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에는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가진 세 남자가 살고 있다. 첫째 홍정기, 둘째 고윤석, 셋째 박주호. 이들의 공통점은 굿뉴스코 해외봉사로 필리핀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연어처럼 필리핀으로 되돌아와 삶의 터전을 잡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번에는 셋째 박주호 씨를 마닐라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Q. 안녕하세요! 저는 필리핀에 처음 왔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덥지 않네요. 이곳에서 만나 뵙게 되어서 더 반갑습니다.(그는 취재 일행을 위해 자정 무렵 공항까지 마중나왔다.)
네,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마닐라는 교통체증이 너무 심한 곳이라서 늦은 저녁에 도착하는 게 좋은데 때맞춰 잘 오셨습니다!

Q. 2007년 한 해 동안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필리핀에서 봉사를 하다가 2010년에 아예 짐싸들고 다시 와서 취업하고 가정도 이뤄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곳으로 다시올 생각을 하셨어요?
해외봉사를 오기 전, 저는 정말 별볼일 없는 대학생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매일 화를 내셨고 저는 되레 반항하고 집안에 불화만 일으켰죠. 작은아버지의 소개로 굿뉴스코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그게 제 인생 최초의 ‘도전’이었죠. 2007년 스물한 살의 철없던 제가 필리핀에서 처음 한 것 들이 많아요. 처음으로 리더를 맡아 댄스팀에서 팀원들을 이끌었고, 처음 들어본 타갈로그어를 배워 이야기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거칠고 부정적인 사람인데 저를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필리핀 사람들의 사랑이 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적극적이고 밝은 사람으로요.^^
그렇게 제 생애 최고의 1년을 보내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결심했어요. ‘나는 반드시 필리핀으로 돌아올 거야.’몸은 떠나도 마음은 한 번도 필리핀을 떠난 적이 없었어요. 군 복무를 마치고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Q. 지금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회사의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통신건설 부문의 일인데,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외선공사입니다. 기지국에서 기지국 사이의 메인선로나 기지국에서 가정집으로 가는 선로 공사를 합니다. 필리핀은 가능성이 무한한 시장이에요. 지역도 크고 환경도 낙후되어있어서 아직 전화나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 많거든요. 게다가 태풍이 자주 와서 복구 시 또 시공이 필요하므로 일감이 많습니다.

2007년에 굿뉴스코 봉사단원으로 필리핀에 온 박주호
2007년에 굿뉴스코 봉사단원으로 필리핀에 온 박주호

Q. 필리핀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는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올 때 대학을 그만두고 3단 이민가방 하나 달랑 들고 왔습니다. 필리핀 현지인 친구와 같이 단칸방에 살면서 고생도 좀 했어요. 사기도 여러 번 당했고요.가이드와 통역 일을 했지만 안정적이지 않아서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어느 한국계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 상사분의 성격이 유별나서 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퇴사했습니다. 밤 9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오후 1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는데, 매일 퇴근 직전에 일을 조금 더 하라고 강요하는 분이었어요. 거절하면 어찌나 욕을하는지… 소, 말, 개, 닭 등 온갖 동물들 이름이 들어간 욕이 난무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어요.

사표를 쓰기 전에 제가 필리핀에서 해외봉사를 할 때 돌봐주셨던 남경현 IYF 지부장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당연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그 직장에서 이겨야 돼. 지면 안돼. 그럼 아무것도 못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눈물을 삼키고 다시 출근했습니다. 몇 달 동안 계속 무시당하고 욕을 먹으면서 참는 것도 배우고 고생이라는 것도 조금 알게 됐습니다. 해외 생활이 녹록지 않음을 몸소 깨달았죠. 아마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으면 저는 사회생활에서 늘 어려움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경영도 인사도 엉망이었던 그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고 때마침 필리핀에 먼저 건너와 살고 있던 큰형님(굿뉴스코4기 홍정기)의 소개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처음에는 통역으로 2년 정도 일했습니다. 최고 경영자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통역하면서 이 회사에서 전체적인 시스템과 경영방식 등을 눈여겨보며 배웠어요. 그런데 외사에 의문스러운 점이 보였습니다. 분명 기술도 좋고 투자도 많이 하고 있는데 수익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자금운용에 어떤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용기 내서 사장님께 제 의견을 말씀드렸고 그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사장님께서 저의 적극적인 자세와 문제해결 능력을 인정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지사장으로 임명하셨어요. 그로부터 지금까지 2년째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해외봉사를 가기 전의 저였으면 절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뭐든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굿뉴스코 해외봉사에서는 하기 싫고 쉬고 싶어도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어요. 그걸 ‘마음을 꺾는다’라고도 표현을 하는데, 마음을 꺾어본 사람과 안 꺾어본 사람은 분명히 인생에 큰 차이가있어요. 사회나 가정생활에서요.
그런데 마음을 꺾는 일은 혼자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해외봉사 시절 지부장님이 제 마음과 많이 싸우고 훈련해주셨어요.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셨기에 저는 그분을 멘토로 믿고 따릅니다. 심지어 제 좌우명도 ‘According to what my Mento said(멘토가 말씀하신 걸 따라서)’인걸요.

Q. 특별한 좌우명이네요~ 좋은 멘토가 가까이에 있어서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건 정말 큰 행운겠지요?
정말 그래요! 제가 배운 것도 적고 경험도 없다 보니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아요.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주 지부장님을 찾아뵈어 조언을 구합니다. 필리핀 현지에서 20년이상 생활하면서 이들의 마음, 성향, 문화를 깊숙이 이해하고 계시기에 제가 어떤 일에 관한 판단을 내릴 때 매번 결정적인 도움을 주십니다.
한국에서 기술이 좋고 경력이 많은 기업도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필리핀에서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이곳에서도 잘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제겐 문제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멘토가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이번 취재를 위해 박주호 씨와 동행해 뚜게가라오Tuguegarao City의 카가얀 주립대학교Cagayan State University에서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영어와 타갈로그어를 섞어가며 청중을 사로잡는 강연을 하는 모습에 프로다움이 느껴졌다. 청중에게 직접 마이크를 대며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답하며 소통하는 강연. 필리핀 사람들은 그의 강연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작은 노트에 필기하며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취재를 위해 박주호 씨와 동행해 뚜게가라오Tuguegarao City의 카가얀 주립대학교Cagayan State University에서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영어와 타갈로그어를 섞어가며 청중을 사로잡는 강연을 하는 모습에 프로다움이 느껴졌다. 청중에게 직접 마이크를 대며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답하며 소통하는 강연. 필리핀 사람들은 그의 강연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작은 노트에 필기하며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Q. 회사의 직원이 현지인만 250명 이상이라고 들었어요. 지사장으로서 많은 사람을 관리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데에 본인만의 철학이 있으실 텐데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배우는 마음으로 일하자’는 것입니다. 필리핀의 경제적 수준이 한국보다 조금 낮지만 사람들은 영어도 잘하고 매우 사려 깊습니다. 당연히 필리핀 문화에 문외한인 제가 도움을 받아야 하지요.종종 필리핀 사람들을 얕보고 함부로 대하는 한국인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저도 일을 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지만 배우려는 자세로 직원들을 대합니다. 직원들도 저를 가깝게 생각하고 제가 지사장이 된 후로 회사의 이직률이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퇴사한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노동청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어 회사가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직원들이 저를 잘 따라주고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매출도 2년 전보다 2배 이상 올랐지요.
제가 회사 경영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인의식’입니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더러운 곳을 청소하고 회사 자금도 자기 돈을 쓰는 것처럼 아끼고 따져가며 써요. 필리핀에서 공사 프로젝트를 받을 때 사례금을 주는 것이 거의 관례로 굳어져 있어서 저도 그런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사의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받지 않는데 그런 것도 주인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저도 직원을 채용할 때 이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음으로 함께 일할 사람인지를 우선순위로 봅니다.

그가 존경하는 남경현 지부장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남경현 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주호는 그해 해외봉사단원들 중에 타갈로그어를 가장 잘했어요.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인이 타갈로그어를 하면 정감을 느끼는데 주호가 영어보다 타갈로그어를 열심히 배우더라고요. 그 언어로 자기의 콤플렉스인 O자형 다리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했어요. 자신의 부족함을 자유롭게 말하는 주호를 필리핀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어요.한국으로 돌아가는 굿뉴스코 단원들에게 제가 늘 ‘다시 와요’라고 말하는데 진짜 그 말을 듣고 돌아온 사람이 주호였어요. 그가 예쁜 필리핀 아내를 얻어 가정을 꾸린 걸 보면 대견스럽고, 또 필리핀 굿뉴스코 후배들을 살뜰히 챙겨주어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그가 존경하는 남경현 지부장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남경현 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주호는 그해 해외봉사단원들 중에 타갈로그어를 가장 잘했어요.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인이 타갈로그어를 하면 정감을 느끼는데 주호가 영어보다 타갈로그어를 열심히 배우더라고요. 그 언어로 자기의 콤플렉스인 O자형 다리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했어요. 자신의 부족함을 자유롭게 말하는 주호를 필리핀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어요.한국으로 돌아가는 굿뉴스코 단원들에게 제가 늘 ‘다시 와요’라고 말하는데 진짜 그 말을 듣고 돌아온 사람이 주호였어요. 그가 예쁜 필리핀 아내를 얻어 가정을 꾸린 걸 보면 대견스럽고, 또 필리핀 굿뉴스코 후배들을 살뜰히 챙겨주어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Q. 만약에 필리핀에 오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으세요?
어휴~ 일단 결혼은 절대 못 했을 것이고 (^^) 무언가를 해보려고 고민만 잔뜩 하고 있겠죠? 취업도 못 하고 패배자처럼 사회와 가정을 원망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필리핀에 오지 않았다면 분명히 아버지와 싸우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신기한 것이 필리핀에 와서 고생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경상도 남자로서 닭살이 돋지만, 가끔 아버지께 전화해서 사랑한다고도 표현합니다.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훨씬 가까워졌어요. 제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면 아버지가 무척 기뻐하시고 또 행복해하셔요.Q. 아들이 행복해지니까 아버지도 행복해지셨네요. 주말에는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마인드 강연을 하러 다니신다고 하셨죠?
네, 주중에는 회사 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주말이 되면 새롭게 변신해요. 현재 필리핀에서 활동하고 있는 굿뉴스코해외봉사단 대학생들과 팀을 이뤄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과 강연을 합니다. 주말에 쉬지 못하는데 피곤하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제 속에서 새로운 힘이 솟는 것을 느낍니다. 해외봉사를 하면서 제가 배운 마인드와 행복을 찾은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많은 분이 공감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행복을 제가 다시 전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Q. 이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신 것 같은데 앞으로 새로운 계획이나 꿈이 있으세요?
현장에서 뛰면서 제 부족한 점을 자주 느낍니다. 예전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에 별 의미를 못 느꼈는데 이제는 공부가 하고 싶어요.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내년에 다시 대학에 등록해서 다니려고요. 사람들에게도 묻고 배우지만 이론적인 지식도 쌓아야지요.
그리고 저는 원래 꿈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필리핀 최고의 경영인이 되는 것이에요! 언젠가 제 사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은 배우는 과정이고요. 최고의 경영인이 되어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단원들이 의미있는 사회적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싶어요. 굿뉴스코가 제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는데 이제 저도 후배들을 이끌어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박주호
부모님의 불화와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았다.하지만 2007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로 필리핀에서 1년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후 꿈과 행복, 그리고 사랑을 준 필리핀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3년 만에 다시 돌아갔고, 6년이 흐른 지금 그는 SUNG IL CORP.에서 필리핀 지사장에 올라 통신장비 현장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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