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아프리카人]

화면이 작고 두꺼우며 무겁기만 한 휴대폰은 구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는 최신기능으로 무장한 값비싼 스마트폰보다 큰 배터리를 탑재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무겁고 투박한 휴대폰이 인기란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휴대전화 사용성향을 알아보자.

 

The Gods Must Be Crazy! 우리말로는 ‘신들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 글귀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코미디 영화 ‘부시맨’의 원제목이다. 문명이 닿지 않은 아프리카 원시사회 부시맨(산족) 마을에 어느 날 하늘에서 콜라병이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된다. 자연에 없는 기괴한 물건인 콜라병으로 인해 평화롭던 마을에는 일대 혼란이 발생하고, 주인공은 콜라병을 없애기 위한 자못 비장한 여행을 떠난다. 주인공 부시맨 ‘자이’는 문명에서 온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을 만날 때 ‘신들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라고 중얼거린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흔하디흔한 콜라병을 ‘신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보낸 물건이라며 놀라워하는 그들의 순박한 모습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을 것이다.

영화 <부시맨> 포스터
영화 <부시맨> 포스터

30년도 더 지난 고전영화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그 당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아프리카라고 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정글 숲 미지의 세계, 벌거벗은 식인종, ‘우가우가’ 이상한 언어, 굶주려 바싹 마른 흑인 어린이 등 해묵은 심상을 먼저 떠올린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프리카TV의 등장으로 전혀 상관없는 의미까지 덧입혀지고 있다. 도대체 별풍선이 아프리카 대륙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오래되고 왜곡된 이미지들은 오늘의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변화 중이다. 언제까지 부시맨의 추억에 빠져있을 순 없다. 21세기 주요 동반자로 함께 걷게 될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약국에서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을?

종종 ‘아프리카에서도 휴대전화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세상에나! 아프리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케냐에서는 성인의 80%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흔하다. 케냐뿐만이 아니다. 대다수 아프리카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의식주 다음가는 필수품으로 여긴다.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 탕가니카 호수의 어부, 콩고 정글 속의 뱀 사냥꾼 등 모두 주머니에 있는 작고 요긴한 손전화로 세상과 소통한다. 적어도 휴대전화를 보며 ‘신들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다.

아프리카의 똑똑한 장사꾼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휴대전화 수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필자는 어느 날 케냐 지방도시 ‘키수무’의 한 쇼핑센터에 들렀다. 안경점, 옷가게, 사이버 카페 등 다양한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여러 상점들이 각각 다른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판매하는 물건이 있었다. 그렇다. 휴대전화. 거의 모든 가게에서 휴대전화를 팔고 있었다. 안경점의 쇼윈도에는 안경 대신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진열되어 있었고, 약국의 선반에는 타이레놀과 구형 노키아 전화가 같이 놓여 있었다. 물론 서점과 신발가게에도 빠질세라 휴대전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잘 팔리니 본업과 상관없이 너도 나도 가게에 들여놓은 것이다. 심지어 재래시장의 노점 좌판에서 성냥과 좀약을 파는 꼬부랑 할머니들도 중고 핸드폰을 같이 판매했다.

사진관에서 휴대폰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는 모습. 구형 노키아 전화부터 스마트폰까지 빼곡히 정보를 적은 메모를 붙여 장사하고 있다.
사진관에서 휴대폰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는 모습. 구형 노키아 전화부터 스마트폰까지 빼곡히 정보를 적은 메모를 붙여 장사하고 있다.

휴대전화 도입 초기엔 아무 브랜드나 구입하던 아프리카인들이지만, 차츰 특정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나타나고 있다. 케냐인들이 가장 고급 브랜드로 생각하는 것은 역시나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 비싼 가격과 애플사 특유의 이미지 정책으로 아이폰 사용자는 부러운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주류를 이루는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과 사용방법이 달라 크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길 바라는 제품은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다. 뛰어난 성능은 말할 것 없고 안드로이드 계열이라 사용법도 익숙하다. 약국이든 사진관이든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삼성의 휴대전화는 가장 좋은 자리에 특별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다.

그 뒤를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가 따른다. 아프리카 스마트폰 시장은 화웨이, 테크노 등 우리에게 생소한 중국 브랜드들이 꽉 쥐고 있다. 중국 회사들은 케냐의 중산층이라면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낮은 가격에 스마트폰을 판매한다. 우리 돈 10만 원 내외면 쓸 만한 스마트폰을 살 수 있다. 비록 삼성이나 애플처럼 최고급 기종은 아니지만 소득 수준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품질도 만족스러운지 테크노는 2014년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애플은 14위였다. 우리가 모르는 스마트폰 시장이 아프리카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휴대전화 구입 기준

사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구입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저가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있지만 웬만한 기계 값은 한 달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느리고 비싼 모바일 데이터 환경은 스마트폰이 가진 매력을 떨어트린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이들이나 손을 떨지 않고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면 굳이 큰돈을 들여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구형 휴대전화가 선호되고 있다.

물론 구형 휴대전화라고 해서 아무것이나 구입하지 않는다. 빈한한 가계부에 거액의 지출 도장을 찍기 전 몇 가지 중요한 선정기준을 가지고 꼼꼼하게 전화기를 살핀다. 한국인이라면 단말기 성능이나 디자인, 통신사의 서비스 등이 우선시될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도 휴대전화 구입기준이 있다. 그들은 먼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휴대전화인지 확인한다. 라디오는 아프리카에서 TV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TV는 비싸고, 전기를 많이 먹으며, 시청료도 내야 하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농사일을 하면서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케냐의 많은 농부들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을 한다. 휴대전화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콘크리트 벽돌만 한 라디오를 옥수수밭까지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휴대전화에 장착된 손전등의 밝기를 확인한다. 전화기에 달린 전등으로 얼마나 넓은 방을 밝힐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만약 손전등이 달리지 않은 휴대전화가 있다면 오늘날 아프리카인들은 이렇게 외칠 지도 모른다. ‘이따위 쓸모없는 물건을 만들다니 신들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 밤이 되면 자주 전기가 나가곤 하는 아프리카에서 휴대전화에 달린 전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한다. 잘 모르겠다면 오늘 밤 불을 끄고 바가지로 샤워를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발가락 앞의 바가지 찾기도 어렵다.

정전이 잦은 아프리카의 밤은 조명이 없어 무척 어둡다. 때문에 상상 이상의 대용량 배터리와 손전등 기능은 구매의 필수 요소가 된다. X-TIGI의 S23 제품은 18,000mAh나 되는 배터리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력한 손전등이 달려 있어 투박한 외관이나 무게와 상관없이 인기 있는 휴대폰이다.
정전이 잦은 아프리카의 밤은 조명이 없어 무척 어둡다. 때문에 상상 이상의 대용량 배터리와 손전등 기능은 구매의 필수 요소가 된다. X-TIGI의 S23 제품은 18,000mAh나 되는 배터리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력한 손전등이 달려 있어 투박한 외관이나 무게와 상관없이 인기 있는 휴대폰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기준이 있다. 바로 배터리 사용 시간이다. 이들은 한 번 충전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화기를 최고로 친다. 케냐에서 인기몰이 중인 ‘X-TIGI’라는 중국제 휴대전화는 배터리 용량이 무려 18,000mAh에 달한다. 갤럭시S7 배터리 용량이 3,000mAh인 걸 생각해 보면 웬만한 휴대전화의 대여섯 배나 되는 대용량이다. 이 제품을 사용하는 케냐인 내 친구 헨리는 한번 충전으로 2주에서 한 달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X-TIGI 배터리에는 USB슬롯이 있어서 이 전화기를 이용해 다른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휴대전화에 배터리가 달린 게 아니라 배터리에 휴대전화가 달린 셈이다.

그리고 X-TIGI에는 커다란 전구를 갖춘 밝은 손전등이 달려있다. 전화기의 측면에 부착된 전등 전원 버튼을 누르면 바로 불이 켜진다. 굳이 휴대전화 메뉴에 들어가서 작동할 필요가 없다. 전화기를 꺼놓은 상태라도 전등 전원 버튼만 누르면 바로 손전등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대용량 배터리가 달려 있으니 종일 켜놓아도 하쿠나 마타타! 아프리카에서는 밝고 오래가는 전등이 있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멋진 아빠, 따봉 남편이 될 수 있다. 가격도 3천 실링으로 우리 돈 3만 5천 원 정도의 낮은 수준이다. 물론 라디오도 된다. 큰 배터리 용량과 강력한 손전등, 그리고 저렴한 가격. X-TIGI는 중국에서조차 유명하지 않은 휴대전화 제조업체였지만 아프리카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기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부시맨은 이제 그만

아프리카는 힘껏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성장 가능성은 이미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인들은 코미디 영화 속 우스꽝스런 원시인이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차츰 우리 삶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이 우리 앞에 섰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때도 부시맨이나 벌거벗은 식인종을 떠올려야 하나? 그건 아프리카의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식민지배와 내전으로 파괴된 고아와 거지가 많은 가난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와 마찬가지다. 우리의 시야가 아프리카의 특정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면 편견과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부시맨에서 벗어나 X-TIGI처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아프리카를 알아갈 때 우리는 그들과 함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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