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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데이트’ 하고 싶어요[연중특집] 아버지와 가까이
김소리 기자 | 승인 2017.05.25 11:14

지난 4월호에 <투머로우> 독자 중 20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그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설문조사 내용 중 ‘아버지와 데이트’ 이벤트에 응모해 주신 분들이 많았는데 신지훈 씨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당첨자의 신청 사연을 소개합니다.

 

제가 8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먼 곳에 사셨고 동생과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미워서 17살까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저기요’라고 불렀는데, 2016년 어느 날 아버지가 제게 노트에 쓴 편지를 주셨습니다.

2012년에 쓴 편지였는데 주기가 쑥스러워 가지고 다니시다가 4년이 지나서야 주신 거였습니다. 그 후 아버지를 향해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힘드셨는데 우리를 위해 묵묵히 살아오신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제 아버지가 저를 낳으신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지도 헤아려집니다. 올해 1월에 처음으로 아버지께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바쁘고 힘들게 사셨을 아버지께 휴식의 시간을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1막, 만남의 시작 어색함 그리고 떨림…

평택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려고 수원에 왔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어색한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을 따라가 보자.

 

안녕하세요? 이렇게 좋은 날씨에 데이트를 하게 됐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父: 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었어요. 가끔 만나면 주로 틀에 박힌 이야기만 하고 속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아들이 저를 무서워하는 거 같아요. 저만 보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움츠려들어요. 자라면서 어려움을 겪어서인 것 같기도 해요.

아들이 “아버지, 데이트 한번 해볼까요?” 하는데 처음에는 ‘왜?’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서 지내는 게 당연한 건데 어색하기도 하고 잡지사에서 취재를 한다니 불안하기도 하더라고요. 아들과 이런 시간을 갖는 건 20년만에 처음입니다. 아들이 7살 때쯤 어디 같이 가보고 난 뒤로 아직까지 뭘 해본적이 없었어요. 바빴고요. 요즘 아들과 딸을 보면서 느끼고 배우는 점이 많아요. 아들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은데, 오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고요. 아들이 성인이 되어 앞으로는 각자 자신의 세계에서 살 텐데 이번에 데이트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나왔습니다.

子: 좀 떨리네요. 20대가 되고 보니 아버지가 결혼하고 저를 낳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궁금했고, 아버지가 많이 생각났어요.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 좋고 기대됩니다. 이번 데이트가 항상 바쁘신 아버지께 즐거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시간의 데이트를 마친 뒤 둘만의 밀담을 시작했다. ‘아, 그랬구나!’ 게임으로 말문을 열었는데 두 사람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화성행궁을 돌며 두 사람의 기나긴 대화가 시작됐다. 어색해서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던 아들은 아버지가 털어놓는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긴 사연이 궁금하기만 한데, 그래도 취재진은 궁금증을 참아가며 부자가 데이트 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한 시간 뒤 질문을 다시 했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 많이 나누셨나요? 이번에는 좀 특별한 순서입니다. ‘아, 그랬구나!’ 코너인데요, 그동안 지내면서 서로에게 속상했던 점, 불만스러웠던 일을 말해보세요. 듣는 사람은 ‘아, 그랬구나!’로 대답해 주면 됩니다.

 

父: 할 말이 많아. 얘기해도 돼?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했잖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게 서운하다. 조언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메시지나 전화로 자주 연락하는데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 아버지한테 너무 말 안하는 거 같아.

子: 아, 그랬구나!

父: 고등학교 결정할 때 네가 기숙형 대안학교인 링컨하우스스쿨을 간다고 했잖아. 어떤 학교인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네가 “말하면 아빠가 알아요?” 했지. 그때 섭섭하더라.

子: 아, 그랬구나!

父: 대만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을 때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화하고 아빠한테는 문자 메시지만 한 번 보냈지. 그것도 뭐가 필요하다는 말이었고. 아빠는 영상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섭섭했다.

子: 아, 그랬구나!

父: 공항으로 너를 데리러 나갔을 때 나는 네가 “아빠!” 하고 소리칠 줄 알았어. 그런데 그냥 ‘아빠네’ 하는 것 같더라. 아빠가 무슨 목석도 아닌데 아빠한테 짐 맡겨놓고 친구들과 인사하기 바빴지. 소외감이 느껴지더라. 안 반기는 것 같고. 평상시 아빠에게 찾아오라고 해도 안 오고, 밥이나 먹게 시간 내라고 해도 안 냈잖아.

子: 아, 그랬구나!

 

소근소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기자가 괜한 방해를 할까 봐 가까이 가기도 조심스럽다.

1라운드 게임 종료! 이번엔 아버지가 ‘아, 그랬구나!’ 하실 차례입니다.

子: 초등학교 3학년 때 왕따를 당했어요. 학부모 참관수업 때 아버지가 못 오셨고 그때 우리 반 반장과 싸웠는데 반장 부모님이 주도해서 제가 왕따를 당했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요. ‘왜 나를 낳아서 이런 일을 겪게 하나.’ 부모님이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父: 아, 그랬구나!

子: 중학생이었을 때 부반장이 됐죠. 부모님이 시험 감독하러 오셔야 하는데 솔직히 ‘아무도 안 오셨으면….’ 생각했어요. 이혼한 부모님들이 많으니까 그냥 못 오신다고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오신 거예요. ‘내가 괜히 부반장을 해서 할아버지를 오시게 했구나.’ 할아버지께 부담을 드린 게 너무 죄송했어요.

父: 아, 그랬구나!

子: 친구들이 휴일이나 명절에 부모님과 어딜 다녀왔다고 하면 저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부러웠어요. 부모님이 안 계신 게 싫어서 차라리 아버지가 재혼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父: 아, 그랬구나!

子: 대만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갈 때 아버지께 경비 얘기를 안했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계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기가 부담스러웠어요. 아버지께 짐이 되기 싫었고 ‘다 컸으니까 내가 책임져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대만에 계신 지부장님이 그게 아버지와 담을 쌓고 사는 거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께 뭐든 이야기하고 표현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일부러 말을 안 했죠.

父: 아, 그랬구나!

 

아버지 꿈이 뭐였는데요? 세계 최고의 깡패가 되는 게 꿈이었지. 아들아, 너를 위해 꿈을 포기했었다.

2막, 만남 진행중 조금 더 가까이

 

다음 순서는 ‘오늘 처음 하는 이야기’ 코너입니다. 서로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세요.

父: 지훈아, 아빠와 엄마가 이혼할 당시 사람들이 한 사람이 한 아이씩 맡아서 키우라고 했어. 한 아이는 포기하라고. 하지만 아빠는 너희 둘 함께 자라게 하고 싶었어. 가족이니까. 엄마와는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너희 둘은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형제로 남게하고 싶었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거 하나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너희들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 ‘부모’라는 게 뭔지 너희가 가르쳐 주었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너희들이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큰 사고 없이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네가 아빠에게 좀 더 다가와도 괜찮아.

子: 지혜가(여동생) 한번은 이런 말을 했어요. 오빠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링컨하우스스쿨로 진학한 이후부터 아버지라고 불렀다고요. 그래서 자기도 그 학교를 다니고 싶었대요. ‘오빠가 많이 변했다’고 했어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더라고요. 요즘도 어색하긴 해요. 저는 항상 아버지를 가족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용돈 필요할 때 주는 사람이었죠. 대만 굿뉴스코 지부장님이 제게 아버지께 마음을 열라고 하셨고 함께 있는 단원들도 아버지께 모든 걸 말하라고 했어요. 그동안 제가 아버지께 너무 무관심했던 게 사실이에요.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없죠. 아버지가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었어요.

 

누가 이들을 20년 만에 데이트 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할까? 내 아버지라서, 내 아들이라서 행복하다고 서로에게 말하며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서로 인터뷰’ 코너입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지요? 기자가 준비한 질문지로 묻고 대답하다 보면 어느새 잘 아는 사이가 될 겁니다. 먼저 아들부터!

子: 시간 있을 때 주로 뭘 하세요?

父: 너하고 지혜한테 톡 보내잖아!

子: 스트레스가 쌓일 때 주로 어떻게 푸세요?

父: 너희들한테 톡 보내지!

子: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지혜와 살았지만 아버지는 혼자 사셨잖아요. 많이 외로우셨죠?

父: 외롭지는 않았어. 솔직히 외로울 시간이 없었다.

子: 제가 1년간 해외봉사 다녀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父: 나는 네가 큰물에서 더 배우고 많이 경험하기를 바란다. 더 넓은 곳에서 넓게 봐야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힘이 돼 줄 수 있으면 그게 자신에게도 힘이 되지.

子: 아버지의 꿈은 뭐였어요?

父: 나는 꿈이 크고 원대했지. 중학교 때까지는 장군이 되는 게 꿈이었고. 고등학교 때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가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깡패가 되고 싶었어. 그게 제일 멋있어 보였거든. ‘주먹으로 이름 석 자를 날려보자!’ 했지.

子: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뭐예요?

父: 부모님 말 안 듣고 공부 안 한 거. 공부를 조금만 더 했더라면 삶의 질이 훨씬 향상됐을 텐데.... 또 하나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

 

다음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질문하세요.

父: 취미는 뭔가요?

子: 영상물 보는 것. 시간 나면 주로 예능방송을 보고, 글을 쓰기도 하고요.

父: 아버지와 어떤 점이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子: 화내는 것.

父: 꿈이 뭔가요? 앞으로 뭘하며 살고 싶나요?

子: 해외 대학의 한국어과 교수. 해외에 나가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살고 싶어요.

父: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을 때는 언제인가요?

子: 명절에 아버지가 와서 함께 요리했을 때요.

父: 요즘 고민하는 문제가 있나요?

子: 군대에 다녀온 후의 삶을 생각해요. 교육과정이 자꾸 바뀌는데 복학한 뒤 공부하고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아들 마음속에 남겨주고 싶은 말들이 있었어요.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고민하다 아들과 연애한다고 생각하면서 노트에썼어요. 그런데 막상 주려니까 용기가 나지 않아가지고 다니다가 한참 뒤에 줬지요.”-2012년에 적어 4년 뒤에 아들에게 준아버지의 편지-

3막, 만남 마무리 우리 마음의 온도 36.5℃ × 2 = 73℃!

 

데이트 소식을 듣고 딸이 먼 곳에서 영상편지를 보내 왔어요. 같이 볼까요?

父: 딸이요? 아... 이러면 저 우는데요.

子: 지혜가 영상편지를요? 와!

 

딸 신지혜 씨가 아버지와 오빠를 향한 마음을 담아 보내온 영상편지를 보는 자리는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그칠 줄 몰랐다.

신권섭 씨의 딸 지혜 씨가 아버지와 오빠가 데이트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장문의 영상편지를 보내왔다.

父: 아들과 딸을 보면서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 아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걸 봤는데, ‘아, 이제 나와 완전히 떨어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아버님께도 마음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번은 다 같이 있을 때 아버님께 “아버님, 사랑합니다.” 했어요. 아이들이 웃더군요. 제가 얼굴은 굳어있는 채로 사랑한다고 말한다고요. 사실 저는 그동안 원망하면서 살았습니다. 애들 엄마와 안좋게 헤어지면서 배신감이 컸고요. 그런데 요즘 생각이 점점 달라져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씨름선수였어요.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 나가서 입상하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선택을 잘못한 거예요. 운동을 잘했고 힘이 셌기 때문에 ‘힘으로는 어디가도 안 꿀려!’ 하는 생각이 있었고 겁이 없었죠. 그러다 정치 깡패를 하는 게 꿈이 되었고, 그쪽 사람들을 알게 돼서 ‘흐지부지 사느니 주먹으로 크게 이름 한번 날려보자!’라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결혼해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요.

아내가 평범하게 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들이 커서 나를 창피해 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하던 일을 접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사실 누구 밑에서 일하는 건 꿈도 꿔본 적이 없어요. 아들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회사에 다녔는데 이혼하면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죠.

아이들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는데 바르고 예쁘게 잘 자라주었어요. 이혼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늘 죄인이죠. 항상 마음에 짐을 지고 살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 짐을 내려놓게 해주었어요. 오늘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아들 마음을 몰랐을 거예요. 이혼 후에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살았고 방랑기가 있어서인지 한곳에 정착하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아이들과도 떨어져서 지냈죠. 하지만 저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아들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 가지 스펙보다 건전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게 자랑스러워요. 꿈도 없고 할 말도 없이 사는 학생들이 많은데 아들이 목표를 가지고 자기만의 길을 가려는 게 좋아요.

子: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몰랐던 사실을 들을 수 있었고요. 사람들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게 뭐가 어렵냐고 하지만 저는 쉽지 않았어요. 1, 2년 단절한 게 아니잖아요. 오늘을 계기로 자주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아버지는 무섭고 미운 사람이었어요. 필요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어색하기만 했는데 오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결혼하셔서 많은 기회들을 포기하고 사셨어요. 저와 동생을 위해 그러셨죠. 항상 원망하고 아버지를 피하며 살았던 제가 미워지네요.

이제 아버지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좋은 옷도 사 입으시고 여행도 다니시고요.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수원 카페거리의 한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으려고 마주 앉았다.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들을 위해 치즈가 듬뿍 얹혀진 라자냐와 피자를 주문하는 아버지. 식사 중에도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평온해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 누구보다 가까워진 그들... 마음의 온도가 급상승했던 행복한 하루였다.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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