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는 최근 전세계 기업들 사이에 ‘기회의 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많고 인건비도 저렴하며, 농수산 자원이 풍부해 물가도 비교적 싸다. 인구도 6억이 넘어 상품시장으로서 가치 또한 높다. 그 동남아의 캄보디아에서 사업가가 될 꿈을 키워가는 젊은이가 있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삶을 사는 임요한 씨다.

무더위도, 코 찌르는 향신료도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캄보디아에서 지낸 지 벌써 만 4년이 다 되어간다. 2013년 2월,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때만 해도 이곳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지내며 유학에 취직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캄보디아에는 한국인인 나로 서는 좀처럼 적응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우선 날씨! 열대국가답게 캄보디아는 1년 내내 뜨겁다. 10~1월 평균기온은 30℃,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2~5월은 32~35℃의 불볕더위를 자랑한다. ‘캄보디아에서 몇년째 살고 있지만 날씨만큼은 도저히 적응이 안된다.’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도 많다.
 둘째로 음식이다. 캄보디아인들은 음식에 고수풀 비슷한 ‘찌’라는, 여러 가지 향을 내는 채소를 많이 넣어 먹는다. 한국인에게 김치가 필수품이듯 ‘찌’는 캄보디아인의 식탁에서 없어선 안 될 양념이다. 하지만 처음 접한 외국인들에게 코를 확 찌르는 찌 특유의 향내는 고역이다. 그밖에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금기시되는 행동도 많다. 머리를 영혼이 담긴 곳이라 생각하기에 아이가 귀엽다고 함부로 머리를 쓰다듬으면 안된다.
 나 역시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때는 그런 환경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색한 경험을 많이 했다. 하지만 봉사단원으로서 캄보디아 사람들과 함께 문화공연, 청소년 캠프, 시골 무전여행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는 동안 언제부턴가 그런 차이들을 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밤에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알바생’만도 못한 그들의 근무태도
나는 현재 수도 프놈펜의 ‘CAK 스마트 파트너’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렌터카 사업, 청소업, 임대업, 무역업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직원 수는 20명 정도다. 그 중 한국인은 대표님과 내 직속상관인 부장님, 나까지 3명이다.
 내가 입사한 것은 지난 2015년 6월 무렵이다.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은 약 8천 명으로, 그 중에는 사업을 하려고 온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현지 사정에 어두워 불미스런 일을 당할까봐 두려운 나머지 캄보디아인들과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잘 아는 사람이나 다른 교민들과 사업을 진행한다. 그러다 금방 한계에 부딪힌 한국인 사장님들은 캄보디아어에 능통하고 현지 문화와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캄보디아 직원들과 거래처 사이에서 관계를 조율해 줄 수 있는 직원을 찾는다.
 내 경우 자원봉사자로 1년 넘게 생활하며 현지인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캄보디아어를 습득하고 있었다. 문화공연이나 캠프 등 여러 행사를 준비하며 실무능력을 쌓았을 뿐 아니라,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 우리와 다른 그들의 국민성이나 문화 등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면접 당시, 대표님께서는 내 봉사활동 경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자네와 이야기하며 새로운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캄보디아 사업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크게 기뻐하셨다.
 그렇게 그 회사에 취직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직함은 매니저로, 렌터카와 청소 사업을 담당하는 한편 현지 직원들을 관리하는 일이 주된 업무다. 직원이라고는 하지만 아르바이트생만도 못한 자세로 일하는 사람들이 여기엔 많다.
만약 한국인에게 청소를 시킨다면 어떻게 일할까? 바닥을 쓸고, 책상을 닦고, 컵도 씻고, 쓰레기통도 비울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인 직원에게 ‘청소 좀 하라’고 하면 바닥만 쓸고 끝이다. 들어온 지 며칠 만에 그만두는 직원들도 부지기수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하기 싫다’며 집에 가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회사 물건을 훔쳐가는 직원도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길거리에서‘크로마’라는 천 하나만 걸치고 그 위에 비누칠을하는 식으로 샤워를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길거리에서‘크로마’라는 천 하나만 걸치고 그 위에 비누칠을하는 식으로 샤워를 한다.

마음의 구조를 알기에 이해하고 변화시켰다
만약 캄보디아에서 지낸 경험이 없었다면 나 역시 그들의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캄보디아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마음의 구조를 알고 있다. 1970년대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라는 무서운 대학살을 경험했다. 공산주의 세력들이 새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 아래 지식인과 교육자 등 수백만 명을 죽인 사건이다. 지식인과 교육자가 없다보니 국민들의 사고와 의식은 그만큼 후퇴했다. 또 학살의 정신적 상처는 아직까지 남아 지금도 캄보디아인들은 남을 잘 믿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주곤 한다.
 게다가 날씨가 연중 따뜻해 캄보디아인들은 굳이 힘들게 일을 안 해도 어떻게든 먹고살 수는 있다. 그러다 보니 발전을 추구하기보다 현재에 안주하는 경향이 크다. 한 달 일해 번 돈으로 두세 달을 지내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서로 언제 그만둘지 모르다 보니 직원들은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면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대로 일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는 마인드교육을 한다. 눈앞의 것만 생각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계산하는 사고력, 힘든 업무도 지레 포기하지 않고 해낼 방법을 강구하는 적극성,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경청까지.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일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동료들끼리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걸 보면 나도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택시 ‘모또’.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택시 ‘모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시절 동료단원과 함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시절 동료단원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새로 찾은 나의 꿈
회사 근무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5시에 퇴근한다. 여느 사장님이라면 회사 일에 방해가 되기에 학교 다니는 걸 싫어할 법도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대표님은 ‘미래를 대비하며 열심히 산다’며 일찍 퇴근하게 배려해 주셨다.
 현재 내가 다니는 벨티국제대학교BELTEI Int’l Univ.는 역사는 짧지만 캄보디아에서 최고 수준의 시설과 교수진을 갖춘 학교다.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된다. 교수님들의 출신지 또한 미국, 러시아, 아랍, 인도 등 다양하다 보니 발음과 억양이 달라 수업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강의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가 두세 번씩 더 듣기도 했다. 지금은 강의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레포트도 영어로 작성할 정도가 되었다. 회계, 통계, 경영윤리, 인재관리 등 한국어로도 수강하기 힘든 과목들을 공부하느라 힘들 때도 있지만, 더 큰 꿈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현재 우리 회사는 한국과 캄보디아, 호주 등 세 나라에서 인기 있는 상품을 수입, 수출하며 수익을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1년 반 정도 ‘한국에서 수입해다 캄보디아에 팔면 좋을 상품이 뭘까?’ ‘반대로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갖다 팔면 좋은 상품이 뭘까?’를 늘 고민하며 일하다보니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안목이 차츰 키워졌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손재주가 뛰어나 목공예품을 잘 만든다. 개중에는 천만 원이 넘는 것들도 있다. ‘와, 이거 진짜 손으로 만들었어?’ 싶을 만큼 화려하고 정교하다. 은은한 향이 나고 맛도 좋은 자스민 쌀도 한국에서 이미 유명한 상품들이다.
 

내가 다니는 벨티국제대학교 건물. 한 학기학비는 약 70만 원 정도로 한국에 비해 저렴하다.
내가 다니는 벨티국제대학교 건물. 한 학기학비는 약 70만 원 정도로 한국에 비해 저렴하다.

우리 회사를 단순히 상품을 거래하는 회사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다른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회사로 키우는 것이 내 목표다. 언젠가는 독립해서 나만의 사업을 해 볼 꿈도 갖고 있다.
 한국은 요즘 청년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 중 취업이 안되어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취업, 특히 면접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만 어필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지원한 회사를 먼저 생각했다. ‘이 회사는 뭘 하는 회사이며,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할까? 내가 입사하면 회사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춘 뒤에 지원한다면 그 회사는 여러분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또 뽑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내 경우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굿뉴스코의 모토와 봉사활동을 하며 배운 오픈 마인드가 그 힘의 바탕이 되었다. 해외봉사를 가고 싶은 독자라면 캄보디아에 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날씨도 음식도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순박한 캄보디아인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캄보디아는 여러분에게 제2의 고향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임요한
벨티국제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캄보디아에서 해외봉사단원으로 보낸 1년은 자신의 인생에 변화를 선사한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현재 직장에서 무역관련 일을 하며 참신한 사업아이템을 찾느라 분주하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