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페스티벌에서 수십 명이 등장하는 공연들 못지않게 관객의 가슴을 울린 순서가 있다. 등장인물은 단 한 명, 피지 봉사단원 이혜윤 씨다. 백혈병으로 고통받은 적이 있기에 다른 아픈 이들의 마음도 보듬고 위로할 수 있었다는 그녀의 체험담을 전한다.

니싼불라비나카~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한 해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통해 피지에 다녀온 이혜윤 단원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피지에서 겪은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 저는 올해 23살, 대학교 2학년이에요. 믿어지시나요? 지금 제 키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여름방학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눈 앞이 하얘지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선생님이 백혈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앞으로 살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난 아직 어린데…. 중학교 교복도 입어보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보고 싶었는데.’

어린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사형선고였고 죽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다행히 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아 병은 낫게 되었지만, 병마와 싸우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성장이 아예 멈추어버렸고 항암치료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머리숱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숨고만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자꾸만 커져가는 생각들에 제 마음은 불행해져만 갔습니다. 몸은 나았는데 마음은 나아지지 가 않았습니다. 괜찮은 척하고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웃어넘겨 보자’ 했습니다. 누군가가 “너 머리숱 진짜 적다”라고 이야기하면 마음이 너무 아픈데 웃어넘겼습니다. “혜윤아, 너 몇 살이야?”라는 말에도 “어, 내가 쫌 어려보여” 하며 웃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숨긴 채 밝은 척하며 지냈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 제 모습을 숨기며 사는 것에 지쳐갈 때 쯤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알게 되었고 남태평양 피지로 떠났습니다. 제2의 에덴동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피지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불라!” 하고 인사하는 피지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죠. 어느 날 지부장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혜윤아, 너는 왜 웃고만 다니니? 왜 네 마음을 가리고 살아?”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습관적으로 웃고 있는 저를 정확하게 보신 지부장님에게 더 이상 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 이야기했습니다. 어렸을 때 백혈병에 걸려 오래 고생했었다고, 그런데 가끔씩은 백혈병에 걸렸던 제 과거가 부끄러웠다고. 가족들을 고생시킨 것만 같고 오랜 항암치료로 작고 볼품없어진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해 계속해서 밝은 척 해왔다고.

제 이야기를 들은 지부장님은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혜윤아, 너는 사실 행복한 사람이야.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네가 불행한 생각을 하면 불행해지고, 네가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어. 봐봐, 넌 백혈병도 이겨냈잖아! 도대체 뭐가 두려운 거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유롭게 네 이야기를 해 봐. 분명 너를 통해 소망을 얻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소망을 전하는 동안 너도 행복해질 거야.”

아, 슬픈 일이 아니었구나! 그 때 발견했습니다. 제게 백혈병을 앓았던 그 때의 시간은 상처가 아니라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흔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말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라세라세’라는 작은 마을로 무전여행을 가서 한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보니 한쪽 구석에 어떤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께 여쭤보자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19살 된 조카아이인데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도 못하고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하는 아주머니가 마치 제 모습과 같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왜 그걸 웃으면서 말하세요? 아주머니 조카 봐주기 힘드시잖아요, 밥도 먹여줘야 하고 대소변도 다 받아줘야 되잖아요. 리시가 밉기도 하셨죠? 원망도 많이 하셨잖아요. 이제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이야기해 보세요. 웃음으로 가리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는 아주머니의 조카인 리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리시. 나도 어렸을 때 백혈병에 걸려서 많이 아팠기 때문에 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 많이 힘들고 괴롭지? 그런데 우리 지부장님이 그러시더라,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그래서 네가 마음에서 다 나았다고 믿으면 몸도 그 마음을 따라갈 거야 ! 백혈병에 걸렸던 나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서 이 곳 피지까지 왔잖아 너도 분명히 나을 수 있어!”

이야기를 끝내자 리시도 아주머니도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피지는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큰 병이 걸리면 아무런 해결책이 없어. 그래서 봉사단체들이 와도 물품으로 후원하는 것으로 끝나. 그런데 너는 나와 조카에게 건강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해줬어.라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집을 나서는 제 손을 꼭 잡고 “이곳 피지에, 그리고 우리 집에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어느 날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내 조카가 걷는 모습으로 너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의심치 않아”라고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던 아주머니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피지 사람들은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엉덩이도 크고, 작은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 제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 꼭 아기가 된 것 같은데요, 작고 볼품없는 저를 통해 희망을 얻고 꿈을 얻었다고 이야기해 주던 피지 사람들. 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산타로 만들어준 피지로 꼭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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