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진의

케냐의 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송태진 씨가 아프리카 풍속과 문화에 대해 매달 <투머로우>에 소개한다. 오늘날 케냐는 디지털 세대라 불리는 젊은층과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그 해법은 케냐의 전통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솥단지 둘레에 피어나던 이야기꽃
원시 사회를 다룬 문학이나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어스름한 저녁, 들판에 피워진 벌건 장작불과 그 위에 걸려 있는 커다란 솥. 사방에서 울리는 광신적인 음악이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반라의 토인들은 기묘한 춤사위로 불 주위를 휘어 돈다. 꽁꽁 묶여 초죽음이 된 포로는 가련한 표정으로 자신을 구출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다. 로빈슨 크루소, 인디아나 존스는 물론 아기공룡 둘리에서까지 나오는 이 요란한 식사 시간은 문명이 닿지 않은 원초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한껏 풍기며 보는 이를 몰입하게 한다.
한국인에게는 낯선 모습이지만 사실 몇몇 과장된 부분을 덜어내면 케냐에서는 익숙한 전경이다. (물론 그들에게 식인풍습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야외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대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기다린다. 엄마는 불 위에 놓인 큼직한 솥으로 보글보글 요리를 만든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가는 동안 할머니는 크고 작은 까까머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아주 먼 옛날 세상이 처음 시작할 때의 신화에서부터 용맹한 사자와 영악한 코끼리의 교훈적인 우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부족을 이끌고 적을 물리친 자랑스러운 역사 등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끊길 줄 모른다. 그에 질세라 꼬마 녀석들도 친구들과 산야를 달리며 겪은 모험담을 앞다퉈 꺼낸다.
들판의 공기가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가득 찰 즈음, 듣는 이는 말하는 이가 되고 말하는 이는 노래하는 이가 되고 노래하는 이는 춤추는 이가 된다. 그리고 춤추는 이는 듣는 이가 되고, 하나가 된다. 기쁨은 자라나고 슬픔은 희석되는 커다란 하나가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낀다. 별이 총총한 아프리카의 저녁, 모닥불과 솥단지 둘레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행복한 시간은 오늘날 케냐인들의 가슴에 유년 시절의 따뜻한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

너무나 다른 아이들, 디지털 세대의 등장
세상은 순식간에 변했다. 아프리카에도 경제 개발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곳곳에 거대한 도시가 건설되었다. 빌딩도 세워지고 자동차도 다니고 옷도 세련되어졌다. 초원의 바오밥나무 아래에서 소가죽을 깔고 자던 사람들은 이제 도시의 아파트에 매트리스를 놓고 잔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방 안에 앉아 세계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근사하고 멋진 새 시대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언제부턴가 저녁마다 피던 이야기꽃이 사라졌다. 할아버지, 삼촌, 사촌, 십이촌이 모여 복작이던 가족 공동체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집에는 부모와 자녀만 남아 있다. 부모는 일을 하느라 너무 피곤해 저녁이면 잠들기 바쁘다.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고 숙제를 하느라 노닥거릴 여유가 없다. 식사에도 함께 모이지 못하고 각자 해먹을 때가 많다. 간혹 시간이 남더라도 가족들은 TV나 스마트폰과 눈을 맞출 뿐 예전처럼 대화를 하지 않는다. 도시에는 함께 앉아 식사를 기다릴 넓은 들판도, 옛날이야기를 해줄 자애로운 할머니도, 맛있는 요리를 준비할 큼직한 솥도 없다. (지금도 솥이 있긴 하다. 요리용 대신 화분으로 더 많이 쓰여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그들은 마음이 하나 되어 느끼던 행복을 상실하고 말았다.
대화를 나누며 웃어른과 어울려 소통하고 전통을 물려받는 문화가 단절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판단과 또래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사고방식을 성장시켰다. 결국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세대가 나타났다. 케냐인들은 그들에게 ‘디지털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로 10대와 20대의 젊은 청년들을 칭하는 디지털 세대는 그 이름대로 전자기기 사용에 능숙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배우는 케냐의 고유문화보다 또래들과 공유하는 서구문화에 더 관심이 많다. 그들이 동경하는 서구문화라는 건 기실 인터넷과 대중매체에 뿌려진 상업적인 대중문화이다. 마약, 폭력, 성적 쾌락 등 케냐 사회에서는 터부시되어온 것들이지만 디지털 세대는 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대히 받아들인다. 또한 물질적인 성공과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 세대의 사고방식과는 여러모로 다른 것이 많다.
이들은 심지어 사용하는 언어마저 다르다. 디지털 세대는 영어와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를 섞은 ‘쉥Sheng’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자녀들이 쉥으로 대화하면 부모들은 바로 앞에서 듣더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기성세대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자신들만의 대화를 하고 싶을 때는 쉥을 이용해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다. 요즘 한국의 10대들이 사용하는 외계어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만큼 디지털 세대는 기존과 다른 자신들만의 새로운 가치관을 갖기 원하고, 전통에 매여서 사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변화하는 삶에 익숙하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 가수 ‘피스퀘어’. 개성을 중시하는 디지털 세대가 공감하는 음악과 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스타일로 인기가 높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 가수 ‘피스퀘어’. 개성을 중시하는 디지털 세대가 공감하는 음악과 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스타일로 인기가 높다

우리 엄마는 나를 싫어해
대화가 끊어진 케냐의 가정 현실과 특이하기 그지없는 디지털 세대의 성향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케냐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종종 부모가 아이들을 혼내거나 체벌할 때가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디지털 세대가 가진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진다. 자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보지 못한다. 그저 혼내는 모습만 보게 된다. 평소에 마음의 소통이 없으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때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혼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자녀의 반응은 삐딱해지고, 그에 비례해 부모의 고함 소리는 커지게 된다. 급기야 부모는 자녀를 ‘말 안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로 생각하고, 반대로 아이는 부모를 ‘자신을 싫어하는 간섭꾼’으로 여기고 만다. 그 과정이 반복되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케냐의 대다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밑에서 지내다가 졸업하는 순간부터 집을 나가 비행을 저지른다. 수능을 마친 우리의 고3들이 저지르는 일탈은 귀여울 정도다. 케냐 졸업생의 범죄는 일종의 정기적인 연례현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졸업 철이 되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소년, 소녀들이 줄줄이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다. 마약을 판매한 소년, 성매매를 한 소녀, 무더기로 강도질을 한 녀석들… 경찰서에 다녀온 녀석들은 치기가 생겨 주위의 또래들을 선동해 더 큰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싫어해. 나는 우리 집에서 필요 없는 녀석이야.’
만약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풀렸을 오해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도 부모를 사랑한다. 그 당연한 것을 알지 못해 케냐에서는 많은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부모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소년이 어떻게 가정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편안히 쉴 수 있을까? 사사건건 부모와 부딪치며 그의 마음은 비뚤어지고 반항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뜻하게 휴식을 취해야할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대립하고 서로 오해를 안고 살아간다. 범죄까지 가지 않더라도 졸업 후 부모와 관계를 끊고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대가 변하고 가족 간에 소통이 사라지며 만들어지는 슬픈 현실이다.

다시 솥단지 앞으로 돌아오길
유년 시절을 따뜻하게 보낸 지금 케냐의 부모세대는 왜 자녀들에게 못된 부모가 되었을까? 단지 세대차이가 모든 것의 원인일까? 디지털 세대가 유난히 극성스러워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모들은 자신이 행복했던 이유를 몰랐다. 그 당시 행복이 행복인 줄도 몰랐다. 세상이 변화되고 아프리카에 물질 만능 주의가 팽배해지며 마음을 나누고 하나가 되는 행복은 가치를 잃었다. 많은 재물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케냐의 부모들은 돈을 벌어서 대부분 자녀의 양육비와 교육비로 사용한다. 그런데도 자녀들은 부모를 원망한다. 마음이 전달되지 않고 물질만 전달된 결과다.
필자가 일하는 TV방송국에서는 가정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과 부모를 연결시켜주는 ‘Link Up’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청소년과 부모는 마음을 열고 그간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눈다. 그들이 말하는 문제의 시작은 대부분 별 것 아닌 사소한 사건이었다. 그것이 묵어 원망과 갈등이 되고 가정을 파괴시킨다. 놀라운 사실은 청소년들 중에 부모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녀들이 갖고 있는 오해-우리 엄마는 날 싫어해-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서로의 속마음이 연결되며 가정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케냐에 심각한 세대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산업화로 달라진 세상이 왔기에 기성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성장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갈등도 유발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예전에 솥단지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별것 아닌 대화와 이야기가 가족을 이어주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행복하길 원한다면 대화는 가정에서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케냐에는 솥단지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훌륭한 소통의 문화가 있다. 케냐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속에 깃들어 있는 행복의 비결을 재발견하고 마음을 소통하는 훌륭한 나라를 만들 것을 기대한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지난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http://blog.naver.com/impork3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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