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했던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좌절을 경험한 뒤 지독한 고립의 병을 알았던 여학생이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사람들을 만나 사랑을 받으면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15기 굿뉴스코 인도 단원인 이영은 씨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다가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고립에서 벗어났다. 그의 체험담이 연극으로도 공연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15기 굿뉴스코 인도 단원인 이영은 씨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다가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고립에서 벗어났다. 그의 체험담이 연극으로도 공연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내 꿈은 멋있게 제복을 입은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되는 거였다. 해군이 되면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바닥이었는데 꿈을 이루려고 열심히 공부했더니 100등이나 올랐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해군사관학교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혼자 남아 미친 듯이 공부했다.

하지만 결국 시험에서 떨어졌고 해군이 되는 꿈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욕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나에게 손가락질할까 봐 누구든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찌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병원에서는 우울증과 강박증, 공황장애라고 했다. 나는 하루 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고통에 대해 친구와 가족, 교수님들께 말해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정신이상자로 취급하며 외면하는 것 같았다. 인생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놀러 다니고 스펙까지 쌓느라 정신이 없는데,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내 모습을 보니 눈물밖에 안 나왔다. 어느 날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왜 나를 낳았어? 나 죽고 싶어.” 엄마는 “나도 너 때문에 죽고 싶다.”라고 하셨다.

하루는 이모가 하는 미용실에 갔다가 기다리면서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이모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물으셨다.

“영은아, 무슨 생각해?”

“아…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안돼요.”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말하면 아마 저를 정신 나간 아이라고 하실 거예요.”

그날 이모는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다. 이해한다고 하시면서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 주시기도 했다. 나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이모는 “영은아, 너는 불행한 아이가 아니야. 네가 하는 생각이 실제와는 달라. 공부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또 시험에서 떨어져서 그런 생각이 들 텐데 사실이 아니야. 깜깜한 방이라도 불을 켜면 어두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잖아. 빛이 오면 되는 거야. 네 마음에도 빛이, 행복이 오면 돼.” 나는 영원히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빛이 오면 마음이 밝아질 수 있다는 이모의 말에 희망이 생겼다.

“대학생들이 해외에 가서 봉사활동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다 오던데 너도 한번 가볼래?” 이모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 웃음을 잊을 수 없다. 나는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인도로 떠났다.

 

안 해본 일, 안 맞는 사람들 속에서 행복했던 인도에서의 1년

해외봉사단 활동은 정말 다양했다. 모두 도전해야 할 일들이었다. 언어를 배우는 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캠프를 홍보하는 일…. 함께 간 단원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피하며 살다온 내가, 인도에서 적응하며 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았다.

어느 날 단원들 모두 돈 없이 떠나는 무전여행을 떠났다. 잔뜩 기대하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는데 여행이 내 예상과 달랐다. 함께 다니는 파트너와 마음이 안 맞아 싸우기도 했고 몸도 너무 피곤했다. 지치고 속상하기도 해서 봉사단 지부장님께 불만을 털어놓았더니 지부장님이 “오늘 하루 먹고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야. 무전여행을 하면서 작은 것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나는 지부장님이 하신 이야기가 공감이 갔다. ‘맞아. 잘 먹고 건강하게 다닐 수 있는 것만 해도 말할 수 없이 감사한 건데….’

사람들과 만나는 게 두려워 방에만 있었는데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즐기는 대학생이 되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게 두려워 방에만 있었는데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즐기는 대학생이 되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여행을 계속하는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설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늦은 오후라 막막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파트너와 함께 어느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는데 우리를 보더니 ‘비 맞지 말고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전여행을 한다는 말을 듣고 일주일 동안 자기 집에서 머물다 가라고 했다. 비만 피해도 감사한데, 신기하고 고마웠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몇 달 전에 인도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를 준비했다. 음악회에서 할 연기를 연습하는데 다른 단원들은 모두 2막 공연을 준비하고 나만 인도 사람들과 1막 공연을 연습해야 했다. 게다가 맡은 역할이 술 취한 귀족이었다. 연기하기도 싫은데 술 취한 사람 역할이라니! 어디에 가서 숨어 있고 싶었다. 나는 미국에서 온 봉사단원 브리트니와 함께하게 됐는데 그 친구와 마음이 잘 맞지 않았다. 이런저런 사정을 알게 된 인도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영은아, 이번 기회에 부담스러운 일 좀 해봐. 전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 될 거야. 연기하는 것 안 좋아하지 않는 것 알아. 하지만 한번 해봐. 브리트니와 대화도 해보고.”

인도인 친구가 말해준 대로 브리트니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행복했다. 브리트니의 마음을 알게 되니 다투기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술 취한 귀족 연기 또한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한번은 다른 지역에 일주일간 캠프를 진행하러 갔는데 같이 간 단원이 현지인과 친하게 지내며 함께 다녀서 나만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외롭고 덥고 뭔가 하고 싶은 의욕도 없는 데에다 비좁은 샤워시설에 비누도 없었다. 마실 물은 옆집에서 얻어 와야 했다.

현지인 친구가 짜증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무슨 일 있느냐?’라고 묻는데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하며 자주 의기소침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내 말에 ‘왜 안 좋은 일만 보냐?’고 하며 긍정적으로 보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신기하게 마음도 표정도 다시 밝아졌다.

 

더 이상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미용실에 갔을 때 이모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을 맛볼 수 있었을까? 인도에서 동료 단원들이, 지부장님이, 현지인 친구들이 때마다 내 속마음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 지독한 고립의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즘은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누구보다 강한 마음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이영은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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