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즐겨 쓴다. 역사적 사건이나 교훈을 네 글자로 압축해 만들어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소통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정치인이나 기업인, 학자들 중에는 ‘역지사지’를 인생의 좌우명 혹은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또한 이 역지사지다. 상대가 품은 속마음, 처해 있는 상황이나 배경을 가늠하는 것도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 서 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금융업계에 다년간 종사하며 서비스 전문가로 활약했던 장정빈 전 HSBC 상무는 저서 <공감이 먼저다>에서 ‘나와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는 소통과 공감의 핵심비결’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공감을 완성시키는 3단계를 ‘역지사지→역지감지→역지행지’로 정리했다. 필자는 여기에 ‘역지성지’를 덧붙여 새로운 개념의 역지사지易地四之를 제안하고 싶다.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역지사지易地思之: 생각을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필자가 10년 넘게 하고 있는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에서는 매년 역지사지 마인드 함양의 일환으로 ‘취업면접관 입장에서 생각하기’ 활동을 실시한다. 그래서 모의면접을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응시자는 물론 면접관 역까지 맡게 하는 역할극role play 형식으로 진행했다. ‘면접을 준비할 때 면접관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조언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면접관은 사장의 대리인으로, 회사의 입장을 대표해서 나온 사람이다. 면접관은 지원자에 대해 학력이나 능력 등 보편적 요소를 넘어 ‘저 사람은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사는가’ 등 구체적인 것들까지 알고 싶어 한다. 취준생은 이에 대해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입사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대기업 비서실에 근무할 때 경험을 소개한다. 당시 부장이던 필자는 임원이나 CEO로 일해 본 경험이 없어 회장을 보좌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부터 막연히 ‘내가 회장이라면?’ 하는 생각을 하기보다 회장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회장께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계시며, 경영에서 무엇을 우선시하시는지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리고 그 회장의 사고방식에 입각해 결정을 내리고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부족한 필자가 이후로 계속 비서실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노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역지감지易地感之: 움직이는 마음을 간파하라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역지감지易地感之는 온전히 감성적인 차원의 문제다. 머리로 상대의 생각을 가늠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상대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감정을 살피는 일은 상대를 이해하고 내가 취할 행동을 정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사회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도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절대적인 것으로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느낌, 즉 ‘좋고 싫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문제다. 상대의 감성까지 읽으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역지행지易地行之 & 역지성지易地成之: 행동이 없이는 변화도 없다

그러나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역지행지易地行之

이다. 역지사지易地四之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도하다가 포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대가 원하는 바에 맞춰 결과를 낼 때 비로소 상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상사가 지시한 업무를 모두 수행하거나 고객의 불만을 해결해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즉, 역지사지의 마지막 단계인 역지성지易地成之다.

독자 여러분도 살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네가 내 입장이 되어 봐라’와 같은 말을 한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물론 잘못된 태도이지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필자의 회사에서는 해마다 어버이날 즈음에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진행한다. 전 직원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하루 동안 함께 식사, 여행, 영화관람 등을 함께 한 뒤 인증샷을 찍어 감상문을 내는 것이다. 10년 넘게 실시되고 있는 이 행사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함께 데이트를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식을, 자식은 부모님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며 모두가 만족스러워한다.

필자는 현재 서비스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직원들에게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할 계획이다. 고객만족을 최우선가치로 두는 서비스업에 있어 역지사지와 공감은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비단 고객만족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역지사지의 자세는 꼭 필요하다. 누군가와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은 독자라면,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독자라면, 필자가 소개한 역지사지易地四之의 네 단계를 떠올려 보자. 나아갈 길을 찾는데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박천웅
국내 1위의 취업지원 및 채용대행 기업 스탭스(주)의 대표이사. 한국장학재단 100인 멘토로 선정되어 대상을 수상했으며, (사)한국진로취업 서비스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대기업 근무 및 기업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에게 학업과 취업에 대해 실질적인 조언을 하는 멘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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