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봉사하며 글로벌 감각 배운 김바울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와서 적응하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는 김바울 씨.이탈리아에서 1년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글로벌 마인드를 터득한 그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세계시민의 꿈을 키우고 있다.

미국 앨버커키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그곳에서 보내고 이후 한국으로 와서 학업을 계속한 김바울 씨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고, 호빵맨보다 슈퍼맨이 더 친숙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에는 아프리카 4개국과 멕시코, 태국으로 봉사를 다녀오면서 글로벌 마인드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는 50여 명의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지내는 대안학교였는데, 단체생활을 통해 어색했던 한국문화에도 점점 익숙해졌고, 방학 때마다 해외봉사 훈련에 참가해 외국인 친구들과 친분도 쌓았다. 그 과정에서 김바울 씨는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전공도 국제지역학으로 선택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교 1학년을 마치자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유럽 땅, 이탈리아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떠났다.

달콤쌉싸름한 이탈리아의 매력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던 과목으로 세계사를 꼽는 김바울 씨.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에서 활동했던 그의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았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이라는 말이 있듯, 굿뉴스코 지부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콜로세움과 성 베드로 성당이 있어 볼 때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를 당혹스럽게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볼 키스로 인사하는 건 일상이고, 2시간 동안 불평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이탈리아인들을 보면서 느긋한 성품을 배웠다. 식사시간 역시 2시간. 말수가 적은 그에겐 먹는 것이 반, 말하는 것이 반인 그 나라 식사예절은 인내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 문화에는 옳고 그름도 없었다. 그저 살아온 관점과 기준이 다를 뿐, 오히려 그들의 여유 있는 자세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최근 유럽에 K-POP이 유행하면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무료 한국어 교실이나 ‘한국의 날’과 같은 문화행사가 인기가 많아서, 김바울 씨 역시 이웃 유럽국가의 굿뉴스코 단원들과 함께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한국문화로 교류하는 코리아 캠프를 개최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준비과정이 순탄했는데 유난히 로마에서 캠프를 준비할 때는 어려운 일이 많았다.
“행사에 필요한 강당을 구하는데, 사람들이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면서 비협조적인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에서 행사 장소를 구하고, 과일과 음식도 후원을 받아서 코리안 캠프를 무사히 개최했습니다. 태권도 교실, 서예수업, K-POP 콘테스트 등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가 씻기는 듯했어요. 3박 4일의 일정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다 한국문화를 통해 친구가 된 학생들이 저희들에게 엄청 고마워하더라고요!”

사람들의 괄시가 편협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로
이탈리아에서 그가 해외봉사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별나게 애국심이 강한 이탈리아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최고다. 우리 민족이 최고다’ 하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특히 동양인들을 얕잡아봤고 모든 동양인은 중국인으로 알았어요. 당시 중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자신들이 일할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이탈리아인들은 유난히 동양인을 싫어했어요. 키가 작고 눈은 옆으로 찢어진 동양인을 보면 ‘치노’(중국인)라고 불러대며 조롱했어요. 심지어 길을 걷고 있던 나를 보고, 차를 타고 가던 이탈리아인들이 창문을 열어 욕설을 퍼붓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일을 여러 번 당하니까 오기가 나더라구요.

한번은 맥도날드에 앉아 있었는데 흑인 장사꾼이 우리를 향해 오더니 중국인이라고 욕을 하면서, 옆 테이블의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나는 중국인들한테는 물건을 안 팔 거야. 이탈리아 사람들한테만 팔 거야.’라고 말했어요. 이탈리아 땅에 얹혀서 사는 흑인 이민자들까지 우리를 무시하다니….”
김바울 씨의 마음속에서 순간 울컥한 생각이 치밀어 올라왔고, 주변 사람들이 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엔 사람들이 모두 싫어지기 시작했다.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든 계절이 었으니까, 해외봉사 간 지 7~8개월 정도 됐을 때였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향해 완전히 마음 문을 닫아버렸다.
“나한테 잘해준 이탈리아 친구들까지도 싫어지려는 거예요. ‘이들과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뇌리에 섬광이 번쩍했어요. ‘이 친구들은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는데 내가 왜 그럴까? 나는 봉사하러 왔고 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러 왔는데 왜 이리 편협하게 행동할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테고, 그들 중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 부담스럽다고 내가 눈길을 피하고 대화를 차단한다면 끝까지 내 곁에 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러다가 나는 내 말을 잘 따라 주는 애완견이나 키우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김바울 씨는 그날 자신의 관점, ‘보는 눈’을 바꾸었다. 지금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면 삶의 종착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실패와 상처를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의 괄시가 그의 편협함을 벗어버릴 수 있는 역전의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다.

마음까지 굳어 있던 소녀를 울린 한마디
유럽에서 1년간 지내면서 김바울 씨는 평소 하고 싶던 것들을 원 없이 해봤단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태권도 공연, 아프리카 아이들의 질병 퇴치를 위한 자선공연 및 모금활동, 배낭과 침낭만 달랑 들고 떠났던 무전여행. 특히 이탈리아 북부, 중부, 남부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어가 쑥쑥 늘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사실을 배웠다. 또 하나, 유럽이 부유해 보이지만 정작 어려울 때 곁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마음 고생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포르투갈의 코리안 캠프에서 만난14살 소녀 캐롤이 그랬다. 태어나면서부터 뇌질환으로 한쪽 다리와 한쪽 입술이 마비된 캐롤은 절뚝 걸음에 말이 어눌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친구 없이 외롭게 지내던 중 한국가요를 좋아하게 됐고, 자기가 사는 곳에서 코리안 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한국문화 수업 후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을 때 캐롤이 먼저 이야기하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친구들이 따돌린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요.” 그는 이렇게 쪽지를 적어 캐롤에게 건네주었다. “이 세상에는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 너는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워!”
그 말에 펑펑 울며 자신을 꽉 껴안아주는 모녀에게 고마운 한편, 이들 곁에 이런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표정이 어둡던 친구가 저희가 준비한 캠프에 참석하면서 성격이 밝아지고 새로 친구를 사귀는 걸 봐요. 가장 보람된 순간이죠.”

나이테처럼 여물어가는 마음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김바울 씨는 전공인 국제지역학 공부가 더 재미있어졌다고 한다. 때론 무시도 받고 갈등도 겪었지만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할 때 유럽문화가 더 알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0년, 한국에서 10년 그리고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서 1년. 다양한 문화권에서 생활했던 지난날이 전부 값진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학습도 늦고, 배우는 게 고생이었지만 덕분에 지금은 두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외국인을 만나도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고 지금은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한국친구들을 제가 챙겨요.”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며 나무가 나이테를 하나씩 늘려가듯, 문화차이와 갈등이라는 성장통을 감내하며 김바울 씨의 속은 단단하게 여물어졌다.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해보고 싶다는 그가 당당한 세계시민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그가 본 인상적인 이탈리아
사람: 역사와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 사람들.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가 만난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한편으론 다혈질이었다. 대화할 때 제스처가 풍부해 잠시도 손을 가만두지 않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고. 또 젊은이들은 유행에 민감한데 같은 반도半島 국가여서인지 한국의 정서와 유사한 점이 꽤 있다.

커피: 커피의 본고장은 이탈리아다. 농도 옅은 아메리카노는 진정한 커피로 취급하지도 않는 이들은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탈리아에서 스타벅스 매장을 보질 못했다. 편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여유를 누리는 한국의 카페문화와 달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주문한 커피를 그 자리에서 서서 들이키고 다시 갈 길을 간다고 한다.

도시: 도시국가에서 발전해온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특색이 분명해서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로, 그중에서도 김바울 씨가 ‘꼭 가봐야 할 도시 Top 3’로 꼽는 곳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베로나’ , 도시 가운데 수로가 있는 물의 도시 ‘베니스’ , 고대 로마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로마’이다.

김바울 씨는 현재 부경대학교 청소년 봉사 동아리 IYF 회장으로서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소심한 성격에 사람보다 핸드폰을 더 좋아한 그가 해외봉사 1년 사이에 호탕하고 쾌활한 청년으로 바뀐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해외봉사를 하면서 행사 기획자, 영어통역사, 청소년 캠프 사회자, 태권도 시범자 등 다양한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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