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3일,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아직 열네 살 철없는 소년이었던 나는 그저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있었고, 넓고 푸른 초원에서 야생 동물들과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을 하리라는 행복한 상상에 잠겨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첫날 밤, 시차로 인해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을 때 밖에서 들려오는 폭죽 소리가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집 주위에서 총격전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뜻밖의 뜨거운 환영식과 함께 시작한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은 생각과 아주 달랐다. 일주일에 이틀만 들어오는 전기와 수도, 감기 걸리듯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말라리아 등 한국에서는 전혀 꿈꿔보지 못한 새로운 나날들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나이지리아에서 가나, 가나에서 카메룬 등 국경을 넘나드는 예상치 못한 잦은 이사로 중고등학교를 여덟 번 이상 바꿔야 했고 언어도 영어에서 불어, 불어에서 다시 영어로 자주 바뀌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하루하루 살았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꿈꾸며 미국의 좋은 대학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장학금을 못 받게 되어 결국 부모님의 권유로 아프리카 불어권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아프리카 대학에서의 첫 수업을 다녀오고, 나는 참 많이 울었다. 300명이 정원인 학교강당에 이미 1,0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들어와 있어서 수업을 강당 밖 창문 아래서 들어야 했고, 마이크 없이 수업하시는 교수님도 많았지만, 수업에 안 들어오시는 교수님도 많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수님 월급이 많지 않아서 여러 대학에서 가르치다 보니 수업이 겹칠 때는 한 곳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이 만 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유일한 외국인이다 보니,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교수님과 모든 학생에게 인종차별적인 조롱을 여러 번 당하는 등, 한국이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많이 겪었다.
 하루는 ‘도대체 내가 왜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 하지?’ 하며 내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대학교에서 대단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니고 단지 학교 강의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는 거였는데, 나한테는 이런 조그만 것도 허락이 안 된다 싶으니까 너무 억울했다. 그렇게 불평 가운데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힘든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차분히 다 들어주시곤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마약 중독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중소기업 사장이 되었다고 하셨다. 어느 방송국 기자가 같은 아버지 밑에서 너무 다르게 사는 두 아들을 보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첫째 아들에게 기자가 ‘당신은 왜 마약중독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냐?’고 묻자 아버지 때문에 자기도 그렇게 됐다고 했다. 둘째 아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똑같은 답변을 했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안 좋은 면만 보고 아버지를 탓하며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안 좋은 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안 좋은 면을 통해 스스로 교훈을 얻고 아버지의 좋은 면을 보며 배웠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와의 짧은 대화였지만 이 대화를 계기로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난 더 이상 학교의 열악한 형편만 보고 불평을 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으로 학교를 보기 시작했고, 더욱 열린 마음으로 주변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교수님이 수업에 안 들어오시면 불평하기보다 오히려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전교생 중에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의 장점을 살려 친구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불어를 공부할 때도 친구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바꾼 것은 단지 학교를 보는 나의 관점 하나뿐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싫었던 아프리카의 대학생활이 좋아졌고, 이후에도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 후, 군대를 다녀오고 좋은 기회를 만나 현재는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어려울 때 아버지를 통해 배운 작은 교훈 하나가 지금 프랑스에서도 내가 어려움을 만나고 문제를 만났을 때 넘어갈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김요셉(프랑스 파리 10대학 3)
대학 졸업을 6개월 가량 앞둔 바쁜 시기에 <투머로우>에 실려 있던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 광고를 보고 꼭 참가해보고 싶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대학생활을 정리하며, 글을 통해 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삶 속에서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의 제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게 익숙지 않아 여러 번 생각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아야 했습니다. ‘아! 이때는 매우 힘들었지, 생각을 바꿨을 때 기뻐했지!’ 하면서 마음속을 여행했을 때 어느 순간 웃음 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를 준비하면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상까지 주셔서 행복이 배가 된 것 같아 감사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평소에 자주 글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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