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해외봉사자들이 왕, 사대부, 공주 등 다른 전통복장을 하고 서울 종로의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피부색도, 생김새도, 덩치도 다 각각인 이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리처드, 타일러, 조나단, 앤더나, 아이린이 바로 올해 신년호의 표지 주인공들이다. 한국 땅에서 새로운 문화, 관습, 관점 등을 배우고 있는 그들을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북촌에서 만났다.

한복을 한껏 차려입고 북촌 돌담에 기대어 우아하게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양반집 규수다. 사대부 옷을 입고 대문 앞에 뒷짐 지고 서 있는 모습은 늠름하기까지 하다. 처음 입어보는 한국 전통복과 자신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낯설 법도 한데,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를 건네는 리처드Richard, 타일러Tyler, 조나단Jonathan, 앤더나Enderna, 아이린Ayleen은 한국에 온 지 3개월이 됐다. 멜팅 팟melting pot(여러 인종이나 문화가 하나로 융합되는 현상. 다민족문화)이라 불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걸맞게 이들의 원적原籍은 다들 다르다. 이들의 부모님은 자메이카, 멕시코,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등의 나라에서 이민을 왔고, 자신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다들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제각각이다. 그런 이들이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한데 모였다.

Q. 한국에 오기 전, 미국에서의 삶이 궁금해요.
앤더나: 아이티에 있는 저희 가족이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제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길 원하셨어요. 제가 간호사나 의사가 되길 바라셨죠. 그런데 저는 의학보다는 역사나 문화, 언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가족들이 제게 원하는 공부가 다르다 보니 저는 공부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전액장학금을 지원받아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우울했습니다. 제가 아닌 가족들을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서 대학에 갔기 때문이었죠.
조나단: 저희 부모님도 제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처음에는 ‘부모님이 원하시니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될지 모르겠더군요. 아빠는 제게 ‘누가 잘 지내냐고 물어보면 잘 못 지내도 잘 지낸다고 대답해라’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친구들에게 겉으로 좋은 이미지만 보이다보니 피상적인 인간관계만 형성될 뿐, 깊게 뿌리 내리지는 못했죠. 점점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 때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어떻게 청춘의 일 년을 떼내 해외봉사를 가기로 결심했나요?
리처드: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5년 동안 마약을 팔다가 체포돼서 감옥에 갔어요. 한때 돈을 정말 잘 벌었는데, 순식간에 돈, 차, 집을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됐죠. 그 때 미국에서 굿뉴스코를 만났고, 사람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야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굿뉴스코에서 말하는 마음의 교류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서 이 해외봉사단의 본부인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조나단: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부모님께 외롭다는 이야기도 잘 못하는데, 해외봉사단원들은 부모님께도 쉽게 하지 못할 이야기를 술술 하더라고요.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다른 사람과 제가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표면적으로 만들어진 가치보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진심을 배우고 싶어서 해외봉사를 가기로 결심했지요.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인의 저력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어요.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바탕에는 자신보다 나라를 생각한 희생정신이 깔려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서 한국을 택하게 됐어요.

Q. 미국과 다른 문화권인 한국에서 겪는 일들이 어렵진 않나요?
타일러: 미국인들은 개인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사람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둬요. 저는 사람들이 제 몸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싫어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른들이 등을 토닥이면서 등을 터치하거나,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더라고요. 저는 뉴욕에서 와서 처음에 ‘나는 뉴요커야’ 하고 한국의 그런 문화를 싫어했는데,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겠더라고요. 나중에는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나는 한국인이야. 다른 한국인들도 하는데 내가 어려울 리 없어’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니까, 전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쉬워졌어요.
앤더나: 저는 외모 때문에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저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많았어요. 아프리카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리 제가 ‘저는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에요. 이 머리도 가발이 아니라 제 머리에요’라고 말해도 믿지 않더라고요. 그럴 때 상처를 받곤 했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다른 문화에 대해서 다소 개방적이지 않은 시선이 느껴질 때 힘들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그런 시선을 받아봤기 때문에, 저와 다른 문화나 풍습을 보면 ‘그렇구나’ 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요. ‘다름’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이해돼서 그런 것 같아요.

백성을 아끼는 왕의 마음을잠시 생각해 봤어요. 자신보다도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생각하니 나라의 발전을 위한 왕의 사랑과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백성을 아끼는 왕의 마음을잠시 생각해 봤어요. 자신보다도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생각하니 나라의 발전을 위한 왕의 사랑과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조나단: 앤더나가 ‘이해’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는 데에 있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앞서 말한 희생정신도 ‘이해’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함께 살면서 알게 됐어요. 저희가 부산 지부에서 남자 봉사단원 세 명이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런데 리처드랑 타일러는 더위를 굉장히 많이 타고, 저는 항상 스웨터를 3개 입고 있을 만큼 추위를 타요. 리처드랑 타일러가 너무 더워서 종종 선풍기를 트는데, 저는 선풍기 바람을 싫어해요. 하지만 친구들이 더위를 많이 타는 스타일이라는 걸 이해하기 때문에 저는 그 때 옷을 더 껴입어요. 만약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마 항상 말다툼을 했을 거예요. 이해하기 때문에 저 한 명보다는 다수를 위하는 길을 택하는 거죠. 한국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여러 명이 함께 살며 부딪히는 일 속에서 서로 이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갑니다.

Q. 봉사활동하며 공부 이외의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린: 맞아요. 저는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학생들의 나이 스펙트럼이 참 다양해요. 미국에 있었을 때는 비영어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에 와서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때도 있었어요. 저는 가르쳐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하지는 않았죠. 주변 사람들이 ‘대학생을 가르치는 것처럼 초등학생을 가르치면 애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저는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첫날 수업을 하고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당황했어요. 그제야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다시 수업을 준비했죠.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니 더 이상 배울 수 없게 되더군요. 진정한 의미의 경청을 알게 된 순간이었어요.
리처드: 저는 해외봉사를 하면서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에 도전하게 됐어요.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홍보도 하고 사람들도 초청했어요. 제가 원래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처음 보는 사람하고는 절대 이야기 안하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칸타타를 홍보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죠. 하루는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 칸타타에 초대를 하면서 그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는 제게 자신이 군대에 있었던 이야기, 어렸을 땐 어떻게 살았는지, 한국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듣다보니, 우리 세대엔 알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미국에서처럼 나 혼자서만 지내고,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가 없었더라면 저는 늘 똑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람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어요.

공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감에 부담을 느꼈을 것같아요. 그 부담과 책임감을딛고 왕비가 되기 위한 훈련을받은 것이겠지요?
공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감에 부담을 느꼈을 것같아요. 그 부담과 책임감을딛고 왕비가 되기 위한 훈련을받은 것이겠지요?

Q. 해외봉사를 통해 배운 마인드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아이린: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굿뉴스코 미국 지부에 있으면서 해외봉사단원들을 많이 봐왔어요. 제가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또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을 이끌거나 옆에서 돕는 입장일 때가 많았죠. 그런데 종종 단원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불평을 하면 ‘쟤는 봉사하러 왔으면서 왜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봉사단원이 되어보니까 이제서야 그 친구들 마음이 이해가 가요. 그 때 ‘언어 때문에, 음식 때문에, 환경 때문에 진짜 힘들었겠다’ 싶어요. 여기서 봉사를 하면서 리더가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지 배우고 있어요. 강제적으로 앞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말단의 위치를 경험하며 진정으로 이해함으로써 마음으로 이끄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또 그런 위치에 서게 되면 마음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평소 나와 다른 이미지의 사대부 역할을 하면서, 사대부들이나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자신을 희생했을지생각해 보았어요.
평소 나와 다른 이미지의 사대부 역할을 하면서, 사대부들이나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자신을 희생했을지생각해 보았어요.

타일러: 한국에서 제가 한국인 지부장님과 다른 봉사단원들 간에 통역사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양쪽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서 두 사람을 연결해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더라고요. 나중에 국제관계학을 공부해서 UN같은 곳에서 일하며 국가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사실 해외봉사를 오기 전에 저는 명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지만 학비가 없어서 입학을 못했어요. 한국에 도착한 첫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 소식을 듣는데, 친구들이 저보다 앞서나가는 것 같아서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에서 봉사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생에는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촬영 때 많이 웃으면서,‘나도 항상 진지하게만 있어야되는 것이 아니라, 천진난만한아가씨처럼 이렇게 웃고밝게 지낼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촬영 때 많이 웃으면서,‘나도 항상 진지하게만 있어야되는 것이 아니라, 천진난만한아가씨처럼 이렇게 웃고밝게 지낼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Q. 오늘 하루, 조선의 왕족이 되어보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앤더나:
저는 오늘 귀족의 딸인 아가씨 역할을 맡았어요. 귀엽고 예쁘게 찍히는 일이 힘들었어요. 상상 속 아가씨의 이미지는 밝고 천진난만한데, 그런 이미지는 제 성격과 정반대거든요. 저는 귀족의 딸이 아니라 농부의 딸이기 때문에 아가씨가 갖고 있는 자유로움이 오히려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이런 역할이 주어진 덕분에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천진난만함을 표출하게 된 것 같아요. 오늘 많이 웃으면서, ‘나도 항상 진지하게만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웃고 밝게 지낼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타일러: 도령옷을 입고 북촌에서 촬영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 앞에서 귀족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어요. 옷이 조금 불편하다거나, 포즈 취하기 어렵다는 마음은 숨긴 채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했죠. 해외봉사도 똑같은 것 같아요.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 좋은 모습이나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이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점점 외로워지더라고요. 힘든 마음은 혼자 가지고 있다가 끙끙 앓게 되고…. 그런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제 주변에 저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았어요. 마치 도령 주변에는 왕, 공주, 사대부, 아가씨처럼 다른 귀족들이 있었던 것처럼요. 도령도 직분이 가진 책임감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로워질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아무 문제도 안돼요. 이런 면이 제가 봉사단원으로서 느끼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요.
리처드: 제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옷을 입게 되어서 재미있었어요. 저는 오늘 사대부 옷을 입었는데요. 오늘날 대통령이 국가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했던 것처럼 당대 사대부나 왕족도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야 될 때가 있는데, 봉사활동을 통해서 배우는 지혜와 깊은 사고력이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아이린: 당시에 공주로 사는 일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주변에 시선이 많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했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왕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배웠겠지요. 해외봉사도 똑같은 것 같아요. 리더로서 일을 하려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어요. 저희 다섯 명이 다 다른 역할을 맡았잖아요? 옛날에도 왕, 왕비, 사대부 등 사람들의 위치가 저마다 달랐을 텐데,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 함께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더 좋았을 거예요. 저도 봉사를 통해 친구들과 속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조나단: 왕 옷을 입는 순간, 사람들이 저를 왕으로 보니까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어요. 규칙도 어길 수 없고 제한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남들이 사는 삶은 괜찮고, 쉬운 것 같은데 막상 그 사람의 위치에 서게 되면 그 사람도 나름의 부담과 어려움이 있듯이 왕은 너무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내 삶의 주인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내적인 부담이 느껴질 때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이것들을 짊어질 것인가에 따라 느껴지는 부담의 무게가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부담스러운 일을 피하지 않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면 그 일에 도전하는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을 거예요.

자신만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고 있는 미국 청년들. 한국에서 맞이하는 2017년 새해에는 무엇을 경험하고 배우게 될지 설렌다.


 

예쁜 한복 우리옷 한복 입고 잊지못할 추억 만들기!
이번 표지의 다섯 외국인 친구들은 '우리옷 한류'의 한복을 입었다.‘우리옷 한류’는 안국역 6번 출구와 인사동 초입에 위치하여, 경복궁과 북촌을 자유롭게 다니며 촬영할 수 있는 한복 전문대여점이다. 환한 조명이 가득한 넓은 실내에는 짐을 맡기는 라커룸과 한복을 고르는 드레스룸,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정리하는 우더룸이 완비돼 있다. 한복전문코디가 항상 기다리고 있으며, 고객의 한복 추천과 코디까지 도와준다. 이 한복을 입고 고궁을 거닌다면 어느새 그림 한 폭이 완성될 것이다._문의 02)733-8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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