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다. 군대에 간 형과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누나로 인해 우리 집에는 엄마와 나 둘뿐이었지만 우리 집의 공간은 내 방과 내 방이 아닌 곳, 이렇게 둘로 나뉘어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 매일같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게임만 하던 나는 엄마에게 소소한 일과를 나눌 시간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겐 엄마와 대화 한 시간이 게임 속에서 남들에게 뒤처지는 초조한 시간일 뿐이었다. 어김없이 게임에 몰두해 있었던 어느 날, 좀처럼 나의 방문을 열지 않으셨던 엄마가 내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남건아, 엄마랑 잠깐 얘기 좀 할까?”
단순한 한 마디였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단번에 알아챈 나는 그대로 게임을 중단한 채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듣게 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오늘 병원에 갔는데 유방암 말기판정을 받았어.”
믿기지 않았다. 순간 말문이 막혀 한동안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8살 때 아빠의 목숨을 죽음으로 앗아간 그 암이 엄마에게 찾아왔다니! 내 마음속 아빠의 죽음이 엄마의 암으로 곧바로 연결됐다. 엄마도 곧 죽겠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지배했고 그곳에서 벗어날 길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렇게 빠져있던 게임에도 더는 집중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어떻게 아빠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서 벗어 날 수 있었는지 더듬어 찾아가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시던 엄마는 어린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건아! 아빠는 우리 곁에 없지만, 천국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어. 네가 아빠 때문에 슬퍼한다면 천국에서 아빠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남건이 곁을 일찍 떠난 게 미안하니까. 아빠는 천국에서 누구보다 편하고 행복하게 계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만 씩씩하게 살아가면 돼!”
엄마의 이 말은 나의 어린 시절을 아빠로 인한 슬픔에서 벗어나게 했다. 나에게 아빠는 암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이 아닌, 천국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계시는 분이었다. 슬픔이 찾아올 때면 엄마의 이 말을 기억했고, 덕분에 밝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안 계시고 힘들게 삼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 그리고 형 누나와는 나이차이도 많이 나서 혼자서 게임에 빠져 잊고 있었던 나의 옛 기억들. 엄마의 암 선고는 나의 이러한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슬픔이 지배하려는 마음을 이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그날부터 엄마와 대화를 시작했다. 매일 하교 후 나는 학교생활, 어릴 적 추억 등 사소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풀어놓았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죽음의 어둠으로 꽉 차있던 내 마음에 기적처럼 희망의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엄마가 내게 말했다.
“남건아, 엄마는 너를 내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단다. 너희 형도 군대에 있고, 누나도 기숙사에 있는데 너마저 없었다면 엄마는 이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우리 예쁜 아들, 엄마에게 힘을 줘서 참 고맙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엄마의 마음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들린 엄마의 이 한마디, 이는 곧 내 삶의 이유와 활력소가 되었다. 대화를 통해 엄마와 마음이 흐르기 시작하자 행복한 추억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산책하러 나가는 것,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것 하나하나가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엄마는 4년이라는 시간동안 내 마음에 행복을 선물하고 아빠 곁으로 가셨다. 내 삶에 어려움과 슬픔이 찾아올 때면,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게임 중독으로 방문을 굳게 닫고 살았던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준 엄마. 비록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선물해 준, 세상에서 찾아올 시련을 이겨낼 강한 힘이 있다. 나를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에서 바라보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김남건(대학 입학 예정)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마음쓰기 콘테스트. 그때 저의 시선을 확끌었던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용기가 생겼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땐 고민이 많았지만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가두어둔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시 돌아볼 시간을 가져서 좋았습니다. 오랜 수험 생활로 기억 속에 깊이 묻혀 있던 엄마와의 추억들이 많이 떠올랐고 무엇보다 ‘그 시절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 정리가 안 된 상태였던 나의 마음을 이제라도 정리할 시간을 가져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까지 타서 더 기쁩니다. 마음을 글로 써내기가 어려울 때 주변의 조언도 구했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에게 소중한 추억들을 되돌아볼 시간을 준 <투머로우>에 감사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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