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발견의 기쁨 <오즈의 마법사>

우리에게 익숙한 옛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는 숨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생각없는 허수아비는 알고 보니 지혜롭고,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용기 없는 사자는 그 누구보다 용감했습니다. 도로시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발견하고 성장하는 마음의 세계.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시시때때로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될 때, 잘 나가는 저자나 평론가의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TV 프로그램 연출자나 작가들이 나보다 나이가 적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내가 정말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숫자만 아니라면 참 근사한 일입니다. 빨리 배우고 뭔가 이뤄내야겠다는 조바심에서 벗어나 천천히 배워가도 될 것 같은 느긋함, 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 달리 볼 수 있는 여유를 나 자신에게 허용하는 것, 나보다 어린 사람들부터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나이 들어가면서 얻게 되는 특별한 권리이자 혜택인 것 같습니다.
 

<오즈의 마법사> L.프랭크 바움/비룡소1900년 미국에서 발표된 동화이다.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세계 어린이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제작되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모두 14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 O.S.T인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여러 음악가들에 의해 변주되어 계속 불려지고 있다. 영어와 멀어졌던 분들이라면 오즈의 마법사 영문판을 한국어판 옆에 두고 양쪽을 번갈아가며 읽어도 좋고,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영어 오디오북을 들어도 좋다.
<오즈의 마법사> L.프랭크 바움/비룡소1900년 미국에서 발표된 동화이다.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세계 어린이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연극, 뮤지컬, 영화 등으로 제작되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모두 14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 O.S.T인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여러 음악가들에 의해 변주되어 계속 불려지고 있다. 영어와 멀어졌던 분들이라면 오즈의 마법사 영문판을 한국어판 옆에 두고 양쪽을 번갈아가며 읽어도 좋고,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영어 오디오북을 들어도 좋다.

인생은 언제나 배움의 연속
얼마 전 어떤 시인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물론 나이로만 보자면 저보다 한참 어린 시인이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된 그 시인의 시가 참 좋았는데 강의 들을 기회가 생겨서 어찌나 반갑던지 강의를 들으면서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은근히 신경 쓰이기까지 했습니다. 네 번의 강의를 들으며 ‘시어’들이 둥둥 떠다닐 시인의 머릿속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시인의 재능과 재기발랄함을 질투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이모 모드’가 발동해서 시인이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며 즐겁게 수강을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꼽아보라고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내 인생의 책’ 한 권이라니, ‘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책 한 권이어야 할 텐데, 누구나 감탄하고 깜짝 놀랄만한 멋진 한 권의 책이 없을까?’ 머릿속에 무수한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꼭 책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이야기는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꼬부랑 할머니’였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동네 공터에서 친구가 들려주던 <소공녀>는 내가 처음 만난 세계 명작이었고, 도시에서 대학교 다니던 큰 언니가 사다 준 <집없는 아이>는 내가 받은 최초의 책 선물이었고, 가슴 콩닥거리며 읽었던 <여자의 일생>과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내 사춘기를 무난히 건너가게 해 준 세계 문학이었고, 대학시절 다시 읽었던 김유정의 단편들은 한국 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주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문판은 영어 읽기의 재미를 처음 알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책 마다마다에 소중한 기억이 있고 의미가 깃들어 있는데 어찌 내 인생의 책 한 권 꼽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내 인생 한 권의 책이에요.” 이렇게 얼렁뚱땅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내 인생의 책은 언제나 업그레이드 중
어릴 때의 책읽기와 나이 들어서의 책읽기가 다른 점은 예전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엔 책을 ‘느끼면서’ 제대로 읽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읽은 책의 권 수보다는 책이 내 마음 속에 일으킨 파문에 좀 더 주목하게 됩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며 예전과는 다른 감동과 다른 생각, 다른 이해에 도달하게 될 때, ‘내가 예전엔 몰랐었구나, 내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고 느낄 때, 책읽기의 뿌듯한 충만감이 내 안에 자리 잡습니다.

발견의 기쁨-이토록 멋진 동화를 왜 잊고 있었을까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읽었습니다. 아니 처음 제대로 읽은 거라고 해야겠습니다. 캔사스에 사는 소녀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환상과 신비의 나라 오즈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도로시가 오즈의 나라로 가는 길에 허수아비, 사자, 양철 나무꾼을 만나 허수아비는 지혜를, 사자는 용기를,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마음을 얻는다는 이야기, 알고 보니 허수아비는 원래 지혜로웠고, 양철 나무꾼은 처음부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사자도 원래 용감했다는 이야기.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아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라면 여러분은 <오즈의 마법사>를 다 아는 것이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에서 유> 오은/문학과 지성사/2016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16년 8월에 나온 오은의 시집<유에서 유>가 만 권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시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시 읽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분들이라면 오은의 시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오은의 시는 쉽고 재미있다.영국에 루이스 캐럴이 있다면 한국에는 오은이 있다고 얘기해도 좋을 정도로 한국어가 가진 ‘소리의 재미’를 오은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유에서 유> 오은/문학과 지성사/2016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16년 8월에 나온 오은의 시집<유에서 유>가 만 권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시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시 읽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분들이라면 오은의 시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오은의 시는 쉽고 재미있다.영국에 루이스 캐럴이 있다면 한국에는 오은이 있다고 얘기해도 좋을 정도로 한국어가 가진 ‘소리의 재미’를 오은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지혜가 되고, 용기가 될 거야
어떤 책이든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지 않고서는 그 책의 느낌과 감동을 온전히 나누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읽은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조금만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읽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허수아비와 사자, 양철 나무꾼과 도로시가 자신들 앞에 놓여진 도전들을 넷이 힘을 합쳐 하나씩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지혜가 없다고 생각했던 허수아비는 아이디어 뱅크였고,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던 양철 나무꾼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두려움을 알고 있었던 사자는 누구보다 용감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로부터 지혜와 용기와 마음을 얻어 자신들이 소원을 이뤘다고 생각한 허수아비와 사자와 양철 나무꾼은 캔자스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도로시의 꿈을 위해 다시 모험에 뛰어듭니다. 충분히 지쳤을 법도 한데 친구 도로시를 위해 다시 모험에 뛰어드는 세 친구의 모습은 끈끈하고 든든한 우정의 이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 <오즈의 마법사>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된 놀라운 장면은 오즈의 나라에 도착한 도로시 일행에게 오즈의 마법사가 자신의 정체를 실토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도로시 일행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마법사가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 내가 이렇게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은 오즈의 마법사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남들로부터 제일 힘 있고 능력 있다고 추앙받던 오즈의 마법사가 자신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아이들에게 경이와 기쁨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프랭크 바움이 듣는다면 ‘교훈같은 건 집어치우고 제발 재미만 느껴라 ’이렇게 얘기했을 것만 같지만 그럼에도 한 줄 교훈을 마음에 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시처럼 왼쪽 발꿈치를 세 번 빙그르르 돌려봅니다.
정말 사라지는 마법이 통할까요? 은구두 뒤축을 세 번 쾅쾅 구르면 정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까요?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마법을 꿈꾸는 어린 내가 아직도 내 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허수아비는 지금도 에머랄드시를 잘 다스리고 있을 것 같고, 양철 나무꾼은 서쪽나라에서 윙키들과 잘 지내고 있고, 사자는 숲 속에서 잘 뛰놀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왼쪽 발꿈치를 세 번 빙그르르 돌려보고 왼쪽 구두 뒤축을 쾅쾅 세 번 굴려봅니다. 언젠가 내게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달려와 줄 친구들이 있을 거라 꿈꿉니다. 오즈의 마법사가 가르쳐 준 우정과 용기 덕분에 이 겨울이 좀 더 따뜻해졌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자신만의 마법을 발견하는 2017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허남숙
책 읽어주는 사람, 역사학을 전공했으나 역사책보다 문학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스무 살 무렵,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읽고 ‘책 읽어주는 여자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고,TV 교양프로그램, 어린이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한동안 일했다. 지금은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하고 있으며, 책 읽어주는 친구 엄마, 책 추천하는 이모, 책 읽기를 권하는 동네 언니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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