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유명한 콜롬비아. 나는 한국에서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지만 콜롬비아에 봉사활동을 와서 커피를 애용하게 됐다. 이틀에 한 번 꼭 마시는 커피가 몸과 마음을 깨워주고 향기롭게 음미할 수 있는 기호식품이 되었다.

콜롬비아는 독특하게도 지역이 1등급부터 6등급까지 나뉘어 있다. 1등급 지역은 수도, 전기, 가스 시설이 열악한 편이다. 보통 시민들은 2, 3등급 지역에서 잘사는 시민들은 4, 5, 6등급 지역에 모여 산다. 일 년간 콜롬비아 봉사단원들은 ‘엔가띠바Engativa’라는 2등급 동네에서 살았다.

사실 ‘왜 이런 등급을 매겨 놓았을까?’이해할 수 없었다. 2등급 지역이라고 해도 비교적 치안이 안전해서 걱정할 일도 없고 불편한 것이 없었다. 다만 집들의 크기가 다른 지역보다 작을 뿐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크고 좋은 집들이 모여 있는 지역보다 더 정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콜롬비아에서 사는 처음 한두 달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뭐든 열심히 하며 지냈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날 무렵 한국 음식, 부모님, 친구들이 조금씩 그리웠다. 봉사단원으로 배우고 해야 하는 청소, 외국어 공부, 홍보, 현지 청소년들과의 건전 문화댄스 연습, 아카데미 등 매일 하는 일들이 달랐지만 점점 부담스러웠다. 혼자 끙끙 앓다가 지부장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다. 지부장님은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은총아, 사람들은 문제없이 살다가 작은 문제라도 만나면 부담감을 크게 가져. 그런데 그런 과정들을 넘어가면 마음이 자라. 새로운 도전 속에 부담은 작아지고 마음은 더 성장해간단다. 그러면 자신감도 생기고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그때부터 나는 매일 하나씩 어렵게 느껴지는 부담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다고 여길 때도 있었지만 한 번 두 번 도전과정을 겪다 보니 즐겁고 재미있었다. 부담을 뛰어넘는 맛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목요일마다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 토요일마다 한국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태권도 아카데미를 열었다. 그리고 대학을 찾아가서 한국어 강사로 강연도 했다. 부담을 넘었기에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친구를 얻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것들을 콜롬비아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도전 속에서 나는 점차 성장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스페인어로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스페인어를 잘 못하니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친구를 사귀고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한번은 용기를 내서 현지 친구들에게 스페인어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친구들이 ‘자신에게 이야기해주어 고맙다’며 자신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서로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이 흘러 콜롬비아에서의 생활이 행복했다.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라는 봉사활동의 모토처럼 콜롬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부담이라는 벽을 넘지 않고 피했다면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가끔 땀을 흘리며 지부로 돌아와서 야외 욕실에서 샤워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밤하늘을 올려보면, 캄캄한 하늘에 수많은 별이 총총 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한국에서 느껴볼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이제 집밥처럼 맛있는 현지음식들, 돈이 없는 나에게 현지 친구가 건네준 초콜릿 하나도 감사하다. 콜롬비아에 꼭 다시 가고 싶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