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 손병욱

지난 달 성주에서 참외농사 짓는 손인모 씨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아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의 길에 들어선 28세 청년의 비전과 의지가 궁금했다. 세계 최고의 농부가 되겠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주 제일의 청년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손병욱 씨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작업 도중, 손병욱 씨는 크림색 밀짚모자를 쓰고 색이 바랜 체크 남방과 헐렁한 바지를 입고 걸어왔다. 느린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목에 두르고 있는 수건처럼 그의 얼굴과 미소는 하얗고 밝았다. 참외를 돌보는 그의 손놀림이 아직 능숙하진 않지만 사뭇 진지하고 겸손하게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울면서 가기 싫었던 농장

그가 처음 참외농장에 발을 디뎠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고 한다.
“방학이나 공휴일 등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아버지의 호출을 받아 농장에 가서 일을 도왔어요.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가기 싫어서 도망가거나 갖은 핑계를 댔죠. 울기까지 했어요. 주로 손이 많이 가는 보온덮개를 덮는 일이나 참외를 수레에 실어 나르는 일을 했는데, 일을 처내기가 힘들었어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 흘리며 빨갛게 익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고생스러운 농사는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농사는 힘들기만 하고 좋은 점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거든요.”
참외가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대학은 울산으로 가서 다녔다. 평소 꿈꿨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여 촉망받는 IT인재가 되기로 다짐했다.

 

밤새면서 공부 아닌 게임

그러나 삶은 꿈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수업이 많지 않던 대학 새내기에게는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었고, 학교 가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냈다. 울산의 친척집에 지냈기에 부모님의 잔소리조차 없으니 그를 제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밤새 게임하고 나서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늘 자거나 졸기 일쑤였다. 결국 그가 받아든 성적표에는 C가 태반을 이루는 2점 초반대의 평점이 적혀 있었다. 성적표는 고스란히 부모님께도 전해졌고 당연히 심한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지원해주신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닌 학교에서 해야 할 공부는 안하고 게임에만 빠져있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무의미해진 대학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1학년 마치고 바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과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 속에서 2년을 보내다 보면 무질서한 제 삶도 변하리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새벽 6시 기상, 6시 반 아침 점호, 청소, 인원 파악. 7시 반 아침식사. 8시부터 하루 일과 시작... 그리고 10시 취침. 하루하루 성실히 임했고 분대장으로서 보람 있게 군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부푼 가슴을 안고 돌아온 그가 앉은 곳은 다시 컴퓨터 앞이었다. ‘오랜만에 한 판만…’ 했던 것이 몇 시간이 됐고 또 다시 밤을 새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했다. 게임 하나 끊지 못하고 늘 후회하면서 살아야 하는 자신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또 하나의 도피처를 생각했다. ‘먼 나라 어디든 가서 땀 흘리며 봉사를 한다면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해외봉사를 자원했다.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2012년 2월에 바로 필리핀으로 떠났다.

필리핀에서 태권도 아카데미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필리핀에서 태권도 아카데미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시골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필리핀 아이들.
시골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필리핀 아이들.

 

필리핀에서 만난 사람들

그가 도착한 수도 마닐라 시는 답답할 정도로 푹푹 찌는 날씨였고 멋진 빌딩이 많은 큰 도시였다. 그곳에서 태권도 아카데미, 한국어 교실, 문화 공연 등 생전 처음 해보는 것들을 해야 했다.

“아직 영어 몇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 태권도를 가르쳤고, 한국어 교실을 했습니다. 늘 익숙한 것만 하고 살고, 말도 잘 하지 않았던 저에게 그런 활동 하나하나가 크나큰 도전이었고 매일매일이 새로웠습니다. 힘들 때는 지부장님이 해주시는 조언을 듣고 제 마음을 되돌아보고 다시 시도해보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한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돈 한 푼 없이 오로지 배낭 하나 메고 일주일 동안 사가다라는 시골마을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필리핀인 동료와 함께 둘이서만 떠나자니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그가 만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낯선 외국인에게 차를 태워주고 음식을 나눠주는 필리핀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이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사가다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늦은 밤에 우리가 묵을 곳이 없어 찾고 있다가 한 경찰서에 들어갔죠. 경찰들에게 우리를 소개했고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경계하던 경찰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활짝 열고 맛있는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후 그 곳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친구가 됐고 소정의 후원금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한국인 대학생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는 사람들이 고마웠고, 그들 때문에 제 마음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늘 물질적 풍요 속에서 흥청망청하며 살면서도 행복을 몰랐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행복이었고 감사였다. 수도 마닐라와 다르게 날씨도 선선해서 정말 기분 좋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됐다.

이후 혼자서 또 다른 무전여행을 떠났는데, 역시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먹고 지낼 것이 걱정이었다. 그곳은 다행히 망고를 수확하는 시기였기에, 삼시 세끼 망고만으로 배를 채운 적이 있을 정도로 평생 먹을 망고는 다 먹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때 먹었던 망고 맛을 잊지 못해 필리핀이 그립다고 한다.

무전여행으로 다녔던 마을들을 바라보며.
무전여행으로 다녔던 마을들을 바라보며.
소박한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는 손병욱 씨.
소박한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는 손병욱 씨.

 

내 인생의 유턴

“제가 변화를 꿈꾸었던 군대와 해외봉사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군대는 상부의 지시와 정해진 시스템에서 제가 해야 할 일만 하면 안정적으로 지낼 수가 있어요. 힘든 훈련으로 신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체력은 단련되고 좋았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해외봉사를 가서는 마음이 무엇인지 배웠어요. 영어로 직접 수업하고, 돈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배고픔을 걱정하고…. 심적으로 부담되는 것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니 제 마음이 단련되고 훨씬 즐거워지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이 몹시 약했고,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필리핀에서 강인한 마음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이삿짐을 쌌다. 전과 같이 혼자 살면 또 다시 게임에 빠진 삶으로 되돌아 갈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딸린 작은 방으로 이사했고 경영정보학과로 전과했다. 학업에 열중하면서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다. 영어말하기대회, 축제 문화공연, 거리퍼레이드, 필리핀 단기봉사 등 여러 활동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것은 아버지의 참외 농장에서 하는 ‘농활’이었다. 여름방학 때 대학생들을 모집하여 참외 따는 일손을 도와주고 시골 계곡에 몸도 담그는 시원한 농촌봉사활동은 2013년부터 매년 이어지고 있다.

손부자 농장에서 생산된 참외의 맛과 품질은 시장에서 인정받아 최고 가격에 팔리고 있다.
손부자 농장에서 생산된 참외의 맛과 품질은 시장에서 인정받아 최고 가격에 팔리고 있다.
최고의 멘토인 아버지와 함께.
최고의 멘토인 아버지와 함께.

 

멋진 수트보다 밀짚모자!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때 그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전에는 거의 말이 없던 아들이었지만 이젠 아버지와 10분 이상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사이가 됐다. 30여 년간 참외 농사를 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만나며 가졌던 아버지의 마음을 들으면서 농산업에 대한 편견이 바뀌었다.

“아버지, 저도 농사 지으면 어떨까요?”
“그래, 사람은 어딜 가나 힘들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면 힘든 것이다. 네 마음이 편하면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

2016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곧바로 아버지의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후 ‘손부자 농장’의 아들 농부가 되어 아버지 농부의 보조역할을 하며, 보다 신선한 농산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2차, 3차 산업까지 확대할 수 있는 판매 다양화 전략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

“멋진 수트를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상이 부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농부는 그보다 더 멋있는 삶을 살아요.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새싹이 돋고 열매가 열리기까지 마음을 쓰지 않으면 좋은 결실을 맺기 힘들어요. 그만큼 깊이 생각해야 하고 날씨 등 변수에 따라서 일거리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고 이겨내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아버지는 이렇게 농사를 통해 마음의 세계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한때 ‘농사는 힘들기만 하고 좋은 점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던 소년 손병욱이 청년이 되어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강인한 마음을 지닌 어른이 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전문 농부가 되어 농사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세계를 알려주는 강사가 되는 꿈을 꾸는 손병욱 씨. 그는 오늘도 크림색 밀짚모자를 쓰고 참외를 딴다.

대학시절부터 진행해온 농촌봉사활동. 여름마다 전국 대학생들을 SNS를 통해 성주로 불러모아, 자연에서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와 자신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대학시절부터 진행해온 농촌봉사활동. 여름마다 전국 대학생들을 SNS를 통해 성주로 불러모아, 자연에서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와 자신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손병욱
‘손부자 농장’의 올해 2년차 농부로 아버지를 돕고 농산물 판매 다양화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필리핀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자신의 마인드 관리를 위해 어려운 일에 직접 부딪히고 있으며, 대학 졸업 후 그가 택한 진로가 농부다. 2016년에 청년농산업창업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농장의 규모를 확장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또한 경북농민사관학교 2030리더과정에 입학하여 농산업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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