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송태진 씨가 아프리카 풍속과 문화를 매달 <투머로우>에 소개한다. 이번에는 한국의 ‘계란 파동’ 소식을 듣고 케냐의 계란 가격에 대해서 글을 보내왔다.

 

비싼 계란의 낯선 아우라

2017년 정유년, 닭의 해를 맞이한 우리는 갑자기 치솟은 계란의 가격에 울상을 짓고 있다. 30알 한 판에 3천 원에서 5천 원 남짓하던 가격이 9천 원, 심하면 만 원 이상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계란 한 알에 300원이라니! 분식집 아주머니는 라볶이에 서비스로 삶은 계란을 넣어야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가정주부는 저녁 반찬으로 계란찜을 해달라는 자녀에게 차라리 돼지고기를 구워먹자고 제안한다. 계란 그 녀석이 소갈비나 바닷가재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 때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고시원 친구 같았던 계란이 하루아침에 소녀 팬에 둘러싸인 유명 연예인이라도 된 양 도도해 보인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계란의 낯선 아우라가 어색하다.

그런데 그걸 아는가?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 케냐 사람들은 우리보다 몇 배나 더 비싼 계란을 사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얼핏 생각하면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생활 물가는 더 저렴할 것 같지만 계란만큼은 그렇지 않다. 가격이 폭등했다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계란 가격은 케냐에 비하면 저렴한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계란을 먹는다는 건 케냐인들에게 특별한 일이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케냐의 계란 문화를 알아보자.

케냐 토종닭이 낳은 계란은 한 알에 20실링 (한화 24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팔린다
케냐 토종닭이 낳은 계란은 한 알에 20실링 (한화 24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팔린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예전부터 케냐 사람들은 닭을 좋아했다. 뒷마당에 닭장을 만들고 적당한 먹이만 공급해주면 쑥쑥 자라나는 닭. 우리네 토종닭처럼 케냐에서도 그렇게 닭을 길러왔다. 횟대에 올라 꼬끼오 하고 시원하게 우는 장닭, 마당의 덤불을 헤치며 날쌔게 뛰어다니는 암탉, 그리고 그 뒤를 쪼르르 따라다니는 솜털 난 병아리들.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그 날개 달린 작은 가족의 모습은 주인에게 소박한 희망과 행복을 꿈꾸게 했다.

도시에 살던 손자가 시골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할머니는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가장 통통한 닭을 생포한다. 할머니는 요란하게 퍼덕이는 닭을 능숙하게 잡아 두 다리를 거꾸로 묶어 도시로 돌아가는 손자에게 쥐어준다. 손자는 꼬꼬댁 거리는 살아있는 닭을 안고 버스를 타야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닭을 선물 받은 그는 주변 승객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다. 닭은 케냐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재산이다. 사랑하는 손자에게 주려고 아껴놓는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작은 마당에 뛰어노는 닭 한 마리, 한 마리는 주인이 병아리 때부터 돌보며 키워온 집안의 식구와 같다. 애정이 묻은 그 닭들은 주인의 자랑거리다.

전통방식의 닭 사육은 지금도 널리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대규모로 닭을 사육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 경쟁력이 좋지 않다. 소규모 농가에서 대여섯 마리를 키워 유통하는 닭은 꽤나 고가에 거래된다. 같은 무게로 치면 닭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 시장에 가면 닭장 안에 갇힌 살아있는 닭을 볼 수 있다. 농부가 닭 집 주인에게 판매한 것이다. 주부들은 시장에서 퍼덕이는 산 닭을 구입한다. 마당이 있는 사람은 구입한 닭을 집에서 기를 수도 있고, 고기가 필요한 사람은 닭집에서 닭을 잡아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전 시장통 모습과 비슷하다.

전통적인 닭 사육방식에서는 계란 요리를 먹기가 쉽지 않다. 계란 한 알은 곧 병아리 한 마리, 더 크게 생각하면 닭 한 마리와 그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당연히 계란을 먹기보다는 병아리로 부화시키길 바란다. 계란 요리가 상 위에 오르려면 조금 다른 의미에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진지한 고민을 거친 후에야 가능했다. 매우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계란이 상에 올랐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케냐에서 계란 한 알을 먹는 건 닭 한 마리를 포기해야만 즐길 수 있는 꽤나 커다란 사치였다.

 

계란 오믈렛 한 접시에 9,300원

최근 케냐에도 양계 산업이 움트고 있다. 최신식 대규모 양계장에서 닭고기가 생산되고 있고 케냐인의 입맛을 겨냥한 치킨 전문식당은 연일 호황이다. 덕분에 계란의 가격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저렴해졌다. 수도 나이로비의 시장에서 계란은 한 알에 11실링에서 15실링 사이에 판매된다. 케냐 토종닭이 낳은 고급 계란은 한 알에 20실링에 팔린다. 11실링은 우리 돈으로 대략 120원 정도다. 30알 한 판으로 환산해보면 3,600원에서 7,200원 정도의 값이 매겨진다. 이 정도면 계란 파동이 일어나기 전 우리나라의 계란 가격과 비슷하다.

케냐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케냐의 계란프라이. 계란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다른 재료와 섞어 먹지 않는다
케냐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케냐의 계란프라이. 계란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다른 재료와 섞어 먹지 않는다

계란 한 알 가격이 100원 정도라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 케냐라는 사실. 2015년에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케냐의 1인당 명목 국내 총생산은 1,432달러인 반면 우리나라는 27,513달러에 이른다. 단순히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케냐 국민에 비하면 19배 이상 부유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와 케냐의 계란 가격이 비슷하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19배나 비싼 계란을 먹고 있다는 의미다. 그들이 구입하는 11실링, 120원짜리 날계란을 우리나라에서 구입한다면 체감상 한 알에 2,000원에 달하는 엄청나게 비싼 값이 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계란을 자주 먹지 못한다. 만약 계란 8개를 구입한다고 해도 4명의 작은 가족이 배부르게 한 끼를 먹을 수 없다. 한 사람당 두 개의 계란을 먹고 배부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돈으로 옥수수 가루를 산다면 일주일을 먹을 수 있다. 같은 돈으로 한 끼 간식도 안 되는 계란과 일주일을 먹을 수 있는 옥수수가루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란을 포기할 것이다. 옥수수나 콩, 채소,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케냐의 수수한 식단에는 계란이 올라올 자리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계란을 먹을 때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케냐인들은 계란을 다른 음식에 섞어 먹지 않고 따로 요리한다. 오믈렛이나 삶은 달걀 등 계란의 맛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요리를 선호한다. 한국인이 라면에 계란을 풀어먹듯 다른 요리에 부재료로 섞어먹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계란을 다른 재료와 섞어먹기엔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가의 캐비어나 참치회를 카레나 라면에 넣어먹지 않듯 케냐 사람들은 계란을 다른 재료와 섞어먹는 걸 꺼린다. 비싸게 주고 구입한 계란인데 그 맛이 흐려지면 아쉽지 않은가.

레스토랑의 메뉴판. 오믈렛의 가격이 상당하다.
레스토랑의 메뉴판. 오믈렛의 가격이 상당하다.

일반 식당에 가서 계란 오믈렛을 시키면 우리 돈 천 원이 넘는다. 케냐인들이 밥 먹는데 500원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걸 생각해보면 꽤나 비싼 메뉴다. ‘JAVA’라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계란 세 개를 넣어 만든 오믈렛에 채소 등을 섞어 780실링, 우리 돈 9,300원 가량을 받는다. 같은 식당에서 판매되는 소고기 스테이크가 950실링, 11,400원 가량인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비싼 값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고급 식당이라고 해도 계란 오믈렛 하나에 9,300원이라니! 케냐의 일반 노동자들이 한 달에 10만 원 가량을 번다는 걸 생각해보면 경악할 가격이다. 한국인도 선뜻 먹기 힘들 만큼 비싸다. 케냐에서 계란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위상을 갖고 있다. 출출할 때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음식이 아닌 게 확실하다.

닭을 키우는 케냐 농가. 닭과 병아리는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
닭을 키우는 케냐 농가. 닭과 병아리는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
시장에서 닭을 사러온 사람들. 같은 무게로 치면 닭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비싸다.
시장에서 닭을 사러온 사람들. 같은 무게로 치면 닭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비싸다.

 

케냐 국민들도 저렴한 계란을 먹는 날이 오길

사실 계란이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식재료로 자리 잡은 건 오래 되지 않았다. 광복 직후의 계란 가격은 같은 무게의 소고기 가격과 비슷했다. 1970년대 밥상에는 계란이 딱 하나만 올라왔다. 아버지가 드실 계란이었다. 아이들은 군침만 삼키다 아버지가 남겨줘야만 계란 조각을 나눠먹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도시락의 계란프라이 빼앗아 먹다가 싸움 났다는 이야기는 40대 이상의 세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평범한 경험이다. 귀하신 몸이었던 계란의 가격은 양계 산업이 발전하면서 점차적으로 내려갔다. 영양이 풍부하고 저렴해진 우리 계란은 국민의 식문화와 건강 상태를 크게 개선시켰다.

최근 우리나라의 계란 파동과 아프리카 케냐의 계란 현실을 비교해보며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저렴하게 계란을 먹어왔는지 새삼 돌아보며 감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케냐 사람들은 너무나 비싼 가격 때문에 계란을 쉽게 먹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발전한 길을 케냐도 따라 걷길 바란다. 산업이 발전하고 국민의 수준이 높아지면 경제원리에 따라 계란의 가격 역시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인들도 단백질과 영양 가득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게 될 것이다. 케냐가 계란 하나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http://blog.naver.com/impork3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http://blog.naver.com/impork3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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