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의 어느 날, ‘참외왕국’ 성주군의 김항곤 군수를 만나러 서울 서초동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나뭇가지의 푸른 순들이 봄을 알리고 있었다. 세 시간이나 달렸을까, 스마트폰을 꺼내 위치를 확인하려는 순간 벌판의 비닐하우스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저게 다 참외 비닐하우스래요.” 한 달 전 성주에 다녀온, 동행한 취재기자의 말이었다.

드문드문 서 있던 비닐하우스는 그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덧 고속도로 좌우로 빽빽이 비닐하우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행렬은 톨게이트를 지나 시가지로 접어들 때까지 계속됐다. 대체 몇 개나 되는 걸까. 2016년 현재 성주군 내 참외재배 농가의 수는 4,142호, 한 집당 비닐하우스 10개씩 참외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4만 개가 훨씬 넘는 비닐하우스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성주군민들은 ‘성주 참외재배 단지도 만리장성처럼 달에서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뛰어난 맛과 향, 그리고 노란 빛깔 때문에 ‘금싸라기’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성주 참외. 그 참외 하나를 길러내는 데는 수십 수백 가지의 노하우가 들어간다. 참외가 잘 자랄 수 있게 토양 가꾸기, 볕 쬐는 시간 조절, 접붙이고 순 치는 방법, 농약과 비료에 대한 지식 등… 집집마다 레시피에 따라 김치 맛이 달라지듯, 4천여 농가에서 재배하는 참외의 맛과 향, 빛깔도 저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국민의 머슴’이라 행복하다는 경찰관 출신 군수

지난해 성주 참외의 생산량은 무려 16만 1,758톤으로 3,710억 원어치다. 일본,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 해외로도 약 200톤을 수출했다. 웬만한 중견기업 못지않은 수입이요, 실적이다. 이 정도면 성주군을 ‘주식회사 성주군’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68, 69대 군수로 지난 2010년부터 주식회사 성주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는 김항곤 성주군수다. 군수가 되기 전 그는 28년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통령 표창과 장관 표창 등 각종 표창을 스물여섯 차례나 수상했다. 군수가 된 뒤에는 친환경 농촌 만들기 사업인 ‘클린 성주’ 캠페인을 실시해 환경부와 조선일보가 주최한 ‘환경대상 평가’ 대상을 수상하는 등 행정가로서 주목받고 있다. 2014 지방선거에서는 65.32%를 득표했을 정도로 주민들의 지지도 높다. 그는 어떤 마인드로 성주 군정郡政을 이끌고 있을까? 기자의 질문에 김 군수는 대번에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라는 답변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국민이 행복하려면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공무원은 옛날 말로 하면 머슴인 셈이죠. 군수인 저는 큰 머슴이고요(웃음). 큰 머슴인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리더라면 열심히 하는 것 못지않게 아랫사람이 열심히 일할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도 있듯 취임 후 가장 신경을 쓴 분야가 인사입니다.”

정치는 단순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아니다. 경제, 산업,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영역을 망라한다. 그래서 김 군수는 공무원들에게 늘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따라 군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자세로 일할 것을 강조한다. 군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실제로 일선에서 군민들을 대하며 실무를 처리하는 것은 담당자들이기 때문이다. ‘부정한 청탁은 어떤 경우에도 거절했으며, 연공年功보다 능력 위주로 공평하게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리더가 정직하고 투명한 절차를 밟아 사람을 발탁해 기용하면, 아랫사람도 그런 리더를 믿고 본 임무에 충실할 수 있어서다.

김 군수가 성주군 공무원들에게 당부하는 또 한 가지는 ‘현장 중심의 행정’이다. 공복公僕이라면 주민이 도움을 요청할 때 신속히 달려가야 한다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지켜온 신조이기도 하다. 2000년대초 대구지방경찰청은 성서경찰서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성서 지역은 아파트 단지가 대규모로 들어섬에 따라 거주인구가 30만 명으로 증가했고, 유흥업소 또한 늘어나면서 치안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장직에 자원했다. 초대 서장으로 임명된 김항곤은 경찰서가 완공되기 전부터 손수 운전을 하며 관할구역을 순찰했다. 치안 취약지구와 우범지대를 사전에 파악해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범죄로 불안해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누구나 타성에 젖기 마련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시야도 좁아지고요. 그래서 저는 성주군 공무원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실태를 파악하고, 도청이나 중앙부처까지 올라가서라도 예산을 확보해 올 것을 주문합니다. 지금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공무원들이 알아서 움직일 정도예요. 하지만 공무원들이 잘한다 못한다는 판단은 군수인 제가 아닌, 국민들께서 최종적으로 내려 주셔야 하는 겁니다. 다행히 이제는 군민들도 ‘공무원들이 일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성원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성주는 낙동강 인근의 비옥한 토질과 풍부한 수원 덕분에 오래 전부터 참외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식수 및 농업용수 공급처인 성주호와 성주댐.
성주는 낙동강 인근의 비옥한 토질과 풍부한 수원 덕분에 오래 전부터 참외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식수 및 농업용수 공급처인 성주호와 성주댐.

건강한 참외는 건강한 환경에서, ‘클린 성주’ 캠페인

우리나라 참외의 70%가 성주산일 만큼 성주 참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브랜드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그러나 김 군수와 성주군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프리미엄 고객 확보와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시장 개척단과 함께 중국, 홍콩, 동남아를

돌며 참외왕국 성주를 알렸다. 그러나 리더로서 김항곤 군수의 안목이 제대로 발휘된 것은 지난 2012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클린 성주’ 캠페인이다.

“성주군에는 무려 6만 동棟이나 되는 비닐하우스가 있습니다. 한 동길이가 100m 정도니까 거기서 나오는 비닐쓰레기 양이 엄청나죠. 그 폐비닐을 처리하기가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방치하거나 묻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땅에서는 절대 맛있고 건강한 농산물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성주군 4천 참외농가들 중 1천 가구가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 다른 지역의 농민들은 물론 도시인들까지 성주의 참외농민들을 부러워할 정도다. 그러나 김 군수는 눈앞의 이익보다 성주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른 지역에서 ‘우리도 성주 가서 살자’고 부러워할 도시가 되려면 무엇보다 환경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참외 농사 잘 지어 수입을 올려도 삶의 터전인 환경을 잃으면 결국 한계에 부딪히거든요. 그래서 친환경 농촌보호 운동인 클린 성주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김 군수가 클린 성주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2012년 10월로, 4년 임기 중 절반 이상이 지난 시점이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환경보호 운동의 특성상, 당초 목표를 이루지도 못한 채 임기가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클린 성주야말로 성주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업’이란 확신을 갖고 클린 성주 캠페인을 과감히 추진해 나갔다. 장기적으로는 ‘성주=청정지역’이란 인식이 대중의 뇌리에 박히면 성주 농산물도 훨씬 더 가치를 인정받으리라는 점도 고려했다.

“공무원 모두가 한 마을씩을 담당해 모니터링하면서 폐비닐 등 농업쓰레기는 반드시 수거·처리하게 하는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이런 캠페인은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민들 스스로 ‘이건 꼭 해야 하는 사업’이란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마을마다 한두 명씩 환경지도자를 위촉해 마을 청소, 농배수로와 하천 정화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지요.”

자신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도로가 닦이고 수영장, 복지회관이 들어서는 등 군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모습을 볼 때면 희열을 느낀다는 김 군수.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감고 ‘내일은 뭘 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지역언론도 특집기사를 게재했고, 김 군수도 군민들을 상대로 꾸준히 강연을 실시하며 ‘클린 성주’를 홍보했다. 그 필요성을 깨달은 군민들도 호응했고, 민관이 합심하여 4년 넘게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클린 성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대통령상, 국무총리 표창, 경북 예산효율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고소득 농가 전국 1위 지자체 성주가 친환경농촌으로도 또 한 번 전국 농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클린 성주’ 홍보를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플래시몹 행사에 학생들과 함께한 한복 차림의 김 군수.
지난해 ‘클린 성주’ 홍보를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플래시몹 행사에 학생들과 함께한 한복 차림의 김 군수.

복지란 외면받는 이의 외로움을 풀어주는 일

이 정도면 지자체의 장長으로 어깨가 으쓱할 일이지만, 김군수의 시선은 결코 지나간 영광에 머물러 있지 않다. 매일 아침 집에서 키우는 개와 함께 구석구석을 돌며 ‘어떻게 하면 성주를 더 살기 좋게 만들까?’ 구상하며 하루를 연다.

“성주는 농촌이라 주민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패턴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씨 뿌리고, 농사짓고, 수확하는 식으로요. 외부와도 단절되어 있고 주민들도 새로운 시도를 주저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성주도 언제까지나 참외농사에만 기대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90만평 규모의 일반산업 단지를 조성해 중소기업 투자를 유치했어요. 농업이 발달하는 만큼 산업도 발달해야 두 분야의 장점이 극대화되고 성주도 더욱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청년층 이탈과 노인 증가로 인한 인구 고령화는 농촌이라면 어디나 풀어야 할 숙제다. 2014년 기준 성주군 인구는 총4만 4,981명, 그 중 61세 이상이 1만 4,728명으로 32.7%에 이른다. 무료급식, 기초연금 등의 복지정책이 점차 확대·시행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김 군수는 ‘진정한 복지란 외롭고 외면받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어르신들께 생활고나 질병보다 큰 고통은 외로움 같은 마음의 병입니다. 급식과 연금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러나 어르신들이 주변과 소통하면서 ‘내 인생이 결코 외롭지 않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삶의 의욕을 갖게 해 드리는 일이야말로 참 복지일 것입니다. 마을회관에서 다른 노인들과 어울리고, 일흔이 된 할머니가 수영장 와서 아가씨들과 수영도 하는…. 그런 복지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경찰 생활의 마지막을 고향 성주에서 경찰서장으로 마무리했다. 농심을 멍들게 하는 유사석유 제조·판매 사범과 사행성 게임업자를 검거해 치안안정에 기여했다. 하지만 경찰관으로서 고향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데 한계를 느껴 행정가로 변신해 7년째 일하고 있다. 자신과 군청 직원들의 노력으로 새 도로가 닦이고 수영장, 복지회관이 들어서는 등 군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모습을 볼 때면 희열을 느낀다는 김항곤 군수.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감고 ‘내일은 성주를 위해 뭘 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가 참 행복해 보였다.

성주생명문화축제일시: 2017년 5월 18~21일장소: 경북 성주군 성밖숲 일원올해로 6회째를 맞는 성주생명문화축제는 지난해 무려 35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정도로 규모가 매년 꾸준히 커지고 있다. 생명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한8개 전시관 및 체험공간으로 구성되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한다.
성주생명문화축제일시: 2017년 5월 18~21일장소: 경북 성주군 성밖숲 일원올해로 6회째를 맞는 성주생명문화축제는 지난해 무려 35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정도로 규모가 매년 꾸준히 커지고 있다. 생명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한8개 전시관 및 체험공간으로 구성되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한다.

김항곤 성주군수
1982년 간부후보생 30기로 경찰관 생활을 시작해 청도경찰서장, 대구 성서경찰서장, 성주경찰서장 등을 역임했다. 경찰 시절 자신이 늘 추구했던 모토인 ‘신속·친절·공정한 서비스’를 이제는 행정에도 적용시켜 군청 직원들과 함께 살기 좋은 성주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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