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6일부터 제 31회 하계올림픽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8월 한 달은 서로간의 거리를 떠나서 한국과 멕시코가 올림픽 열기로 하나가 될 것 같다. 멕시코 사람들이 올림픽 하면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양궁 여자 개인 결승전.
영국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개인 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한국의 기보배 선수와 금메달을 놓고 마지막 대결을 펼친 선수는 바로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이었다.

기보배 선수의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한 세트에 세 발씩 다섯 세트를 쏘는 결승에서 첫 세트는 27:25로 기보배의 승리. 2세트는 26:26으로 비겼다. 3세트에서 로만 선수가 저력을 발휘해 26:29로 승리, 1승 1무 1패라는 박빙의 상황에서 4세트는 기보배 선수가 실력을 발휘해 30:22로 가져갔다.
아이다 로만 선수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5세트. 기보배 선수가 26점으로 주춤한 사이 로만 선수가 27점을 쏘며 기어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여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은 당연히 한국의 몫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기보배 선수의 부진을 틈탄 로만 선수의 선전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경기는 마지막 1발로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만 남겨 놓게 되었다. 각각 한 발만을 쏴서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에서 먼저 사대에 선 선수는 기보배였다. 경기장 전체에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으로 향하고, 긴장한 탓인지 바람의 영향인지 기보배 선수가 쏜 화살은 8점 영역에 꽂혔다. 남은 로만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진 상황. 결승에 오른 선수들이 대부분 9점 아니면 10점에 쏘는 걸 생각하면 로만 선수에게 금메달이 돌아가는 이변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긴장이 되었는지 사대에서 평소보다 준비시간을 길게 보낸 로만 선수의 손에서 마침내 화살이 떠났다. 화살이 꽂힌 곳은 기보배 선수와 같은 8점 영역. 그러나 기보배 선수의 화살보다 과녁 중심에서 0.5센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렇게 기보배 선수는 포기했던 승리를 극적으로 얻었고, 눈부신 선전을 했던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 선수는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치며, 이 경기는 세기의 명승부로 남게 되었다.

경기 후 패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멕시코 양궁 대표팀의 이웅 감독은 ‘마지막 화살을 쏠 때 로만이 욕심을 냈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기보배 선수가 마지막 슛오프에서 8점을 쏜 후 로만 선수가 욕심을 내는 게 보였다. 9점 이상만 쏘면 금메달을 따는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기본자세를 잡기 전부터 표적을 보는 바람에 슈팅이 흔들렸다”고 패인을 설명했다.

양궁은 실외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바람과 같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라면 활을 쏘기가 어느 정도는 쉽겠지만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시시각각 변하는 야외에서 활을 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불규칙하게 변하는 바람에 맞추어 과녁에 조준을 해야 하고, 설사 조준을 잘했다 하더라도 화살이 시위를 떠난 뒤에 바뀌는 바람에는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고, 우리는 종종 세계적인 양궁 선수들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양궁에서 신체조건이나 체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정신력이 필요한 것도 이런 탓이다. 이런 양궁의 세계에서 신궁神弓이라고 불리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한국의 김수녕이다. 김수녕은 어떻게 선수시절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수많은 조건들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김수녕은 경기에 임할 때마다 가지는 남다른 마인드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이 말은 방금 받은 낮은 점수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욕심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하려고 하고 또한 어떤 일을 만회하려는 욕심은 우리 마음에서 평정심을 잃게 해 일을 그르치게 한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상대방보다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올림픽과 같은 큰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은 종종 욕심의 덫에 빠질 때가 있다. 자기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마음이 선수들의 평정심을 잃게 하고 오히려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한다.
매번 시위를 당길 때마다 사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대에 서는 마인드가 김수녕을 신궁으로 만든 것처럼 이번 올림픽에는 어떤 경기를 통해서 어떤 선수에게서 이런 마인드를 찾을 수 있을지, 이번 올림픽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은성
월간 <투머로우>에서 기획이사로 마케팅과 홍보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지난 2월부터는 멕시코로 건너가 중남미 지역 총괄이사로 활동 중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자신이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매달 기고하고 있다. 상담을 원하는 분은 이메일 coolces@naver.com으로 문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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