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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행복 꽃 세 송이가 폈어요!
전진영 기자 | 승인 2017.05.08 14:16

작은 질문 하나만 던져도 세 자매의 웃음소리는 크게 자지러졌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는 대화, 봉사, 행복, 여행 그리고 가족, 아버지였다.

혈액형은 첫째부터 O형, B형, B형. 조금씩 다르지만 해외봉사했던 경험을 말할 때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은 미소다. 왼쪽부터 첫째 강희선, 둘째 강희정, 셋째 강희지 세 자매는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이 되어 2012년부터 1년씩 캐나다 및 미국, 미국,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봉사했다.

안녕하세요? 세 자매 모두 해외봉사를 1년씩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첫째 희선: 안녕하세요? 저는 2013년에 미국 동부로 해외봉사 다녀온 첫째 강희선입니다. 대학 졸업 후 현재 금융권 회사에서 임원 비서로 일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지냈던 1년이 정말 행복해서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극복하곤 합니다.

둘째 희정: 저는 2012년에 캐나다와 미국 서부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둘째 강희정입니다. 지금은 상명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식물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은 순수하게 진심을 다해서 살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진심을 다하는 법을 배웠고, 지금은 제가 전공하는 식물식품공학을 통해 전 세계의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희지: 2014년에 도미니카에서 해외봉사하고 온 셋째 강희지입니다. 지금은 청운대학교 4학년으로 화장품과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도미니카에서의 경험들이 저를 한층 강하게 만들어주어서 대학생활 외에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활기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둘째 희선의 글로벌한 2012년멕시코 멕시칼리Mexicali에서 영어캠프를 준비하는 중. 태국 친구 끼라티와 풍선으로 하는 게임을 만들었다.
한 해동안 함께했던 한국, 태국, 미국 출신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첫째가 아닌 둘째 희정 씨가 먼저 해외봉사를 갔네요? 해외봉사 간 계기가 궁금해요.

둘째 희정: 네, 제가 먼저 다녀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가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 덕분에 감사해” “~해서 행복해”라고 이전에 하지 않던 말을 하는 거예요.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구나! 그래서 저도 자메이카 해외봉사를 지원했어요. 그런데 제가 몸이 좀 약한 편이라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하셔서 반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캐나다로 가기로 했죠. 저를 계기로 봉사활동에 관심 없었던 언니가 다음 해에 다녀오고 아버지도 조금씩 해외봉사란 걸 좋아하시게 됐어요. 그래서 막내 동생까지 해외봉사를 다녀왔죠. 제가 우리 집안의 해외봉사 물꼬를 튼 거죠(웃음).

첫째 희선: 저는 23살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주위 친구들은 한창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저는 잡일과 야근에 찌들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에서 봉사하고 있는 동생의 SNS 사진을 보았죠. 드넓은 들판과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동생을 보면서 저는 꼭 우물 안 개구리 같았어요.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외봉사를 지원했습니다. 동생이 다녀온 다음 해에 미국 뉴욕으로 떠났어요. 넓은 세상 경험,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현실탈피 마음으로 떠난 거죠.

셋째 희지: 중학생 때부터 해외봉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했고, 언니들이 한 해, 한 해 다녀오면서 해외봉사는 저의 버킷리스트처럼 정해졌어요. 그래서 첫째 언니가 다녀온 다음 해에,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바로 해외봉사를 떠나기로 했죠. 제대로 봉사를 해보고자 추천을 받아 간 곳이 도미니카공화국이었어요.

 

둘째 강희정 씨는 캐나다에서 어떻게 봉사했어요?

둘째 희정: 기억에 남은 하나를 꼽자면 멕시코 영어캠프입니다. 미국인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버스를 타고 멕시코까지 가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줬어요. 아직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실수할까봐 긴장하고 주눅이 들기도 했는데 계속해서 선생님이라고 따라주는 멕시코 학생들의 마음들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 외에도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어려웠던 만큼 배운 것도 많았어요. 봉사단원들끼리 공동체 생활을 해야 했는데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다반사였어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 4시간 동안 말다툼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사람은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임을 배웠죠. 행사 홍보 활동도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매일 만나고 부딪히면서 낯을 가리던 제 성격이 변하더라고요. 한여름에도 어그부츠를 신거나 패딩을 입는 자유분방미국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관념에서 벗어난 사고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셋째 희지: 둘째 언니가 미국 봉사 다녀와서 좀 더 대범해진 것 같아요.

둘째 희정: 첫째 언니 말로는 다녀오고 나서 많이 독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봉사활동을 다녀오기 이전의 저는 곱게 자란 온실 속의 화초였다면 봉사 후에는 잡초 같은 사람이 돼서 생활력이 강해진 제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해외봉사를 통해 글로벌한 사람이 됐죠. 이젠 외국인이 있다면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일단 말을 걸어보고 두려워하지 않아요. 미국에서 만났던 다른 나라 출신 봉사자들 중에 태국 친구와 특히 가까이 지냈는데요, 봉사를 다녀온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연락하고 있고 한 달 전에는 친구 초대로 태국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첫째 강희선 씨는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서 해외봉사를 떠나고 싶었다고 했는데 미국에서 봉사하면서 무엇이 가장 좋았나요?

첫째 희선: 미국에서 다민족 친구들을 만나 교류하는 월드캠프,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홍보, 2010년 지진으로 힘들었던 아이티에 소망을 배달하는 영어캠프 그리고 자메이카 캠프 등 쉴 새 없이 바쁘게 지냈습니다. 뉴욕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행사 홍보할 때는 정말 눈물이 나도록 춥고 힘들었고, 달라스의 날씨는 너무 더워서 지친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초청한 사람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공연을 관람한 뒤 공연을 보고 기쁜 얼굴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한 달 동안의 노고가 싹 날아가더라고요.

아이티에서 영어캠프를 할 때는 착하고 말 잘 들을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계속 지각하고 죽어라 말을 안 들어서 실망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발표했을 때 하나 주는 작은 스티커를 무척 좋아하면서 한 장 한 장 모으는 것을 봤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유치부도 좋아하지 않을 스티커 하나에 좋아하는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고 저의 작은 손길과 말 한 마디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시간들이 무척 감사했어요.

둘째 희정: 봉사 다녀온 언니가 예전과 같지 않았어요. 항상 부정적이고 삐돌이같은 이미지였는데 계속 좋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하니까요. 한 번은 쉬지 않고 새벽 두세 시까지 이야기를 해서 언제 잘 거냐고 일부러 중단한 적도 있어요.

첫째 희선: 사람들이 얼굴이 많이 순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성격이 부정적이었는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종종 듣고요. 봉사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알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늘 걱정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겁쟁이였는데 도전하는 법도 배웠어요.

셋째 강희지 씨는 언니들에 비해서 열악한 환경인 도미니카에서 봉사했는데, 많이 힘들진 않았나요?

셋째 희지: 아무래도 한국처럼 좋은 질의 음식을 먹지 못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지부장님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하면 제대로 하자고 하셔서 모든 활동마다 기억에 남아요. 월드캠프에서 부채춤을 공연했는데 그 어려운 춤을 3주 동안 연습해서 해냈어요. 에어컨도 없이 무더위 속에서 팔굽혀펴기와 체력단련까지 해가면서 연습한 덕에 강인한 체력을 얻었죠!

셋째 희지의 심신을 단련한 2014년월드캠프에서 부채춤 공연 스태프들, 다른 댄스팀 스태프들과 기념촬영.(아랫줄 오른쪽 끝이 강희지)
매주 토요일 2시에 한국어 아카데미를 열었다. 스페인어가 아직 미숙했을 때, 조르딘(줄무늬 남학생)과 까를리닌(가장 오른쪽)이란 친구가 친절하게 부가설명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여유가 없어서 좋아하는 음악을 배울 수 없는 학생들에게 음악기초지식을 알려주는 아카데미를 했어요. 그런데 첫날 아카데미 시간에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않고 딴짓을 해서 무척 힘든 적이 있어요. 알고보니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였어요.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장난과 사고를 일으킬 때 받는 시선을 관심으로 착각해서 잘못된 길로 빠지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수업에 안 나왔던 학생에게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고, 숙제 내주고, 연습해온 것에 대해 칭찬해주면서 학생들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바꾸어나갔어요. 그 학생들 중에 몇몇이 음악학교로 진학했을 때는 무척 감격스럽더라고요.

둘째 희정: 철없고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희지가 도미니카에서 봉사활동을 잘 해내고 있다고 들었을 때, ‘얘가 생각보다 의젓하구나, 다 컸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도미니카 현지인처럼 변해서 왔더라고요.

셋째 희지: 제가 원래 피부가 까만데 더 까맣게 돼서 왔다고 언니들이 놀리더라구요. 제가 언니들 밑에서 커서 눈치를 많이 보고 소극적으로 자랐는데요, 이젠 표현이 훨씬 활발하고 밝아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봉사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눈을 보고 대화했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서 누구와 대화해도 눈을 마주치고 경청하면서 듣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 학과 교수님이 제가 똑바로 쳐다보고 들어서 좀 당황하셨다고 하셔서, 제가 사과드리니까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는 자세가 좋다고 해 주셨어요.

첫째 희선의 보람 가득한 2013 년영어캠프 때 담당했던 반 학생들과 미팅 중. 멕시코 친구들이 우리에게 주려고 직접 만들어서 싸온 음식을 먹었다.
영어캠프에 지원한 미국 자원봉사들과 멕시코에서 가르칠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모두 아메리카 대륙을 누볐는데요, 자매들끼리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첫째 희선: 미국의 땅 끝 마을 마이애미요.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아열대기후인 마이애미는 망고나무가 많아요. 봉사하다 말고 떨어진 망고들을 주우러 다닌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랜드캐니언을 가서 함께 감탄하고 싶어요.

셋째 희지: 전 중남미 국가들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도미니카와 코스타리카, 페루를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의 표현을 잘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스럼 없이 음식을 나누어줍니다. 60~70년대 시골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중남미 사람들의 정겨운 삶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둘째 희정: 캐나다를 경유해서 샌프란시스코 가까이에 있는 산호세 지역으로 가고 싶어요. 제가 주로 활동했던 캐나다와 산호세에 가면 저를 반겨주는 친구와 동생과 어른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 분들께 받았던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고 자매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거든요. 그리고 부모님도 꼭 모시고 가고 싶어요. 특히 아버지요. 해외봉사 가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거든요.

첫째 희선: 아버지는 희정이가 해외봉사 갈 때는 반대하셨지만 동생이 SNS에 올리는 사진을 찾아보시면서 평소 안 보시던 지구본까지 꺼내서 “지금쯤 여기 있겠지? 언제 오냐?” 하면서 기다리시더라고요. 그 무뚝뚝한 아버지가 그렇게 표현하실 정도로 희정이를 많이 생각하고 응원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연이어서 해외봉사 갔다 오니까 왜 벌써 갔다왔냐고 농담처럼 말씀하시더라구요.

둘째 희정: 저는 솔직히 아버지가 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해외봉사 가서 무척 힘이 들어서 축 처져 있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어요. 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다정하게 서로 안부를 주고 받았어요. 그때 제가 아버지를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가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 걱정이 되시는구나....

그래서 이제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말이라도 걸어오시면 대화하려고 해요. 아버지가 “얘는 가만히 놔둬도 믿을 수 있다”라고 하시면서 저를 ‘짱짱이’라고 부르시거든요. 셋 중에 제가 제일 늦게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가족들과 지낼 시간이 없이 바쁜 요즘이지만, 이렇게 예쁜 자매들과 멋진 부모님이 있어서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곤해요. 우리 자매들이 해외봉사 다녀온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렇게 행복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세 자매는 자매끼리 유달리 친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언제든지 행복해지는 미소와 여린 감성을 지닌 첫째, 대범하면서 사고도 깊은 둘째, 애교가 많고 책임감도 많은 셋째까지 늘 함께한다. 덕분에 세 자매의 가족도 행복하다.

전진영 기자  gugong81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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