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철

저는 인천에서 조그만 동네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일교차가 심해지고 황사까지 겹치면서 저희 약국은 많은 환자들로 붐빕니다. 케이블채널이나 인터넷 등으로 누구나 손쉽게 건강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덕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님들은 약사인 제게 평소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몸이 자꾸 나른한데 무슨 좋은 약이 없을까요?”라는 직장인, “남편이 허구한 날 술을 달고 사는데, 좋은 간장약 있나요?”라는 주부, “우리 애는 통 밥을 먹지 않아요! 편식도 심하고요”

“우리 애는 키가 안 커요. 반에서 제일 작아요”라고 하소연하는 부모님들, 그리고 “알레르기 비염 재발 안하는 약 좀 주세요”라며 환절기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레르기 환자 손님까지….

약사가 만물박사인 줄 아는지 가족의 질병이나 약물에 대한 것들 외에도 부부 간의 불화나 자녀와의 갈등 등 별의별 고민거리를 다 털어놓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그런 질문들이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대체로 성심성의껏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답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제 간단한 몇 마디가 손님들이 건강한 삶을 사는 데 도움과 위안이 되고, 그래서 밝은 얼굴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약사로서 작게나마 보람을 느낍니다.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제가 그동안 상담한 경험을 토대로 흔히 약에 대해 갖는 오해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흔히 두통이 오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약을 드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두통약은 조금이라도 통증이 올 때 빨리 복용해야 소량으로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두통이 시작된 지 오랜시간 흐른 뒤에 약을 먹으면 더 많은 용량을 먹어야 할 뿐 아니라 효과도 기대치보다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분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감기가 올까 봐 미리 약을 드시기도 합니다. 몸에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와 어떤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약을 먹으면 오히려 몸의 항상성을 떨어뜨립니다. 항상성恒常性이란 우리 몸이 체온이나 혈당, 호르몬 분비량 등 신체의 조건들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을 말합니다. 항상성이 떨어지면 신체의 균형이 깨져 진짜로 감기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건강을 위해 흔히 복용하는 약 중 하나가 영양제입니다. 그런데 평소 질병 때문에 먹는 약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영양제를 기피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런 분일수록 오히려 영양제를 꼭 복용하셔야 합니다. 진통제, 고혈압약, 항생제, 변비약, 갑상선약 등 대부분의 약들은 우리 몸에서 영양소를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당뇨약의 일종인 메트폴민을 장기간 복용하면 비타민 B12가 몸에서 많이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들 사이에는 비타민 B12 결핍으로 인한 말초신경장애 증상이 종종 목격됩니다. 흔히 먹는 위장약들 중에서도 비타민 B12 결핍을 야기하는 약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호르몬제는 비타민 B군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필수영양소인 비타민 C, 마그네슘, 셀레늄, 아연 등의 영양소를 뺏어갑니다.

어떤 고지혈증약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코큐텐 CoQ10을 강탈해 갑니다. 흔히 먹는 진통제 또한 우리 몸에서 많은 영양소를 앗아간다는 것은 여러 문헌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난 1993년 일본 과학기술청은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야채들의 성분을 분석한 뒤, 1952년과 1982년 일본 국내에 배포한 식물성분 분석표와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야채에 함유된 비타민과 미네랄 등 각종 영양소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야채의 대명사인 시금치의 경우 100g당 철분 함유량은 1952년 13mg→1982년 3.7mg→1993년 0.7mg으로 감소했으며, 비타민 C는 100g당 150mg에서 8mg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약 40년이 지나는 동안 영양소의 양이 19분의 1로 급감한 것입니다. 100년 전에 비해 아시아 지역의 토양은 78%, 아프리카는 74%, 남미는 72%, 미국은 85%의 미네랄이 소멸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화학비료의 사용, 토양의 산성화, 오랜 경작으로 인한 토양 내 영양분 고갈 등이 그 이유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과거와 달리 온갖 먹거리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 자료가 보여주듯 오히려 미네랄 등 인체에 필수적인 영양소는 섭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영양소 보충이 필요한 데다, 질병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들은 대부분 우리 몸에 영양소 결핍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약을 복용하는 분들은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 영양소를 더욱 더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약은 잘 쓰면 진짜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건강 정보의 홍수시대’로 불릴 만큼 다양한 건강정보가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세상입니다. 어떤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하기도 힘듭니다. 무엇보다도 약을 복용하기 전, 반드시 의사나 약사 등 전문가와 상담을 해 보고 드시기를 권합니다. 국민 모두가 전문가를 통해서 약의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복용하는 건강한 우리나라,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문철
인천시 부평구에 소재한 동인당약국 대표약사다. 1988년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면서 약사의 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은 단순히 약을 구입하는 곳이 아닌, 아픈 환자들의 마음에 여유를 주는 따뜻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날마다 200명 넘게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약의 복용법을 설명하고 때로는 일상 속 고민까지 상담하느라 지치기도 하지만, 밝은 얼굴로 돌아가는 손님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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