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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현장에서 웃고 악수하는 사람들송태진의 'In 아프리카, 아프리카人'
송태진 | 승인 2016.11.09 10:59

케냐의 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송태진 씨가 아프리카 풍속과 문화에 대해 매달 <투머로우>에 소개한다. 이번호에는 사람이 탈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이 다니는 케냐 도로 위에서 일어났던 한 차 사고 사건에서 케냐인들의 마음을 느낀다.

급성장하는 아프리카의 상징, 자동차
“어, 어, 어엇!”
콰직!
잠시 얼이 나갔는지 나는 교차로로 진입해 들어오는 앞차를 그대로 받아버렸다. 브레이크도 밟지 못하고. 다행히 달리던 속도는 빠르지 않아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나는 두려웠다. 언제나 나의 예측을 벗어나는 아프리카에서의 삶. 어두운 밤길 위로 차 문을 열고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큰일 났다!’라는 머릿속을 미친 듯이 돌아다닐 뿐이었다.

아프리카의 잠재력에 대해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항목이 있다. 아프리카 자동차 시장의 급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2015년 아프리카에서는 한 해 동안 155만 대의 신차가 판매되었다. 이것은 2005년과 비교했을 때 40% 가량 증가한 수치다. 중고차도 연 30만 대 이상이 들어오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 아프리카인들의 소득 수준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서 당분간 판매량도 상승세를 보일 것이다. 미국의 리서치기업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2025년 아프리카의 자동차 판매 대수가 현재의 두 배 수준인 326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차 보급이 늘어나며 아프리카의 도시는 몸살을 앓고 있다. 보행자와 달구지에 맞춰 날림으로 설계된 도시 위로 수십만 대의 자동차들이 움직이려니 어디를 가나 교통 체증이 극심하다.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기존의 도로를 확장시키고 새로운 도로를 닦는 등 인프라 확충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길은 좁고 고불고불하고 울퉁불퉁하다. 승차감 나쁜 차를 타고 동네를 달리면 굳이 놀이공원에 갈 필요가 없다.
이토록 불편한 도로를 달리려니 운전습관이 좋아질 리가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느긋하다는 건 적어도 운전하는 동안에는 거짓말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이 동원된다. 역주행, 불법 유턴, 끼어들기는 기본, 제임스 본드를 넘어서는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도 보곤 한다. 본인은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르나 전체적으로는 교통을 마비시키는 행위인데도 그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운전대를 휘돌린다. 난폭한 그들의 운전습관에 더해 한국과 차선방향도 달라 나는 아직도 케냐에서의 운전이 서툴다. 혼돈스러운 도심의 길을 주행하는 날은 윙윙 돌아가는 짤순이 빨래통 속을 헤치듯 헤롱거렸다. 손바닥만 한 틈에 기어코 범퍼를 들이밀며 끼어드는 밉상 운전자들에게 한국 욕도 많이 했다. 내가 느낀 케냐인의 교통 습관은 본받을 것이라곤 전혀 없는, 한심하고 답답한 후진 문화일 뿐이었다.

걱정 마, 인생은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
예상치 못했던 자동차 사고를 낸 나는 어둠 속 운전석에서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저쪽 차의 누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떡하지? 머릿속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다. 흥분한 폭도들이 자동차 유리창을 깨부수고 나를 끌어내 두드려 패는 그림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다행히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방정맞은 뇌세포들을 조금 진정시키고 용기를 내어 차 밖으로 나갔다. 내가 들이받은 차는 일제 도요타 랜드 크루저. 쉽게 말해, 엄청! 비싼 차였다. 더욱이 교차로를 진입하는 차의 옆구리를 받았으니 100% 나의 과실이다. 돈 무지 깨지겠네. 한숨을 내쉬었다.
차 주인이 나왔다. 덩치가 건장한 중년 흑인 남자.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뒷목을 잡지도 않는다.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차 주인은 접촉 사고가 일어난 부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뒷문의 유리창이 스륵 아래로 내려갔다. 빼꼼히 보이는 차 안에는, 세상에! 작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너무 미안했다. 차 주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윽고 그가 뚜벅뚜벅 걸어와 내 앞에 섰다. 나의 잘못이 확실하니 일단 사과하며 말을 시작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아이고 세상에. 따님도 괜찮으신가요? 얼마나 놀라셨어요? 제가 너무너무 잘못했습니다.”
“아니, 이미 교차로에 들어간 차를 받아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당신 차가 오는 걸 보긴 했는데, 중간에 멈출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정말로 내 차를 받을 줄 몰랐어요.”
“한국과 케냐의 주행 방향이 반대라서 제가 아직 운전이 서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차주 제임스는 군 장교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경악할 사실. 제임스는 그 차를 그날 사서 딸과 함께 첫 드라이브를 나온 길이었다. 번쩍이는 새 차에 큼직한 상처가 생겼으니 제임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차를 점검하는 그를 따라다니며 안절부절 못하고 연신 사과를 거듭했다. 제임스는 잔뜩 위축된 나를 돌아보더니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한국 친구, 걱정 하지 마. 인생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거 아니겠어?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생기는 법이야. 내가 도와줄게.”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피해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것도 새 차의 첫 드라이브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 그러나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제임스는 나를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나쁜 놈으로 여기지 않고, 불의의 어려움을 만난 도와줘야 할 친구로 대했다. 그는 사고로 인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내가 곤란해할 만한 그 어떤 영악한 행동이나 언행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현장의 사진을 찍고, 경찰을 부르고,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절차대로 일을 수습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걱정 말라며 나를 다독였다.

나이로비에 건설되고 있는 거대고가도로. 정부는늘어나는 차량을 감당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에 노력을쏟고 있다.
사고난 자동차의 상태. 차주 제임스는 오히려필자를 위로했다.1
사고난 자동차의 상태. 차주 제임스는 오히려필자를 위로했다.2

교통사고 나도 웃으며 악수하는 사람들
우리는 경찰이 오길 기다렸다. 케냐의 법은 경찰이 오기 전까지 사고 차량을 움직일 수 없다. 큰 교차로의 한복판에 차가 두 대 서 있으니 다른 차들은 우리를 피해 요리조리 곡예 운전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뿔싸! 와장창하는 소리가 나며 또 다른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우리의 사고 현장을 피해 달리던 자동차들이 서로 받아버린 것. 되레 우리보다 더 큰 사고였다. 문짝이 움푹 들어가고 깨진 전조등의 파편이 도로 위에 흩뿌려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고 난 자동차에서 나온 운전자들이 웃으면서 악수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하며 차를 살폈다. 아니, 뭐가 재미있다고 웃는 거지? 사고 난 게 남의 일인가? 그들은 차를 살피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모두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며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친구랑 수다 떠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도 교통사고가 나면 저랬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일단 얼굴 가득 인상을 쓰고, 혹은 뒷목을 잡고 나오는 운전자들이 떠오른다. 성질 급한 이는 ‘야 이 자식아!’ 큰 소리 한 번 치며 기선을 제압한다. 이어서 최대한 내가 덜 잘못했고,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싸움이 시작된다. 언성이 높아지고 불쾌한 감정이 표현되기도 한다. 운전자들끼리 웃으며 악수할 정도로 합의가 원활히 되기는 어렵다. 모두 상대방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마음을 조율하지 못하니 경찰과 보험회사 직원이 와서 법을 들고 중재를 해줘야만 상황이 끝난다. 한국에서는 그랬다.
그 후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가던 나는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들은 웃으면서 악수를 할 수 있었는지 택시기사 피터에게 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단지 운이 없을 뿐이지. 그가 사고를 내고 싶어서 낸 게 아니잖아.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만약 너도 다치지 않았고, 나도 다치지 않았다면 왜 싸워야하지? 둘 다 멀쩡하면 서로 도와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거야. 하쿠나마타타(아무 문제없어)!”

잊지 않길 바라는 케냐인 마음
현장을 수습하고 며칠 후, 제임스와 나는 차를 수리하기 위해 저렴한 정비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사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의 과실이었기 때문에 그가 비싼 견적을 받아오더라도 나는 반박할 수 없이 그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임스는 나에게 수리비 부담을 주지 않으려 굳이 싼 정비소를 알아보고 다녔다. 그의 고급 도요타 랜드 크루저는 사실 그런 싸구려 정비소에서 고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저렴한 가격으로 수리비를 정할 수 있었고, 사고는 간단하게 마무리되었다.
교통사고를 경험하며 나는 케냐인들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이든 사고를 낸 사람이든 서로를 배려해주는 그들. 두려워하는 나의 어깨를 두들겨주던 제임스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자신이면서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이런 사고를 냈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의 넓은 마음은 오늘 뽑은 새 차를 받아버린 멍청한 외국인도 포용할 수 있었다.
케냐에서는-트럭이나 버스 등 영업용 차량이 아니라면-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려는 행동은 드물다. 마치 어머니가 깨끗하게 빨아준 옷에 놀이터 진흙을 잔뜩 묻혀버린 형과 동생처럼 ‘아이고, 우리 사고 쳤네. 이제 어떡하지. 헤헤헤.’ 하며 서로 얼굴을 보며 웃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내가 힘들다면 상대방도 힘들다는 아주 당연한 생각이 케냐사람들의 바탕에 깔려있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같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나는 운전을 함부로 하는 케냐인들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았다. 적어도 교통질서에 관해서는 한국이 우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솔하고 오만한 발상이었다. 케냐의 운전자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배려의 마음. 한국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는 마음, 그 마음… 케냐가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성장하더라도 그들이 그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계속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지난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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