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케냐는 영국 식민지배 시대부터 강압적인 지배에 저항운동을 벌여왔다. 이와 같은 운동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의미와 정신은 퇴색된 지 오래다.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저항운동을 벌이는 케냐의 현재를 알아보자.

 

힘없는 초딩들의 반격 사건

2015년 1월, 케냐 ‘랑아타로드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대번에 학교가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운동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낯선 높은 담장과 두꺼운 철문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대형 호텔에서 주차장 확장 공사를 위해 운동장을 점거한 것이었다. 호텔 측은 학교가 한산한 방학기간을 노려 순식간에 ‘만행’을 저질렀다. 얼마 전까지 축구와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소중한 운동장을 빼앗긴 아이들은 무진장 화가 났다.

잠시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먼저 교사와 부모들이 나서서 호텔에 항의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호텔 측에서도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다. 나름의 근거와 법 조항을 들이대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버틸 것이며, 결국 맞고소를 하고 법정에서 변론과 투쟁을 하며 운동장을 사이에 둔 긴 싸움을 펼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랑아타로드 초등학교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법정보다 주먹이 더 가까웠던 그들은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6살부터 13살까지의 그 작은 초등학생들은 호텔 경비원들에게 돌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중한 운동장을 옥죄고 있던 담벼락을 허물고 철문을 부숴버렸다!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칭얼거리기만 할 것 같은 힘없는(?) 어린이들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일을 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장경찰이 쏜 최루탄에 적어도 10명이 넘는 초등학생들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가는 등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들은 얌체 같은 호텔 주인에게 다시는 운동장을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제대로 해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케냐 전국에 떠들썩하게 알려졌고 초등학생들의 운동장을 훔치려 했던 호텔 주인은 개인 신상이 공개되면서 호된 망신을 당했다.

 

운동장을 둘러친 벽을 무너트리고 있는 랑아타로드 초등학교 어린이들.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중에도 아이들은 도망가기는 커녕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했다.
운동장을 둘러친 벽을 무너트리고 있는 랑아타로드 초등학교 어린이들.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중에도 아이들은 도망가기는 커녕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했다.

뿌리 깊이 스며있는 저항정신

광대한 땅에서 자유롭게 살던 케냐인들은 영국이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이후 식민지의 가난한 하층민으로 추락해버렸다. 백인 지주들은 금싸라기 옥토에 들어앉은 후 본래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을 거친 광야로 쫓아냈다. 식민지배 아래서 사람들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빈곤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이 불합리하다는 걸 느꼈다. 불공정한 지배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케냐인들은 백인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영국 본국 정부에 항의도 해보았다. 하지만 백인들은 애초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영국인들은 항의하는 이들을 감옥에 가둬 고문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강압적인 지배는 케냐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영원히 묶어놓지는 못했다. 억압에 견디다 못한 민초들은 단결하여 저항했다. 태업이나 파업을 하기도 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지주들의 재산을 파괴하거나 목숨을 노렸다. ‘마우마우’라는 무장 게릴라 세력을 조직해 영국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케냐 민중은 자신들이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가만히 있는 바보가 아님을 지배자에게 보여주었다. 저항을 시도한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을 당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런 희생을 겪으며 케냐인들의 사상 속에는 자신을 억누르는 이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저항정신이 자리잡혀 갔다.

 

임금 체불에 대한 항의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는 국립대학 교수들.
임금 체불에 대한 항의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는 국립대학 교수들.

저항은 약자의 의견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

세월이 흘러 1963년, 케냐는 독립했다. 백인들은 물러 났지만 새로운 지배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주인의 피부색만 바뀌었을 뿐 가난한 이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연히 독립 이후에도 케냐 민중은 저항을 이어갔다. 지주들의 횡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들은 일어나 싸움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합당한 요구를 묵살하는 기득권 세력을 향해 통쾌하게 한 방 먹여주면 그제야 사과를 받아내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저항과 폭력은 약한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기득권에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오늘날에도 케냐인들은 자신이 불합리한 일을 당한다고 느끼면 회사나 정부에 적극적으로 불만사항을 건의한다. 소위 말하는 돈과 권력을 이용한 ‘갑질’을 경계하는 것이다. 만약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체 행동도 불사한다. 요즘도 심심치 않게 의사 파업, 교사 파업, 근로자 파업 등 각계각층에서 벌이는 실력행사 소식을 들을 수 있다.

파업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혼란이 생기고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부에서는 되도록 폭력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려 노력한다. 취약계층이 기득권층을 신고할 때 신고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법률적 장치도 만들었다. 기득권층은 섣불리 부정을 시도하다가는 랑아타로드 초등학교 사태의 호텔 주인처럼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상대가 약자들이라도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처럼 밟으면 꿈틀하는 케냐인들의 저항문화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보통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전날에 있었던 폭동의 흔적. 새카맣게 타서 재가 된 타이어를 미화원이 청소하고 있다.
전날에 있었던 폭동의 흔적. 새카맣게 타서 재가 된 타이어를 미화원이 청소하고 있다.

억지 고집을 채우기 위해 변질된 저항문화

그런데 문제는 저항문화가 꼭 옳은 일에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어떤 이들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서도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시위였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폭동으로 번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흥분한 폭도들은 거리를 점령하고 애꿎은 상가가 파괴되고 사람이 다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진다. 흥분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무의미한 화풀이일 뿐이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케냐 젊은 세대는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않고 분출하는 폭력적인 행위를 멋들어지게 여기는 듯하다.

지난 2016년, 최소한 100개 이상의 케냐 중고등학교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방화범은 대부분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방화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학교 급식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식이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 기숙사에 불을 지르고 교무실 유리창에 돌을 던진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외에 교사에게 혼이 났기 때문에, 축구 경기에 져서, 교사가 특정 학생을 편애해서 등등 각종 터무니없는 이유로 인해 수많은 학교가 잿더미로 변했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고등학생들이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며 학교 경비원을 폭행하고, 여중생들이 학교에서 화장을 하게 해달라며 교장실에 불을 질렀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오늘날 케냐의 청소년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학교에 화풀이를 하곤 한다.

 

통제 불능인 대학생들의 ‘제멋대로’ 시위

젊은이들의 이러한 성향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만개한다. 케냐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국립 나이로비대학교는 입학하기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시위를 자주 벌이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한층 과격해서 도시의 기물을 파괴하거나 상점을 약탈하는 등 폭동으로 번지기 일쑤다. 나라를 대표하는 젊은 지성인이라면 국가의 미래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시위를 하는 게 아닐까 짐작되지만, 막상 그들의 명분을 알게 되면 당황스러워진다. 한 신문의 기사를 인용하면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이렇다. 학자금대출 지급이 늦어져서, 기숙사에서 혼숙을 못하게 해서, 학교 근처에서 콘돔을 구하기 어려워서, 선거철에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려고, 어려운 시험을 보지 않기 위해서 등등이다.

‘나이 많은 문제아’ 대학생들의 무의미한 폭동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몽둥이로 진압하는 무장경찰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반 국민들은 통제 불능인 ‘제멋대로’ 대학생들을 볼 때마다 혀를 차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 약자들의 무기로 사용되던 저항정신이 사탕 달라고 칭얼대는 철부지의 억지 고집을 만족시키는 용도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이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나아가야 할 아프리카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아프리카의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억압을 받으며 살고 있다. 케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기득권층은 일반 국민들에게 함부로 권력을 남용한다. 그렇기에 민중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이 명분 없는 폭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의미한 선동과 폭력은 오히려 지배층에게 이용되기 쉽다. 케냐, 넓게는 아프리카가 지금보다 한걸음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약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권력자와 시위를 벌이기 전 대화를 시도할 줄 아는 국민들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의 운동장을 훔치는 기업인이 사라지고, 식당 음식이 맛없다고 기숙사를 불태우는 학생이 없는 세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자제력이 결여된 폭력적인 저항 대신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아프리카를 기다린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변화되길 원한다면 분명히 이루어질 수 있는 가까운 미래다.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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