앞으로 노어권 지역의 마인드 강사들을 길러내는 교수가 되는 것이다. 해외봉사 경험이 기회가 되어 그곳에서 유학하고 있는 그를 만나본다.

 

 

우크라이나 전통춤 호팍Hopak
우크라이나 전통춤 호팍Hopak

우크라이나에 첫발을 디딘 계기가 있으신가요?

예, 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대학생이 되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술과 담배,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았습니다. 절제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벗어나려면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선택한 계기는 흔한 영어보다 색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고유의 언어가 있지만 예전에 소련 연방국이었기에 러시아어도 상용되거든요. 당시에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고, 피폐한 환경에 처한 그들을 돕고 싶어서 굿뉴스코 14기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했습니다.

 

타지생활을 하며 어려울 때도 꽤 많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요. 문화도 한국과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저도 모르게 실수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저를 도와주시는 지부장님과 현지 친구들이 있어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코리아 캠프에서 서예와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
코리아 캠프에서 서예와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

해외봉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한류문화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K-Pop을 비롯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많이 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취미로 하던 기타를 가지고 여러 활동을 했는데, 단원들과 밴드를 결성해 우크라이나 곳곳을 다니며 공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부색은 유럽인인데, 마음은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굉장히 순수하거든요. 기타 연주 하나만으로도 정말 즐거워한답니다. 한번은 제가 슬럼프에 빠져 봉사자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여행자처럼 지낸 때가 있었습니다. 그냥 쉬고만 싶고, 아무 일도 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에 현지인 친구들과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고 그로 인해 서로 마음을 닫는 상황까지 치달았습니다. 그걸 계기로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제 언행을 반성하면서 ‘원래 내 자리를 찾아간다’는 마음으로 봉사자의 일상에 다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을 본 우크라이나 친구들은 “ты наша жизын, инаши все. 너는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전부야.”라고 하면서 저를 다독여주었어요. 그 어느 때보다 저는 깊은 감동을 느꼈고, 이 일은 아직까지도 가장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흑해 앞에 선 임현규 러시아어로 마인드강연을 하는 교수가 되기 위해 요즘 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틈틈이 지부장님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향후 러시아권 사람들을 위해 IYF 정신을 담은 강연을 할 날을 꿈꾸고 있다.
흑해 앞에 선 임현규 러시아어로 마인드강연을 하는 교수가 되기 위해 요즘 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틈틈이 지부장님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향후 러시아권 사람들을 위해 IYF 정신을 담은 강연을 할 날을 꿈꾸고 있다.

봉사를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요?

한국에서는 그냥 되는 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배가 고프면 밥 먹고, 놀고 싶으면 게임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식으로요. 처음에 해외봉사를 올 때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봉사정신이 강했어요. 막상 이곳에서 지내다보니 제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시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굿뉴스코 활동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이지요(웃음). 또 어떤 일이든 온 마음을 기울여 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청소 하나를 하더라도 예전에는 대충 쓸고 닦았는데 지금은 주위를 자세히 살피고, 먼지 하나 남기지 않는 정확성, 끝까지 청소를 마무리하는 지구력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이곳 우크라이나에서 저는 예상치도 못했던 기본적인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국립메치니콥대학교 전경. 팔이 아프도록 필기하며 언제 어디서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국립메치니콥대학교 전경. 팔이 아프도록 필기하며 언제 어디서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유학은 어떻게 결정했는지 설명해 주세요.

저도 유학을 오기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한국에서 공대에 다녔기에 취업 걱정은 없었는데, 설령 취업을 한다 해도 작업복을 입고 미세먼지 날리는 공장에서 일해야 할 미래를 생각해보니 별로 희망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자주 제 자신에게 던졌고, 결국 의미 없는 미래를 버리고, 제 자신을 위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와 정신을 이해하고 더불어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유학생활 중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또 현재 극복이 됐나요?

초반에는 학교에서 하는 수업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어요. 또 한국에서는 기계 관련 전공이었기 때문에 인문학적 상식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여기 우크라이나에서는 문학적 기초지식이 있어야 수업을 이해할 수 있어요. 아직까지 어학능력이 부족하지만, 교수님과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으면서 저의 미흡한 부분들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곳곳을 다니며 밴드 공연을 했다.
우크라이나 곳곳을 다니며 밴드 공연을 했다.

우크라이나 생활이 한국과 다는 점은 무엇인가요?

땅이 넓고 비옥해서 먹을 것이 풍부한 이 나라는 사람들도 여유롭고 정이 많습니다. 한국처럼 사람들이 경쟁에 치여 살았던 적이 없거든요. 또 어린이나 어른 모두가 순수하고, 약한 사람을 보면 선뜻 양보하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노약자나 장애인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았는데요.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이곳은 한국처럼 각박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진 것에 만족하며 삽니다.

또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남녀불문하고 산책과 대화하기를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식당과 카페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요.

 

한번 대화가 시작되면 끝이 없을 정도예요. 만일 주의하지 않으면 대화를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낮이 밤으로 변하는 신비한 경험을 할 겁니다(웃음). 대화 내용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부터 친구들, 부모님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저는 외국인이라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해요.

학교 안에는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복도나 빈 강의실, 식당 곳곳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이들은 뭐든지 필기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학습법이라고 여겨서, 팔이 아프도록 필기를 합니다. 저도 수업 중에 열심히 필기를 하다가 팔이 뻐근해지는 걸 느낄 때가 많아요.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금방 친해져서 끝도없는 깊은 대화가 시작된다.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금방 친해져서 끝도없는 깊은 대화가 시작된다.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나요?

한국 나이로 열아홉 살인 막심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성격이 매우 사교적이어서 저와 금방 친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처음 왔을 땐 길을 가다가 자주 놀랬어요. 걸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슈퍼모델처럼 보였거든요. 남녀 모두 어찌나 잘생겼는지…. 막상 살다보니 다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막심도 잘 생겼다고는 못하겠네요(웃음). 장난기도 많고 말도 유창해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줍니다. 저와 같이 있을 때 막심은 우크라이나 노래를 가르쳐 주고 속담이나 전설 등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해줍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봉사나 유학 오고 싶어 할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려요.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언제든지 국경을 넘으면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여행갈 수 있지요.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오데사는 흑해 옆에 있어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는데, 한국처럼 짠내 나는 바다가 아니랍니다. 또 한국보다 영토가 6배 정도 넓고, 기차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기차 안에서 하룻밤 자는 건 아주 흔한 일입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이 모두 우크라이나에 산다는 소문이 퍼져 굿뉴스코 여자 단원들의 지원이 뜸했다고 합니다. 벌써 3년째 여자 단원들은 없거든요.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요즘은 한류문화 열풍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한글학교, 한국어캠프에 찾아오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우크라이나로 해외봉사 오시길 기다립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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