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도 첫손에 꼽힐 만큼 가난한 나라, 말라위.
‘가난해도 마음만은 한없이 따뜻한 사람들과 지내며 행복했고, 지금이라도 다시 말라위로 가고 싶다’는 것이 15기 말라위 굿뉴스코 단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보낸 1년은 과연 어땠을까?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 말라위에 가기까지

“말라위는 Warm Heart of Africa,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란 별명을 가진 나라입니다.” 2015년 굿뉴스코 워크숍 나라별 소개시간, 저희는 선배단원의 이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전까지 저희가 말라위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프리카 국가라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말라위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인구 약 1,526만 명, 국민 1인당 총생산은 세계 185개국 중 183위, 5세 이하 어린이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같은 정보들이 떴습니다. 가면 고생길이 훤했지만,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말라위를 소개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맑은 하늘과 넓은 호수가 있고, 여느 아프리카 나라들과 달리 한 번도 내전을 겪지 않은 나라, 그리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 그 따뜻함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진 저희들은 2016년 2월, 부푼 마음을 안고 말라위로 날아갔습니다.

말라위에 도착하자마자 첫눈에 들어온 것은 더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말라위 국토는 전반적으로 고지대입니다. 하늘과 가까워서인지는 몰라도 손에 잡힐 듯 뭉게구름이 떠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동글동글한 눈망울과 새하얀 치아가 빛나는 말라위 아이들도 너무 고왔습니다. 차를 타고 공항을 출발해 말라위 IYF 센터에 도착했을 때 수십 명이나 되는 현지인들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기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이곳에서의 1년은 어떨까?’ 절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도착 첫날부터 생각도 못한 난관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요.

전기도 물도 없이 지내며 깨달은 한국의 풍족함

“이게 화장실?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 맨 먼저 저희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습니다. 말라위 센터의 공용화장실은 환한 대낮에 봐도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무섭고 더럽고 열악했습니다. 재래식 변기에서는 독한 냄새가 계속 올라왔고, 큼지막한 바퀴벌레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이 우글거렸습니다. 파리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 옆에는 전혀 샤워장 같지 않은 샤워장이 있었습니다. 좁은 샤워장의 구석에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불빛이 전혀 없는 어두컴컴한 밤에도 씻을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 며칠 동안에는 화장실과 샤워장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목조건물로 된 숙소에는 쥐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저희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밤에 길을 걷는데 뱀이 다리 사이를 지나가는가 하면, 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박쥐가 머리를 스쳐 날아간 적도 있습니다. 참, 말라위 센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태양열로 만든 전기를 축전지에 모아두었다가 굿뉴스코 단원 열 명과 센터에서 생활하는 현지인 30여 명이 함께 쓰는데요. 한두 시간 쓰고 나면 금방 방전되고 맙니다. 밤에는 태양열 램프를 쓰는데 역시 종일 충전하면 한 시간 정도 불을 밝힐 수 있습니다.

물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우물에서 길어다 씁니다. 물을 퍼올리려면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힘들이지 않아도 곧잘 물이 나옵니다. 하지만 100~200리터 정도 물을 퍼내면 펌프가 뻑뻑해지기 시작하고, 300리터 정도 퍼내면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때는 2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퍼낸 물은 물탱크에 담아 트럭으로 실어와 센터의 큰 물탱크에 옮기는데요.

300리터쯤 길어 와도 이틀이면 동이 납니다. 물을 길어오는 일은 남자 몫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물 좀 아껴 쓰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물론 여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물을 아껴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페인트통 절반만큼의 물만 있으면 이 닦고, 머리 감고, 샤워하는 데 충분합니다.

한국은 언제든 스위치만 올리면 불이 들어오고, 꼭지만 틀면 찬물 더운물이 콸콸 쏟아지잖아요? 전기도 수도도 없이 지내느라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평소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누리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감사하고 과분한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 쓰레기 쟁탈전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처럼 말라위에서도 옥수수를 많이 먹습니다. 옥수수가루를 끓는 물에 풀어서 저어가며 떡처럼 뭉친 ‘시마’가 주식입니다. 여기에 양배추볶음이나 시금치 비슷한 야채, 콩요리를 곁들이면 훌륭한 한 끼가 됩니다. 단원들 대부분이 음식에 적응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처음 갔을 때는 이 ‘시마’가 입에 맞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배부른 투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말라위에서는 매일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하루는 여덟 살짜리 여자 아이가 작고 푸른 비닐봉지를 갖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 그걸로 뭐하니?”라고 물었더니 흰개미들이 만든 집을 모으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걸 왜 모으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제 시선을 피했습니다.

알고 보니 배가 너무 고파 땅을 파서 흰개미 집을 꺼내 먹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앞에서 개미집을 꺼내 먹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개미를 보면 내가 먹을 테니 버리거나 죽이지 말고 가져다 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말라위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의료환경도 열악합니다. 말라위의 의사는 300명이 채 못 됩니다. 병원이라고 해 봐야 우리나라 공사현장에 세워진 가건물처럼 초라한 곳에서 가벼운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주는 것 정도가 치료의 전부입니다. 주변에 약국도 따로 없어 동네 구멍가게에서 감기약이나 진통제 등 기본적인 약을 팝니다. 시내 중심가에 가면 좋은 약국이 있지만 약값이 너무 비싸서 하루치 품삯을 모두 내야 약 하나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희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바로 쓰레기장입니다. 작년 이맘 때 탤런트 문근영이 이곳을 방문한 이야기가 TV에 나오면서 한국에도 꽤 알려진 곳입니다. 한국에서는 길에 쓰레기차만 지나가도 ‘어휴, 냄새~’ 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감싸쥐지요? 하지만 그 냄새도 말라위의 쓰레기장에 비하면 향수 냄새로 느껴질 만큼 그곳의 냄새는 지독했습니다. 차를 타고 갔는데도 냄새가 차 안으로 뚫고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몇몇 단원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황급히 차를 타고 문을 닫는가 하면,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비위가 강한 사람도 말라위의 쓰레기장 앞에서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뒤지는 말라위 사람들. 한국에도 TV로 방송되며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모습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비참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뒤지는 말라위 사람들. 한국에도 TV로 방송되며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모습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비참했다.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쓰레기장으로 들어간 저희들 앞에 보고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뭔가 쓸 만한 거 없나?’ 하고 더러운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사람들, 완전히 부서져 쓸 수 없는 물건인데도 서로 가져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아줌마들, 곰팡이가 슬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빵을 마치 횡재라도 한 듯 주워먹는 아이들까지…. 그 와중에도 쓰레기를 실은 트럭이 수시로 들어오고, 사람들은 하나라도 먼저 차지하려고 앞다투어 달려갔습니다. TV로 그 모습을 보신 분들은 ‘저거 연출 아니냐?’고 하시지만, 그건 저희들이 똑똑히 보고 온 현실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싫어하는 반찬이 상에 오르면 불평하던 일이 생각나 몹시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단돈 2천 원이 없어 학업을 그만두는 아이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그 아이들이 사는 마을도 사정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찾아간 어느 학교는 건물이 부족해 넓은 벌판에 선생님이 칠판을 하나씩 세워놓고 50~100명씩 아이들을 모아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가방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쓰는 물건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노트 하나, 펜 하나만 갖고 학교에 옵니다. ‘학비는 석 달에

2천 원 정도이지만 그것도 낼 형편이 못 되어 공부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많다’는 게 교장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소개로 그 학교 학생인 찰스와 프랭크네 집에 가 보았습니다. 찰스의 부모님은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찰스 아버지는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운 형편에 돈을 벌기조차 힘들어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발, 옷, 가방은 없어도 좋으니 배만 채우고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게 찰스의 소원이었습니다. 프랭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마저 많이 편찮으셔서 찰스를 잘 돌봐주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이런 말라위의 딱한 사정이 <투머로우> 희망캠페인에 소개되면서 많은 분들 이 저희에게 후원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덕분에 찰스와 프랭크의 학비를 내 줄 수 있었고, 음식을 장만해 가난한 마을에 찾아가 식사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음식을 먹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저희 가슴도 뭉클했습니다.

카메라를 처음 보는데도 말라위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는 데 능숙하다.
카메라를 처음 보는데도 말라위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는 데 능숙하다.
정이삭 단원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가난한 초등학생 찰스에게 학비와 옥수수가루, 슬리퍼를 후원해 주었다.
정이삭 단원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가난한 초등학생 찰스에게 학비와 옥수수가루, 슬리퍼를 후원해 주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 1년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들로 채워진 시간이었습니다. 현지 친구들은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데도 저희 단원들에게 ‘우리한테 태권도, 댄스, 한국어를 가르쳐줘 고맙다’며 만다지(빵)나 초콜릿 같은 선물들을 수줍게 건네곤 했습니다. 그런 사연들이 하도 많아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말라위에서 새로운 꿈도 생겼습니다. 간호학과에 다니는 강효준 단원은 언젠가 말라위에 돌아가 의료봉사를 할 날을 그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강의시간에 늘 뒷자리에 앉던 정이삭 단원은 이번 학기부터 맨 앞자리에 앉는답니다. ‘그 힘든 아프리카 생활도 이겨냈는데, 공부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그는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하는 말라위의 농업과 산업을 기계화시키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말라위에서 지내면서 저희는 그동안 얼마나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살아 왔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배고프고 힘든 가운데서도 늘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들보다 저희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 주던 말라위 사람들…. 말라위를 왜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고 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절대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지금이라도 그곳으로 다시 달려가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저희랑 말라위에 가보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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