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특집] 마음의 법칙을 알면 행복이 보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나는 이런 면에서 남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구석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등’을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선거에 출마해 평등을 부르짖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로는 평등을 원하지만 마음에서까지 갈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잘 살고 좀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길 원하며, 내 아들이 남의 아들보다 더 성공하기를 바라지, 결코 평등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나 민주주의와 평등을 외치지만 사람들은 서열을 세우고 계층을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대부분 내가 남보다 낫다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 재미로 삽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내놓고 자기가 남보다 월등하다고 떠들고,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드러내진 않지만 속으로는 ‘나는 잘났어. 똑똑해. 뭐든 잘해.’ 하며 삽니다.

사람 마음에 내가 남보다 낫다는 생각이 분명할 때 ‘자만’이 형성됩니다. 그 사람은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믿고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점점 더 각박해지고 인간관계가 어려워집니다.

 

자기가 잘한다고 믿었던 남자

제가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조그마한 섬에서 자랐는데, 그 마을에서는 마늘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사람이 학생 때의 일입니다. 그해 초여름에 주민들이 마늘을 수확해 길가에 가득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밤에 마늘을 몰래 빼내다 팔아버렸습니다. 마늘을 도둑맞은 주민의 신고로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섬 마을이다 보니 곧 발각돼 모두 잡혔습니다. 여섯 명이 배를 타고 육지에 있는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경찰서에서 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여섯 명이 함께 벌을 받으나 자기 혼자 벌을 받으나 벌을 받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다 뒤집어쓰기로 마음먹고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관에게 말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제가 먼저 마늘을 훔치자고 했습니다. 제가 리어카를 준비했고, 제가 훔쳤고, 제가 팔아서 돈을 썼습니다. 저 친구들은 그냥 뒤에서 따라만 다녔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경찰관이 사실이냐고 확인한 후, 다섯 친구는 돌려보내고 그 사람만 구속시켰습니다. 그가 석 달 동안 유치장에 있다가 석방되어 배를 타고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아 선착장에서 주저하고 있는데, 마침 마을로 가는 경운기가 있어 일단 얻어 타고 들어갔습니다. 동네에 이르자 입구 구멍가게 앞에서 동네 어른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가 그를 보고는 박수를 쳤습니다. 동네 이장님은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우면서 칭찬까지 했습니다.

“기성이는 앞으로 크게 될 놈이여! 기성이는 멋진 놈이랑께!”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가 죄를 다 뒤집어쓰고 친구들을 친구들을 내보낸 일이 동네에 알려져서 마늘 도둑이 일약 의리 있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 속에 ‘나는 크게 될 사람이야.’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고, 좁은 섬에서는 뭘 해도 크게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서 살아 보니까 크게 되기는커녕 밥 먹고 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크게 될 사람이라고 믿으니까 별 볼일 없는 일은 하기 싫었습니다. 마음은 높고 형편은 바닥이고 배는 고프고…. 주먹으로 먹고사는 깡패가 되었습니다. ‘남자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어차피 죽을 인생 확실하게 살자!’ 하고 무서운 것 없이 거칠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라이벌 조직에서 거액의 현금을 수송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그 돈을 탈취하기로 했습니다. 동료 둘과 현금 수송차를 따라가다가 한적한 곳에서 차로 가로막은 후 들판에서 싸움을 벌였습니다. 상대편은 여섯 명인데도 세 사람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돈 가방을 빼앗으려는데, 가방을 든 사람이 아무리 때려도 가방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교도소에서도 자기는 크게 될 사람이니까 주눅 들지 않고 늘 싸움을 걸었습니다. 한번은 악질 재소자와 싸웠는데, 교도관이 그 사람은 놔두고 자기에게만 징벌을 가했습니다. 화가 치민 그는 밧줄에 묶인 채로 교도관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가 기동타격대원들에게 끌려가서 무참히 맞았습니다.

복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장작불을 때는 일을 하면서 장작을 정리하는 커다란 쇠꼬챙이를 불에 벌겋게 달구어 손가락 길이만큼 끊었습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그것을 갈아 날카로운 칼을 만든 다음 기회를 노렸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 복도에서 그 교도관의 목에 칼을 대고 말했습니다

“나, 이 세상에서 대접도 못 받고 이제 살기 싫다. 그만 저세상으로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는 너무 외로우니까 같이 가자.”

교도관이 벌벌 떨었습니다. 교도관을 끌고 독방으로 밀고 들어가 “교도소장 빨리 오라고 해! 법무부장관도 오라고 해! 안 그러면 이 사람은 죽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교도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교도관을 구할 수 있을지 회의한 끝에, 전봇대 굵기의 기둥으로 독방 뒷벽을 치기로 했습니다. 곧 서른 명이 나무를 어깨에 메고 뒷벽을 세게 치자 벽이 무너지면서 그와 교도관이 더미에 깔려 기절했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얼마나 맞았는지 몸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교도소에서 아무도 그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이 이제 사람 대접 좀 해주는구나.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지!’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재소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는데, 그곳에서 자기를 몰라주면 또 교도관을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형량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살이가 길어질수록 그는 건강이 나빠졌고 급성간염에 걸려 쓰러졌습니다. 교도소 의무관은 심신 안정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그는 속이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안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다리도 펼 수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벽을 보고 욕하고, 웃고, 울면서 분노를 토해 냈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정신병에 걸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몸도 병이 드니까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자신의 삶이 처음으로 너무 싫고 두려웠습니다.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보통 재소자들이라면 견뎌내지 못했을 육체적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그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스물셋에 교도소에 들어와서 젊은 날을 고스란히 감방에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웠습니다.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대화할 상대가 한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이 떠오르고, 부모님께 효도 한 번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것 또한 몹시 가슴 아팠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면회도 안 되는, 독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쳐야 한다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교도소에 사형 집행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한 사형수가 처절하게 발악하며 끌려가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담배꽁초 하나로 싸우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돌아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꼭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렇게 가고 말 것을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그는 지난 삶을 돌이키고 새 삶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생각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지금은 형을 다 마치고 출감해서 이전과 완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2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믿는 마음이 있습니다. 치밀하게 사고하지 않고 살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기를 믿고 삽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자기도 잘못한 일이 많고, 실패한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면, ‘내가 정말 생각을 잘못했구나! 내가 잘난 게 아니고 잘하는 게 아닌데, 속았구나!’ 하고 자신을 분명히 인지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괜찮은 사람인 줄로 압니다.

자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람을 믿지 못할 때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해 보겠지만 그 사람을 믿으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처럼 자기를 믿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확인해보지 않고 옳다고 믿어버립니다. 실제로는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많이 잘못되고 틀릴 수 있습니까?

자신을 믿는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1차적인 생각들입니다. 1차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은 비참하게 살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자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2차적인 생각이라고 합니다. 2차적인 생각에서 보면, 1차적인 생각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자동적으로 올라오는 1차적인 생각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1차적인 생각이 들 때,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나의 이 생각이 옳을까?’ 하고 더 사고해 보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귀찮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1차적인 생각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와 반대로 사고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1차적인 생각에서 끝내지 않습니다. 2차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옳다고 믿은 1차적인 생각에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자기를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계속 자기 방식대로 삽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아직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도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보는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자기가 제일 큰 줄로 압니다. 그렇게 살다가 우물 밖으로 나와서 황소를 보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이처럼 좁은 세계 속에서 살면서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기 생각이 옳은 줄로 아는 사람은 결국 인생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장기 잘 두는 젊은이를 이긴 노인

중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노인이 나귀를 타고 큰 성에 들어갔다가 어느 집 문에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두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쓰인 팻말을 보았습니다. 노인이 문 앞에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계십니까?”

젊은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노인을 보며 물었습니다.

“뉘십니까?”
“이 집이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두는 분이 사는 집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이곳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는 여기서 백 리쯤 떨어진 시골에 사는 사람인데, 성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대문에 붙은 팻말을 보고 주인장과 장기를 한 판 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소이다.”

그러니까 주인이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저와 장기를 두시겠다니, 팻말을 보고도 하시는 말씀입니까?”
“예, 너무 잘 둔다고 하니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시골 노인과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둔다는 젊은 주인이 장기판을 놓고 마주 앉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냥 두면 재미가 없으니 우리 내기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지요. 무슨 내기를 할까요?”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돈 15냥을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두 사람이 장기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둔다는 사람이니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겠습니까. 노인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 장을 받으시지요.”

노인이 한참 들여다 보았지만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내가 졌습니다.”
“그렇죠? 지셨네요. 그럼 약속대로 15냥을 내셔야지요.”

그러자 노인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지요?”
“왜 그러십니까?”
“미안한데, 돈이 없습니다.”
“아니, 돈도 없으면서 내기를 하자고 하셨습니까?”

주인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노인이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타고 온 나귀는 싸게 팔아도 50냥은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졌으니 돈 대신 나귀를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어르신이 멀리서 왔는데 나귀를 타고 가셔야지요. 나귀 없이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그러십니까?”
“그건 그렇지만, 내게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요. 나귀라도 받아 주면 좋겠습니다.”

노인이 주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허허, 참! 이건 도리가 아닌데요. 정 그러시다면 나귀를 받겠습니다만 미안하네요.”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노인은 나귀 고삐를 넘겨주고 터덜터덜 걸어서 갔습니다.

주인은 내기에 이겨 나귀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낡은 안장을 새 것으로 바꾸고, 고삐도 새로 마련하고, 나귀를 깨끗이 씻긴 후 타고 다녀보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 노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르신,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난번에는 내가 약속한 돈을 드리지 못해 미안했는데, 나귀를 대신 받아 주어 감사했습니다. 내가 오늘 장기를 한 판 더 두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르신 실력이 저에게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꼭 한 번 더 두어 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돈을 15냥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이번에도 내가 지면 15냥을 드리겠습니다. 대신에 내가 이기면 전에 드린 나귀를 다시 주시겠습니까?”

주인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좋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나귀를 한 마리 주더니 이번에는 돈 15냥을 주러 왔으니 주인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던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시 장기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형편없던 노인의 장기 실력이 일주일 사이에 달라져 있었습니다. ‘어? 이 노인이 장기를 참 잘 두네!’ 주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두다가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주인장, 장을 받으시오.”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둔다는 사람이 노인을 당하지 못하고 졌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럼 약속한 대로 나귀를 몰고 가도 되겠습니까?”
“예, 당연히 몰고 가셔야지요.”

주인이 나귀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 사이에 안장도 고삐도 새 것으로 바뀌었고 나귀도 말끔히 씻겨 깨끗했습니다. 나귀가 먼저 노인을 알아보고 반가워했습니다.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노인이 나귀를 타고 가려는데, 주인이 “잠깐!” 하고 외쳤습니다.

“물어볼 게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일주일 전에는 어르신이 장기를 못 두었는데, 그 사이에 어떻게 실력이 늘었습니까? 그게 너무 궁금합니다.”
“아, 내가 그 이유를 설명 드리지 않았나요?”
“예. 꼭 좀 알고 싶습니다.”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는 전에 말씀드렸지요? 성에 도착해서 나귀를 타고 관청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입구에 ‘말이나 나귀는 들어갈 수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일주일 동안 맡겨둘 집이 필요해서 주인장에게 일부러 장기를 져준 것입니다. 오늘은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가야 하니 나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이긴 것입니다.”

주인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두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노인은 얼마든지 자기한테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당장 집에 가서 문에 붙여 두었던,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두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팻말을 뜯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문에 명패는 달지 않았지만, 마음에서는 ‘나는 잘해. 나는 똑똑해. 나는 남보다 뛰어나.’ 하는 마음을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실패를 해보기 전, 자기보다 잘난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자기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둔다고 생각했던 젊은 남자도 더 우월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실력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골 노인과 장기를 두고 자기가 잘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장기를 제일 잘 둔다고 생각한 사람이 노인에게 받은 나귀를 타고 다닐 때 얼마나 당당하고 거만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장기를 두어 노인에게 지고, 또 노인이 처음에도 일부러 져주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겸손해지고 진지해지고 성실해집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잘난 맛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기 바쁩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높아서 도박이나 게임이나 마약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제가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당해 온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기를 믿고 살다가 자기를 다스릴 자제력이 부족해 죄에 빠져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이 높거나 자기를 믿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잘났다는 1차적인 생각만 하지 말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알아서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면 훨씬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의 설립자이자, 세계 최초로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청소년문제 전문가이다. 최근 파라과이, 필리핀, 에티오피아에서 마인드 강연을 진행했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성경에서 발견한 그는 젊은이들에게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행복에 이르는 진정한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10가지 주제로 이야기한 자기계발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를 집필했는데, 2011년에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다. 저자의 동의를 얻어 매달 한 주제씩 본지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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