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2일, 진도 7.0의 강진이 아이티를 뒤흔들었다. 지진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피해는 더욱 컸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15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세계 각국에서 애도의 메시지와 함께 수많은 구호품이 도착했지만, 하루아침에 부모와 자식을 잃은 고통까지 치유해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해 또 다시 태풍이 불어닥쳤다. 지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찾아온 재난. 과연 아이티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복구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워낙 나라가 가난하고 기반시설 또한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배수로조차 없어 조금이라도 비가 오면 지진의 잔해물과 온갖 쓰레기 더미들이 길거리로 쓸려 나왔다. 마땅한 소각시설도 없는 아이티 정부가 그 쓰레기를 바닷가로 보내면서 환경이 오염되었고,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기승을 부렸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국민들은 길거리에서 지내다 질병에 감염되고, 백신의 보급도 충분치 못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10월에 허리케인 ‘매튜’가 아이티를 또 덮쳤다. 이번에도 아이티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하루 만에 최소 천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길게 늘어선 코코넛 나무들과 하얀 모래사장,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청록색 바다는 그 빛을 잃었고 사람들의 발길마저 뚝 끊겼다. 도로는 군데군데 끊어져 흙길로 돌아가야 했고, 쓰러진 바나나 나무들 사이에서 주민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떨궈야 했다.

이제야 지진의 아픔을 딛고 형편이 나아지려나 했던 사람들의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했고, 젊은이들은 강도로 변해 물건을 약탈하기도 했다. 나는 태풍이 휩쓸고 간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그 참혹함과 비참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굶주림이 사람을 얼마나 거칠고 위험하게 만드는지 보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어떤 짓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음을 보았다.

그 현장 속에서 구호를 돕던 중, 한 현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태풍에 전기도 끊어지고 짓던 농사도 다 망쳐서 아주 어려운 집이었는데, 그날 우리에게 음식을 아주 성대하게 차려 주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전 꼭 내게 볼키스로 인사를 했고,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다시 내게 볼키스로 인사를 했다. 내게 필요한 물도 떠다 주었으며 잘 지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주었다.

그들은 도무지 태풍 피해를 입은 사람 같지 않았다. 나 같으면 음식을 아껴 먹을 법도 한데, 조금도 아끼지 않고 오히려 집에 있는 재료를 다 꺼내 요리를 해 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마음을 써 주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나는 “오늘 이렇게 먹으면 내일은 뭘 먹습니까? 또 인사는 왜 매번 하지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티는 여러 번의 자연재해를 겪어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제든 오늘이 마지막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수차례의 재해는 이들에게 오늘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으로 일깨워 주었다. 누가 자기 집에 오든지 마지막 만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마음으로 대접해 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밝게 인사를 하고 밖에 나갔다 오면 무사히 돌아왔다는 감사함과 반가움에 한 번 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전기가 없어 음식을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날 굶더라도 오늘 있는 것으로 맛있게 먹는다. 음식을 남겨두면 어차피 상해서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티 사람들이 지진과 태풍에 사랑하는 사람을 내준, 아픈 상처를 가슴 속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옆의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귀중한지 깊게 느끼고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정말 진지했고 감사가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에 비해, 하루를 대하는 내 자세는 너무 가벼웠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거만했다. 참 부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비관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인생을 포기하려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매일 ‘하루’라는 선물을 공평하게 받는다. 아이티인들의 삶을 통해 내가 사는 이 하루가 절대 평범한 하루가 아닌, 얼마나 특별하고 기적 같은 하루인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이한솔
대학생 시절 카메룬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한 그는 현재 아이티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매니저이다.지진과 태풍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삶의 터전과 교육시설이 무너진 아이티 청소년을 위해 영어캠프와 구호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투머로우> 통신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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