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학생들은 겉으로 볼 때 세상의 악에 물든 거친 불량배처럼 느껴졌지만 그들이 바라는 건 부모님으로부터의 아주 작은 사랑이었다. 그들을 외면하면 범죄자가 되지만, 이끌어 주면 변화할 수 있다. 그들의 어두운 성향이 불우한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 아프리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듯했다.

키베라 빈민촌의 골목길. 무질서한 빈민촌 환경은 범죄나 화재 등 사고에 매우 취약하다.
키베라 빈민촌의 골목길. 무질서한 빈민촌 환경은 범죄나 화재 등 사고에 매우 취약하다.

도시 속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 ‘빈민촌’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판매하는 시끌벅적한 시장통을 지나면 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걸어야 할 만큼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쓰레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눅눅한 흙길은 마치 녹이 슬어버린 양 붉다. 미지근한 바람에는 인분냄새 섞인 부패한 악취가 슬그머니 묻어오고, 꼬마들은 철사토막과 유리조각이 널린 공터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축구장에서 일어난 먼지는 풀풀 날려 나무판자와 양철로 엮어 세운 따개비 집에 내려앉는다. 창문도 없는 그 집에는 아마 오랫동안 아파온 환자, 혹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가 실의에 빠져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빈민촌의 흔한 모습이다.

벌판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빈민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인구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UN에 따르면 2014년 전 세계 도시 인구는 39억 명이라고 한다. 세계 인구의 54%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수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2045년에는 60억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란 뉴욕의 월가나 서울의 종로 같은 번화한 지역만 일컫는 건 아니다. 빈민촌 역시 도시의 한 부분이다.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250만 명이 슬럼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이로비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그들은 도시 면적의 단 6% 넓이의 땅에 빽빽하게 모여 살고 있다. 특히 25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키베라’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슬럼으로 유명하다.

농촌 경제가 무너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무작정 대도시로 상경한 사람들은 빈민촌으로 모여든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그들은 케냐에서 가장 적은 보수를 받는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우리 돈 10만원 남짓하는 월급을 받기 위해 그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몇 시간을 걸어 일터로 출근하고 밤에는 같은 길을 거쳐 판잣집으로 돌아온다. 가혹한 삶이긴 하지만 농촌에서보다는 더 많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일을 하고 살아간다.

후루마 빈민촌에서 바람 빠진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
후루마 빈민촌에서 바람 빠진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
방송국 스태프들이 학부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방송국 스태프들이 학부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단도라 빈민촌에서 촬영하고 있는 필자
단도라 빈민촌에서 촬영하고 있는 필자

강도, 마약환자, 매춘부가 다니는 빈민촌 고등학교

필자는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현지 TV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학부모의 마음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급격한 발전과 변화로 인해 케냐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아이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모르겠다’고 느끼고,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싫어해서 꾸짖기만 한다’고 여긴다. 가족의 대화가 단절되고 급기야 자녀가 졸업 후 사회에 나가면 아예 부모와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는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송을 통해 학부모와 자녀들이 속마음을 표현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매주 한 곳의 고등학교를 방문해 촬영하며 다양한 가족의 사연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며 마음이 변화되고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했다는 반응을 보내오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로비의 ‘고로고초’라는 빈민촌의 한 고등학교에 촬영이 잡혔다. 그 학교는 모든 학생이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특별한 학교였다. 이유는 이렇다. 고로고초는 너무나 가난한 동네라 부모들은 자녀의 학비를 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한 기부 재단에서 후원금으로 교실을 짓고 학교를 운영해 지역의 가난한 학생들이 무료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학교에 촬영을 하러 가기 전,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 학교의 학생 중에는 강도, 마약 중독자, 그리고 매춘부도 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어른들의 악에 물들어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청소년들은 주변에 보이는 것을 따라하면서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빈민촌은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극히 좋지 않은 환경이다. 학교 덕분에 아이들이 낮 동안에는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마약 중독자 아버지와 매춘부 어머니가 있다. 삶이 고단해 지칠 대로 지친 부모로부터 따뜻한 말을 듣거나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세상의 어른들이 저지르는 죄악을 가정에서 목격한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한다. 친구와 함께 강도짓을 하고 원조교제를 하며 빈민촌 청소년의 삶을 배운다. 학교 내에서도 자연히 그러한 풍조가 퍼지게 된다.

나는 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 부모를 원수로 알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사실 너희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하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냥 틀에 박힌 입바른 소리가 되지 않을까? 빈민촌에서 태어난 자신의 삶에 절망하고 범죄에 빠져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그들에게 희망을 말한들 귀담아 들을까? 직원 중 누구도 확답을 내지 못했다. 학생들이 우리를 좋아할지,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이 처한 심각한 형편에 압도되어 할 말이 없었다.

필자가 방문한 고로고초 빈민촌의 세인트 프란시스 아시시 고등학교.
필자가 방문한 고로고초 빈민촌의 세인트 프란시스 아시시 고등학교.

학생들도 방송 스태프들도 모두 울어버린 촬영장

마땅한 해답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고로고초 빈민촌의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작은 강당에 방송 장비를 풀고 무대를 설치했다. 학생들은 우리 주변을 기웃기웃 거리며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그들이 카메라나 음향장비를 훔쳐가서 촬영이 중단되지 않을까 불안했다. 프로그램 사회자에게 아이들의 가족 문제를 너무 자세하게 묻지 말라고 특별 당부를 했다. 되도록 교복을 입은 불량배 집단을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촬영을 마무리 짓고 싶을 뿐이었다.

마침내 녹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나 좋았다. 이전에 방문했던 어떤 학교보다 더 깊이 집중하고 크게 웃었다. 아이들은 사회자가 말하는 것에 그대로 반응하면서 웃고 손뼉을 쳤다. 작은 강당이 진동할 지경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녹화시간 동안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촬영에 동참했다. 아이들은 마치 오늘 제대로 웃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 듯, 매 순간 행복한 웃음을 터트렸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매우 즐거워했다. 카메라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도 그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며 공감해 주었다. 그들은 특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사랑한다는 그 짧은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부모님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손을 들고 카메라 앞으로 나와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지 처음으로 고백했다. 그들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때 우리가 미리 섭외한 부모님이 촬영장 안으로 깜짝 등장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된 학생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울었다. 그 말 한 마디가 뭐라고 부모도, 학생들도 방송국 직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고 너무나 오랫동안 살아온 그들이 방송을 통해 하나가 되어 포옹하고 웃고 더 많은 마음의 이야기를 술술 꺼내놓았다. 학생들이 모두 입을 모아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크게 외칠 때는 나의 마음도 두근거렸다. 아이들의 외모만 보고 지레 겁을 먹은 내가 부끄럽고 바보 같았다.

전날 염려와 달리 해맑게 웃으며 반응하는 고로고초 빈민촌 고등학생들
전날 염려와 달리 해맑게 웃으며 반응하는 고로고초 빈민촌 고등학생들
학생들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처음으로 고백했다.
학생들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처음으로 고백했다.

누구든지 관심을 받으면 변화한다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동안 ‘이토록 밝은 학생들 가운데 대체 어디에 강도, 마약 환자, 매춘부가 있다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빈민촌에 사는 고등학생들은 너무나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이미 악에 젖은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행복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비록 알코올에 중독된 폭군 아버지에게서라도 아이들은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를 만나길 바랐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다. 가족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처럼 감동스러운 모습은 드물었다.

촬영을 마친 후 선생님들이 말하길, 아이들은 몇 주 전부터 하루에도 수십 번씩 GBS 방송국에서 언제 학교에 오는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방송에 빨리 출연하고 싶은데 며칠 일찍 오도록 부탁하면 안 되냐고 보챘다는 그들.... 학생들은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관심 그 자체에 행복을 느꼈다. 겉으로 볼 때 아이들은 세상의 어두움에 물든 거친 불량배처럼 느껴지지만 그들이 바라는 건 아주 작은 사랑이었다. 그들을 외면하면 범죄자가 되지만, 이끌어 주면 변화할 수 있다. 빈민촌 고등학교 학생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부숴 주었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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