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숨겨놓는 정리
나는 원래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정리 및 청소를 습관으로 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나만의 생활공간에서 지내면서 나름대로는 깔끔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고,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나의 집이 생겼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가지고 정리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정리는 내가 사거나 누군가 준 물건을 차곡차곡 잘 쌓아놓거나 쓰기 좋게 갈무리하는 수납에 가까웠다.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버린 워킹맘
결혼 후, 직장을 다니면서 첫째를 키우는 생활이 녹록지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은 잡지사 편집부에서 일하는 기자였기 때문에 회사일로 바빠서 집안일이나 육아를 도와주기가 사실상 어려웠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육아용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육아용품이 아이에게 유익하고 덩달아 내 몸까지 편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딸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들, 육아용품들을 사기 시작했고, 어느 날 큰 딸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을 보며 갑자기 아이의 교육이 걱정이 되어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책의 양이 마구 늘어나자 책장이 필요했고, 책장으로 채워진 거실을 보며 나름 만족했지만, 정작 아이는 내가 사놓은 책들을 보지 않아서 속상했다. 갑자기 늘어난 장난감과 책, 그리고 그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장난감 수납장과 책장들. 어느새 우리 집에는 빈 벽이 없을 정도로 가구들이 빽빽이 자리 잡았고, 그 안은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 찼다. 아이들이 이것저것 다 꺼내서 놀다보면 거실은 매일 난장판이었다. 물건으로 쑥대밭이 된 광경을 보자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내 잠을 줄여야 집을 정리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아이들을 자주 혼냈다. 아이들이 기쁘고 나도 편하자고 사놓은 장난감과 책이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올 초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 앞이 깜깜했다. ‘어떻게 하면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찮게 ‘미니멀 육아’를 알게 됐다. 미니멀 육아를 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니, 육아에는 장난감이나 책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없어도 얼마든지 주변의 물건들로 창의적으로 놀고,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좋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정말 그랬다. 내가 자랄 때만해도 지금과 같은 ‘국민’자가 붙은 육아용품이나 장난감이 없었지만 매일 재미있고 행복했으니까.

비우기 위한 치열한 사투
여기에 내 고민에 대한 답이 있었다. 벌떡 일어나 장난감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의 정리는 ‘차곡차곡’이 아닌, 없애는 개념의 정리였다. 거실을 가득 채운 책과 장난감…. 그것들을 사려고 적잖은 돈과 시간을 투입했지만 이제는 그걸 없애기 시작했다. 중고로 헐값에 팔고, 지역카페에 드림(무료로 물건을 주는 것)하면서. 진작 사지 않았다면 이렇게 두 배로 돈과 시간, 노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는데…. 아까웠지만 ‘이걸 교훈삼아 앞으로의 소비는 예전처럼 무분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무려 두 달 동안 아이들을 재우고 밤마다 물건들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며 비워냈다.

단순해지고 행복해졌다
비운 후 정말 신기했다. 여유가 생기고, 행복이 찾아왔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 많아야 될 것 같았는데, 가득 쌓인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까 물건정리에 소비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 쓸 수 있었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도 꽉꽉 차서 뭐가 있는지도 몰라 이미 있는 식료품도 다시 사곤 했는데, 이제는 비어있는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바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요리하는 것도 단순해졌다.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불평할 일도 없어졌으며, 정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도 없어졌다.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며 이것도 사달라, 저것도 사달라 할 때가 있지만 갖고 싶은 걸 모두 가진다고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아직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이들이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우면 좋겠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만난 4살 여자아이가 간호사로일하며 밤 근무 마치고 퇴근한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이런 장난감이 갖고 싶으니 빨리 회사에 가서 일하라’고. 듣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그 집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아이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인다
미니멀 육아,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 나서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인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보다 엄마와 노는 것이 더 즐겁고, 남편에게는 깨끗이 정리된 집보다 대화를 나눌 아내가 더 필요하다. 물건 자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너무 다양해서 복잡해버린 삶을 정리하고 진짜 소중한 것에 나의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 라이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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