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송태진 씨가 아프리카 풍속과 문화에 대해 매달 <투머로우>에 소개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동물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관광하러 가는 우리를 케냐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오히려 흔한 동물인 소를 사랑하는 그들의 이유를 들어보자.

코끼리는 정말 귀여운 동물일까?
동물의 왕국, 케냐! 해마다 50만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케냐를 찾는다. 그들의 주 목적지는 마사이마라, 암보셀리 등 태곳적 자연이 살아있는 사파리 공원이다. 회색빛 인공 도시에 살던 이들은 수많은 동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케냐의 자연을 보며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낯선 기분을 느낀다. 야생동물이라고는 다람쥐와 고라니 정도밖에 남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이다. 관광객들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사바나 초원 위로 4륜구동 지프차를 타고 다니며 동물들을 만난다. 일반 동물원에는 동물이 우리에 갇혀 있지만, 케냐에서는 사람이 차 안에 갇혀 있고 동물은 마음껏 움직인다. 사람보다 동물이 우위에 있는 곳. 야생동물들에게 허락된 그 땅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교만을 내려놓고 그들의 삶에 조용히 편입된다. 강인한 사자의 눈빛에 숨죽이고, 장대한 코끼리의 걸음걸이에 감탄하며 대자연의 법칙에 경외를 느낀다.

궁금한 게 생긴다. 낙원과도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케냐 사람들도 동물들을 보며 외국인들이 갖는 신비로움을 느낄까? 중국집 아들 탕수육 귀한 줄 모르듯 역시나 케냐 사람들이 동물을 보는 관점은 우리와 자못 다르다. 코끼리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코끼리를 떠올리면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귀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동화 속의 코끼리, 과자를 주면 손 대신 코로 받는 코끼리 아저씨 등 인간과 교감하는 귀여운 동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케냐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어떤 동물일까? 케냐 친구 스탠리와 대화를 할 때였다.
“스탠리, 너는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뭐야?”
“음…. 코끼리?”
“이상하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코끼리를 좋아해. 귀엽잖아.”
“맙소사, 코끼리를 좋아해? 그게 귀엽다고?”
“코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귀도 부채처럼 크고….”
“그런 거 하나도 안 귀엽거든. 코끼리는 괴물이야. 우리를 괴롭히는 나쁜 짐승이라고.”
 코끼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니!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 후 여러 케냐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동일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케냐인들에게 코끼리는 농작물을 거덜 내고 집을 파괴하는 그야말로 감당 못할 몬스터였다. 코끼리뿐만이 아니었다. 얼룩말과 가젤 같은 초식 동물들은 애써 가꾼 밭을 망가트리는 메뚜기떼 같은 해충 취급을 받았다. 늠름하고 당당한 백수의 왕 사자는 잔인하고 포악한 연쇄 살인마였고, 물속에 숨어 있다가 배를 두 동강 내고 어부들을 죽이는 하마는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케냐 사람들에게 야생동물이란 그들을 공포와 절망으로 몰아넣는 저주와도 같았다. 사실 그들은 외국인들이 비싼 돈 들여 야생동물 사파리 관광을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관광객으로부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으니 좋긴 하지만, 도망쳐야 할 위험한 동물을 굳이 보러 다닌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케냐에서 얼룩말은 농작물을 망치는 메뚜기떼 취급을 받는다.
케냐에서 얼룩말은 농작물을 망치는 메뚜기떼 취급을 받는다.
가젤은 우리나라 산에서 다람쥐 보듯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젤은 우리나라 산에서 다람쥐 보듯 쉽게 만날 수 있다.
코끼리는 아프리카 전설에서 영악하고 흉폭한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코끼리는 아프리카 전설에서 영악하고 흉폭한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진정한 부자라면 소가 많아야
케냐 사람들은 동물을 두 부류로 나눈다. 도움이 되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 앞서 말한 야생동물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케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어른부터 아이까지 십중팔구는 ‘소’라고 답한다.
케냐의 모든 사람들은 소를 사랑한다. 사람의 말을 따르는 덩치 큰 짐승은 야생에서 날뛰는 포악한 괴물들과는 모든 게 다르다. 그 순박한 동물은 우유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게 해준다. 쇠똥은 밭에 거름을 주거나 가옥을 짓는 데 사용한다. 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제공한다. 케냐인들은 그러한 소를 사랑한다. 소는 단순히 여러 종의 동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험난한 대자연 속에서 인간과 삶을 공유하는 가족이자 동반자였다. 소를 괴롭히는 존재는 그것이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곧 적이었다. 소는 케냐인들이 지켜야하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과거 케냐사람들은 땅에 주인을 두지 않았다. 땅은 신이 모두를 위해 선물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땅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화폐가 없던 그 시절, 소는 곧 돈이었다. 물건을 구입할 때나 선물을 할 때 소가 오고 갔다. 젊은 총각은 결혼 지참금으로 신부의 부모에게 소를 줘야 했다. 아름답고 건강한 신부일수록 더 많은 소를 선물해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좋은 소는 비싼 값을 받았고, 비루한 소는 그렇지 못했다. 이처럼 예전 케냐 사회에서는 소를 잘 보살피는 게 부자가 되는 길이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러한 인식은 남아 있다. 한국 사람들이 부동산 부자를 진짜 부자로 쳐주듯이, 케냐에서는 소를 많이 기르는가에 따라 부자인지 아닌지 판가름이 난다. 현금과 땅을 많이 갖고 있더라도 소가 없다면 사람들은 그를 부자라고 부르길 꺼려한다. 예컨대 이렇다. “그 사람 돈이 1억이나 있대.”라는 말보다 “그 사람 소가 200마리나 있대.”라는 말이 훨씬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은 소를 기를 수 없기 때문에 고향집에 자기 앞으로 된 소를 몇 마리 장만해 놓는다. 우리가 돈을 벌면 은행에 저축을 하듯 케냐에서는 돈을 벌면 소를 사놓는다. 지금도 나이든 세대는 같은 값이라면 돈을 받는 것보다 소를 받는 걸 더 좋아한다. 그만큼 소는 사람들에게 부의 상징으로 강하게 자리 잡혀 있다. 필자가 방문한 한 명문 고등학교에는 운동장에 수십 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다. 교장은 나에게 ‘우리 학교에는 소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고, 명문고가 될 수 있었다고 매우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만큼 학교의 후원과 재정이 탄탄하다는 의미이다.

케냐 키쿠유 족의 전통 외양간. 소가 제공하는우유는 이들에게 중요한 식량이다
케냐 키쿠유 족의 전통 외양간. 소가 제공하는우유는 이들에게 중요한 식량이다
학교의 운동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떼.
학교의 운동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떼.
목자들은 초장을 찾아 이리저리 소를 몰고 다닌다.
목자들은 초장을 찾아 이리저리 소를 몰고 다닌다.

마사이 족의 유별난 소사랑
 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마사이 족을 빼놓을 수 없다.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는 다른 부족들과는 달리, 유목민족인 마사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오직 소만 키우며 살아간다. 소를 먹일 물과 초지가 있는 곳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유랑 생활을 하기에 그들은 아무 때고 이동할 수 있도록 복잡한 살림 살이 없이 간단하게 살아간다.
 마사이 족은 소를 통해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들의 주식은 소의 젖과 피다. 피를 마시기 위해 소를 죽일 필요는 없다. 두 명이 소의 목을 밧줄로 감아 정맥이 도드라지게 하고 한 명은 무딘 화살촉으로 혈관을 찔러 피를 받아낸다. 소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피를 받아내면 밧줄을 풀어주고 상처를 지혈해준다. 우유는 암소에게 수시로 받아낼 수 있다. 건강한 소만 있으면 평생 얻을 수 있는 식량이다. 피는 그냥 마시기도 하고 우유에 섞어서 먹기도 한다. 간혹 색다른 맛을 원한다면 그들은 특별한 향이 나는 나무가 있는 지역으로 소를 몰고 간다. 소가 그 나뭇잎을 먹으면 우유의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마사이 사람들은 소가 주는 간단한 음식을 축복으로 여기며 만족하고 살아간다.
 마사이 사람들은 하루 종일 소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소 무리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소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 윗대 조상이 누구인지 소의 혈통과 가족사를 기억한다. 목자들은 일일이 소의 이름을 부르고 쓰다듬으며 인사를 나눈다. 소 또한 자신의 이름과 주인을 알고 있어서 다른 무리를 만나더라도 혼동하지 않고 주인을 따라 움직인다. 주인이 어떤 소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이 불린 소만 걸어 나와 인사를 한다. 마사이족은 요즘 우리가 애완견에게 마음을 쏟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소에게 베푼다. 장난으로라도 소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는 엄청난 실례다. 마사이족 남자들은 칼과 몽둥이를 항상 품고 다니며 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그것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대상이 사자든 하이에나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야생의 어려움을 함께 넘어서는 동반자
외국인들의 눈에 케냐는 아름다운 자연에 야생동물이 가득한 환상적인 동물의 왕국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대대로 살아온 이들에게 동물의 왕국이란 스스로 생존하기조차 벅찬 험난한 야생이란 의미다. 야생동물들은 언제나 그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했다. 결코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 거친 환경에서 어느 날 케냐 사람들은 소를 만났다. 다른 동물들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만 소는 달랐다. 소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주었다. 폭우 속에서 주운 우산처럼 소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소는 가축과 주인의 관계를 넘어 아프리카의 험난한 자연을 함께 넘어서는 동반자 관계다. 이토록 귀중한 소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외국인의 막연한 동경과는 다른, 현실에 사는 케냐인이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참고 서적 <마사이 전사 레마솔라이> 조지프 레마솔라이 레쿠톤, 황소자리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5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http://blog.naver.com/impork3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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