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남자의 강함과 카리스마를 동경하며 이종격투기 선수인 효도르를 나의 본보기로 삼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공부에 흥미를 붙이기보단 ‘어떻게 하면 나를 더 강해 보이게 할까?’라는 고민 끝에 이종격투기를 배웠다. 속된 말로, ‘노는 무리’와 어울렸고, 싸움 잘하고 잘 노는 남자가 성공한 다고 믿으며, 연필 대신 담배와 술잔을 들었다. 내가 제일 강하다 믿고,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파 대학병원에서 입원검사를 했는데,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내게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지만, 몸은 빠르게 악화했다. 온몸의 혈관이 터지기 시작해, 걷지도 못했다. 특히 내장에 출혈이 생겨서 주사로 영양제를 투입해야 했다. 항상 삶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듯 손 놓고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생각했던 강함은 죽음 앞에서 어떤 도움도 주지 못 했다. 그동안 잘못된 생각을 좇아 간 것이다.
 그런 나에게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셨던 아버지가 다가와 이야기를 해주셨다.
“천성아, 자동차는 사람보다 강한 강철로 만들었어. 하지만 자동차를 움직이는 건 그 강철 안에 있는 사람이야. 위험할 때 브레이크도 밟고, 서로가 부딪히지 않도록 신호를 지키는 것도 사람이야. 사람도 그래. 겉모습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몸을 조종하는 실체는 마음이야.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야. 지금이 네 마음이 강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강함이란 다른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아버지의 말씀이 생소했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았다. 아버지는 마음에서 나았다고 믿으면 나은 것이 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니, 그것밖에 길이 없었다. 내가 다 나았다고 믿고 보니, 더 이상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어 퇴원을 결심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각종 통증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나았다고 외쳤다. 그리고 지금 아픈것이 거짓말이라고 믿었다. 몸은 마음이 지배한다고 한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그렇게 3개월의 기간이 지났다. 병원을 가서 검사하니 병은 기적처럼 완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해왔던 그것과는 너무 다른 아버지의 말씀처럼, 내가 다 나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싸움을 3개월 동안 하면서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의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강하게 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흥미가 없던 공부를 재미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재미가 생겼고, 꿈도 못 꾸었던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 마음이 강해지려면 하기 싫은 것들을 많이 해봐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군대도 해병대를 지원했다. 대학에서는 아랍어를 공부했다. 아랍어는 너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은, 누구보다도 아랍어에 자신 있는 사람이 됐다.
 진정한 강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나에게 그 사실을 깨우쳐 준 3개월의 시간에 대해 감사한다. 또한 마음의 힘에 대해 가르쳐준 아버지께도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박천성(부산외국어대학교 3)
마인드 에세이 콘테스트 ‘마음쓰기’에서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병이 낫고 강인한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지난날 치료될 수 없는 불치병이 완치되면서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음에 다시 감사의 마음을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감사로 살아야겠다고, 다시 마음에 각인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마음 사용법을 더 배워서, 중동에서 아랍어를 통역하는 인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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