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IYF가 실시하는 ‘세계 청소년부장관 및 대학총장 포럼’ 프로그램에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 포럼에 참가한 귀빈들이 한국의 가정에서 직접 그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민박프로그램’이다.
한국 가정의 문화와 정서를 체험하는 동안 그들이 받는 느낌은 남다르리라.
“해외에 많이 다녀 봤지만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한 대접은 처음입니다.”
민박을 체험한 귀빈들에게서 들려오는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그 중 한 가정의 민박 이야기를 소개한다.

호텔에 머무르시는 만큼 편안하게 해드리고파 (7월 1~7일)
올해도 월드문화캠프와 함께 ‘세계 청소년부장관 및 대학총장 포럼’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민박을 하게 된 우리 가족은 들뜬 마음으로 외국인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친구나 친지들을 모시고 간단한 집들이 한 번만 해도 청소나 음식 마련 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물며 먼 케냐에서 오시는 교육자 두 분과 통역원 등 세 손님이 3박 4일 동안 우리 집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긴장 반 기대 반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작년에 민박을 치른 경험에 따르면 손님 맞을 준비는 크게 음식준비와 숙소준비로 나뉜다. 혼자선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이기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주부님들이 두 차례나 우리 집에 오셔서 대청소를 해주시고 시장도 함께 봐주셨다. 안방과 안방화장실, 드레스룸은 손님이 호텔에 머무르시는 만큼 마음 편하게 쓰실 수 있게 우리 부부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다 정리해서 작은방으로 옮겼다. 작은 이사를 하는 것만큼이나 일이 많았는데,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도와주어 정말 고마웠다.
 청소가 끝난 뒤 새 침대커버와 시트를 갈아 끼우고, 세탁해 놓았던 여유분의 이불을 장롱에 비치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작은 유리주전자와 컵, 간단한 다과용 간식을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꽃병에 꽃을 꽂아두었다.

한복과 ‘잠보 브와나Jambo Bwana’가 어우러진 환영식 (7월 8일)
손님들이 케냐에서 오시는 만큼 케냐식으로 환영식을 하고 싶었다. 친구 아이들 중 교회에서 어린이 댄스팀 단원으로 활동하는 아이들이 춤을 추고, 그보다 어린 우리 아들들과 또래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백댄서(?)가 되었다. ‘잠보 브와나Jambo Bwana’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며 케냐에서 오시는 두 분을 맞이했다. ‘잠보 브와나’는 케냐 공용어인 키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모국어 노래를 들은 총장님들은 놀라움과 고마움에 미소를 지어 보이셨정다. 은가마우 부총장님은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짐도 내리지 못하시고 사진을 계속 찍으셨다.

민박의 하이라이트, 식사시간
아침식사로는 양식, 저녁식사로는 한식을 준비했다. 아침은 모닝빵 등 빵 종류와 우유, 주스 등의 음료, 한국식 찐 감자, 스프, 요거트, 베이컨 등을 차렸다. 양식 상차림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음식준비보다 상 차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저녁은 소불고기와 쌈을 주 메뉴로, 조기구이, 전, 김치, 물김치, 그리고 외국인도 먹을 만한 밑반찬으로 서너 가지 나물류를 준비했다. 후식은 수박, 복숭아, 멜론 등 제철과일이 많았고, 떡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잘 드셨다.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음식들을 혼자서 장만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스티스 학생처장님은 특히 불고기를 좋아하셨다. ‘한국에서 먹어본 요리들 중 불고기가 가장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또 젓가락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한국음식을 먹을 때면 꼭 젓가락 쓰기에 도전도 하셨다.

아프리카인의 순수함을 엿본 남대문 쇼핑(7월 9일)
9일 토요일은 자유관광 시간~! 오전에는 한국 서민의 생활을 알게 해주는 남대문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오후에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재래시장답게 남대문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볼거리와 살거리가 가득하다. 두 분은 케냐에서 손꼽히는 대학의 부총장님과 처장님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딜 가나 아내와 자녀들을 먼저 생각하는 가장이기도 하셨다. 가족에게 줄 선물을 먼저 사고, 남은 돈으로 본인이 쓸 물건을 구입하셨다.
 은가마우 부총장님은 2006년에도 한국에 오신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환전했다가 남은 보라색 구권舊券 1000원짜리 지폐를 갖고 계시다가 이번에 와서 사용하셨다. 저스티스 처장님은 100달러 정도밖에 환전하지 못해 쇼핑비용이 넉넉지 않았다. 처장님은 상인들에게 “나는 돈이 많지 않아 고급제품은 살 수 없고 중저가 제품을 원한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셨다. 그 검소함이 두고두고 생각이 되었다.
 우리는 한국 자개공예품 가게에도 갔는데, 거기서 경대, 보석함, 명함케이스, 봉투 뜯는 칼 등 화려한 공예품들이 우리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두 분은 자개로 장식된 USB메모리를 유난히 마음에 들어 하셨다. 이때다 싶었는지 남편이 나에게 “이거 하나씩 선물해드리자”고 했다. 부총장님과 처장님은 USB메모리를 선물로 받고 어린애처럼 기뻐하셨다.
 명동의 중국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두 분은 각각 고추잡채밥과 새우볶음밥을 주문하셨다. “한국의 여름철 별미인 냉면을 드시는 건 어때요?” 하고 여쭤봤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국수를 잘 먹지 않는 다고 하셨다.
 그리고 차가운 음식도 잘 먹지 않는다고 하셨다. 차茶도 늘 뜨거운 것을 달라고 하셨고, 아이스크림도 잘 드시지 않으셨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남대문시장에서 구두를 고르고계신 아프리카 총장님들.
남대문시장에서 구두를 고르고계신 아프리카 총장님들.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의 역사와국민성을 소개하기에 전쟁기념관은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의 역사와국민성을 소개하기에 전쟁기념관은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의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7월 9일)
식사를 마치고 전쟁기념관으로 향했다. 1994년 개관한 전쟁기념관은 옛 선사시대부터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거쳐 근대까지 우리 역사 속의 전쟁관련 유물과 기념물, 자료를 전시한 종합박물관이다. 우리 조상들이 숱한 외부의 침략을 이겨내며 세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외국 손님들께 알릴 절호의 기회다 싶어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을 총동원해 설명을 해 드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신라의 화랑제도였습니다. 젊은이들을 뽑아 무술과 학문을 가르쳐 강인한 정신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후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라는 나라가 등장해 중국의 만주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강성했습니다. … 이처럼 저희 한국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나라들로부터 많은 침입을 받았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늘 준비하고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내 설명을 듣던 중 저스티스 처장님이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의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하셨다. ‘천연자원도 부족하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6·25전쟁까지 겪은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늘 궁금했는데 전쟁 기념관에 와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 듣는 동안 그 궁금증이 절로 풀렸다고 하셨다. 왜 한국인이 매사에 ‘빨리빨리’를 좋아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상황대처가 빠른지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쇼핑도 즐거웠지만, 한국의 역사와 국민성에 대해 배운 전쟁기념관 방문은 정말 유익했다고 말씀하시는 두 분을 보니 하루의 피로가 깨끗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저스터스 처장님께서 선물로 주고 가신 KCA대학교기념티셔츠와 편지. ‘저의 이번 한국방문 기간 동안당신은 제게 축복이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저스터스 처장님께서 선물로 주고 가신 KCA대학교기념티셔츠와 편지. ‘저의 이번 한국방문 기간 동안당신은 제게 축복이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임진각 ‘그라시아스 평화콘서트’ (7월 10일)
은가마우 부총장님은 10일 일요일 오전 1시 55분 비행기로 출국하셔야 했기에 전날 밤 10시에 우리 집을 나서셔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댁에서 지내는 동안 너무 행복했습니다.” 부총장님의 인사말이었다.남편과 통역과 저스티스 처장님은 부총장님을 인천공항까지 모셔다 드렸다.
 저스티스 처장님은 13일에 출국할 예정이셨다. 나는 집에 남아 처장님이 머무르실 수 있도록 안방을 새로 정리했다. 우리 집은 방이 세 개인데 민박기간 동안 부총장님은 안방에, 처장님은 침대가 있는 아들들 방에 주무시게 하고 나머지 방에서 우리 부부가 지냈다. 부총장님이 처장님보다 몇 살 위였던 터라 처장님에게는 ‘한국에서는 나이가 한 살만 많아도 깍듯이 윗사람으로 모시는 문화가 있다. 방이 좀 작아도 이해해 달라’고 설명해 드렸다. 물론 처장님도 ‘아무 문제없다’며 웃으셨다. 애들 방에는 장난감과 동화책들이 있었는데 처장님은 ‘저도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방에 애들 물건이 있어 아주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지낼 수 있었어요’ 하며 기뻐하셨다.
 다음 날 아침, 처장님은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셨다. 예배 후 오찬에 참석하시고 오후에는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그라시아스 평화콘서트’도 관람하셨다. 우리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임진각으로 가서 처장님과 함께 도시락을 먹고 음악회에 참석했다. 임진각에서의 음악회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음악회는 처음이었다. “해운대에서 열린 개막식도 아름다웠지만, 임진각 콘서트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이곳에서의 연주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처장님이 감격스러워하며 말씀하셨다.

셔츠 여덟 벌을 2시간 반 만에 뽀송뽀송하게 (7월 11일)
11일 월요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눠야 하는 날이 왔다. 처장님은 총장포럼 2주차 일정에 참석하시기 위해 오후 1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셔야 했다. 그런데 아침 10시가 훨씬 지난 무렵, 생각 하나가 내 머릿속을 번쩍 스쳐갔다. ‘아차, 처장님 빨래를 해드린다는 것을 깜박했구나!’ 처장님께 “혹 빨랫감이 있으면 주시라”고 했더니 셔츠 여덟 벌을 내놓으셨다. 우리 집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두 시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셔츠를 세탁기에 돌렸고, 남편은 세탁이 끝난 셔츠를 다리미로 다리고 또 선풍기로 바람을 쐬서 건조시켰다. 다행히 처장님이 출발하시기 전까지 뽀송뽀송하고 깨끗하게 세탁된 셔츠를 건네드릴 수 있었다. 처장님은 연신 우리 부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버스에 탑승하셨다.

‘드디어 끝났구나.’ 3박 4일 동안 온 마음을 쏟아 두 분을 대접했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더 잘해 드릴 수 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남편은 민박을 치르며 찍은 사진과 사연들을 SNS에 올렸더니 금방 수많은 친구들이 몰려 ‘외국 대학 총장들을 모시다니, 대단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부러워하 더란다. 물론 몸은 피곤했지만, 외국인 손님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무엇보다 한국 가정의 따스한 정을 전할 수 있어 보람된 시간이었다. ‘세계 청소년 부장관 및 대학총장 포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이 이런 민간외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정말 감사했다. 내년에는 또 어느 나라의 어떤 귀빈들을 모시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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