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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은 청각장애지만 나는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국가 교육근로장학금 수기공모
홍수정 기자 | 승인 2017.03.28 15:35

저는 올해 37세의 만학도인 대구미래대학교 2학년 재학생입니다. 국가장학금과 국가근로장학금의 지원 덕에, 늦었지만 꿈에 그리던 대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지금은 행복하지만 나에겐 멍울지도록 아픈 옛 기억이 있습니다.

17년 전인 풋풋했던 스무 살, 부산의 어느 4년제 대학에 입학해 선배들 앞에서 ‘안녕하십니까? 98학번 최민정입니다’라고 수줍게 인사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합니다. 대학생활이 시작되기 전 1997년 겨울. 우리나라에 IMF 금융위기가 닥치고 예외 없이 우리 집도 그 여파로 어려워졌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저는 신입생의 즐거운 일탈을 맛볼 겨를도 없이 낮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대학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임금으론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민정아, 네 학비에 자취방세와 생활비까지 감당하기가 우리 집 형편으로는 힘들구나.” 아버지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주 어려움을 토로하셨고, 철없던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마음 편히 공부만 하는 친구들만 보였고, 왜 나만 이렇게 구차스럽게 사는지 억울하고 서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일 년 반 동안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면서 무시와 열악한 대우로 힘들기도 했지만 배운 점도 참 많았습니다. 공부만 하는게 아니고 돈의 소중함과 사회생활의 융통성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대학 동기들과 실컷 놀아보고 캠퍼스 추억도 쌓고 싶었던 제게 사회진출의 든든한 첫발판이 되어 줄 거라 믿었던 대학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대학이란 학벌에 회의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어도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점점 사는 게 힘겹고 서러워졌습니다. 스물한 살 때 눈시울을 적시며 휴학계를 냈습니다. 그 휴학은 서른여섯 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대학 1학년 때 친구들을 만나면 저에게 영원한 휴학생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옷가게를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 딸을 낳아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습니다. 남편은 종종 “휴학한 대학은 꼭 다시 다니게 해줄게”라고 고마운 말을 했지만 녹록지 않은 형편에 대학공부는 한 해 두 해 미루다 마음에서 접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못 배운 한이라고 명명하던 그 한이 제 마음에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지인이 “학비걱정 없이 하고 싶어하던 공부 해봐. 국가장학금 제도라는 게 있는데 알아보고 대학에 지원해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늦게 알았다는 조급함에 바로 컴퓨터를 켜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학을 지원하고,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대학 입학할 기대에 들떠 흥분되었지만 차츰 국가장학금 지원을 못 받으면 어쩌나 싶어 불안하고 초조해졌습니다. 하지만 나의 불안과 초조함은 기대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국가장학금으로 대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애타게 하고 싶던 대학 공부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국가에 무한한 애국심이 솟구쳤습니다. 대학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국가근로장학금 제도로 팍팍한 살림에 책값이나 차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근로는 장애대학생 도우미입니다. 저와 연계된 장애대학생은 청각장애인입니다. 처음에는 오로지 대학을 다니는 데 부수적으로 드는 비용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국가근로를 시작했습니다. 강의시간 동안 학습보조를 하고 필기를 대신 해주고 강의 자료 등을 제공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수화통역사 선생님이 따로 있지만 사소한 이야기 등을 하며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수화통역사 선생님께 간단한 수화를 배워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제가 하는 아주 간단한 수화를 보더니 청각장애인은 직접 매일매일 여러 개의 수화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책을 못 찾자 코에 엄지손가락만 대고는 손바닥을 세워 흔드셨습니다. ‘바보~’라는 수화였습니다. 저는 팔짱을 끼고 씩씩대는 척을 했고,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지금은 장난기 많은 대학동기 같아 편안하고 익숙합니다. 도우미를 하면서 저 자신이 오히려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청각장애지만 저는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 차서 타인에 대한 거리감을 두고 있었고, 보지 않은 일은 믿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항상 자격지심에 끙끙 앓고 지냈습니다.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제게 말없이 따뜻한 짝꿍이 되어 주고 제 마음을 바꿔준 그분이 참 고맙습니다. 국가근로장학 사업을 통해 대학을 다니면서 책에서도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지만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사람과의 관계와 마음을 배웠습니다. 국가근로장학사업의 존재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갓 입학을 하고 친정아버지가 제게 책값 하라고 쌈짓돈을 쥐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민정아, 옛날에 대학을 마치게 못해 주어 참 미안하다. 아빠가 너에게 참 미안하다. 국가의 돈으로 늦게 대학공부 하는 거니까 열심히 공부하거라.”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씀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옛날 생각에 서럽던 마음이 메말랐던 눈가를 한없이 적셨습니다. 한 학기를 남긴 지금도 친정아버지는 종종 전화통화를 할 때면 내게 “공부 열심히 하고 있나? 애들 키우고 살림하면서 공부하기 힘들겠지만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학창시절 그리도 듣기 싫던 공부 열심히 하란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은 나를 기분 좋게 합니다.

우수한 성적도 받고 독학으로 컴퓨터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습니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도전할 용기도 생겼습니다. 타인과 함께 사는 법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찾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학교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살림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스무 살 당시에도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지금은 즐겁습니다. 학비, 책값, 차비 걱정 없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 강의시간도 시험기간도 즐겁습니다. 절실히 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지금 저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못 배운 한恨을 풀어주시고 대학 등록금과 학교 생활비 걱정 없이 사회진출의 발판을 다져주신 한국장학재단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장학재단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고 있을 많은 분에게 제 글이 희망과 용기를 드렸기를 바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을 감사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최민정

한국장학재단과 함께 행복하게 공부를 하며 대구미래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는 대구대학교로 편입하여 학업에 정진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홍수정 기자  hsj0115@it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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