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가 줄 기쁨이 상상된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꽃중년’ 이스마일 코자유수프오을루Ismail KOCAYUSUFOǦLU총장. 신사적이고 자상한 태도가 몸에 밴 듯한 그는 자신이 마케도니아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부산의 한 포럼에서 만난 그를 따라 성균관대학교를 방문하는 버스에 동승했을 때 그 말을 듣고 귀가 의심스러웠다.

“마케도니아라는 나라가 지금 실존하나요? 역사 속의 나라가 아닌가요?”역사에 문외한인 것이 드러나더라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의 세계사 상식에서 마케도니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알렉산더 대왕밖에 없다. 그래서 마케도니아에서 온 총장이 더 궁금했다. 터키 출신이라는 그 총장은 마케도니아 신생 대학교의 총장으로 초빙되어 지금 3년째 국제발칸대학을 이끌어오고 있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1991년 구 유고연방에서 독립했다. 과거에는 오스만 제국과 마케도니아 제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찬란했던 옛 영광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기자 또래의 대학생들은 어떤지 알고 싶었다. 이스마일 코자유수프오을루(길지만 하나의 이름이다) 총장이 있는 국제발칸대학교에서는 마케도니아, 터키, 불가리아 등 15개국에서 온 1,5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학교 이름처럼 글로벌하고 다국적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 학교 분위기 역시 다채롭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준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역사는 짧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마케도니아 교육계의 뜨는 별이라 할 수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진행된 이스마일 총장과의 인터뷰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를 한 입씩 물고 대화를 시작했다.

마인드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스마일 총장은 IYF와 함께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MOU를 체결했다.
마인드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스마일 총장은 IYF와 함께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MOU를 체결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총장 일행들은 말로만 듣던 북한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던 중 조만식 선생의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총장 일행들은 말로만 듣던 북한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던 중 조만식 선생의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자이기 전에 학생이기에 ‘총장님’을 눈앞에 마주한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이지…, 우리 때는 말이야…’ 하는 말을 들으면 맞는 소리여도 괜히 어색한 미소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마일 총장과의 대화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포럼에 참석해 총장님들과 대화하는 중에 현 청소년들에 대한 불평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인터넷만 한다. 자각이 없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현대를 살며 기술 없이 산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분들 역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요. 그런데 세상이 물질화되어 가고 잘못된 사상이 퍼져 있어요. 현대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항상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는 포럼에서 들었던 강연 내용을 빌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은 약한 마음’이라며 ‘학생들 속에 건강한 마음이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많은 것을 교육하지만 바른 성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껏 배운 학문은 부정적인 쪽으로 사용된다. 인류의 유익을 위해 개발한 원자력에너지가 핵무기가 되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스마일 총장은 인성교육이 제대로 실행되어야 함을 줄곧 강조했다.

산 위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오흐리드 호수의 전경.
산 위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오흐리드 호수의 전경.
수도 스코페는 도시 곳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중 제일은 중앙광장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다.
수도 스코페는 도시 곳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중 제일은 중앙광장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다.
다국적 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제발칸대학교.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위한 시험에 열중하고 있다.
다국적 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제발칸대학교.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위한 시험에 열중하고 있다.

끈끈했던 이웃사랑, 제자사랑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스마일 총장 역시 터키문화가 본인의 교육 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어떤 터키인은 자기 나라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터키인들의 생활 속에 담긴 관용정신’이라고 답했는데,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터키와 발칸반도는 오스만 제국 600년 통치 속에 다양한 민족과 유럽, 지중해, 중동, 흑해 문화가 한데 섞여 어우러졌다. 이스마일 총장은 기억을 더듬어 어린 시절, 이웃과 더불어 살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몸이 아파도 크게 어려운 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웃들이 돌보아 주니까요. 카페에 매일 오던 사람이 하루 이틀만 보이지 않아도 걱정을 했고, 특별한 날에는 꼭 손님을 초청했습니다. 제 친척 중에는 불우한 가족에게 남몰래 학비를 대주던 분도 계십니다. 서로를 돕는 일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살았어요.”
 이스마일 총장에게는 대학시절 잊지 못할 스승이 있었다. 학과 교수님은 수석으로 졸업한 그를 조교로 뽑고 싶었지만, 공부 잘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집안 배경이나 다른 게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불이익 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자신을 지도해준 교수님 덕분에 그는 조교가 될 수 있었고, 이후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교수가 될 수도, 총장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스마일 총장은 그때를 기억하며 마음에 감사함을 품고 있었다.

다섯 손가락이 서로 존중할 때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르고 내릴 때가 되자 이스마일 총장은 마지막으로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한 예화를 들었다.
“사람은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는 다섯 손가락이 있는데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새를 가지고 있어요. 어떤 것은 뚱뚱하고,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아요. 다섯 개가 다 따로 행동한다면 손이 전혀 제기능을 못하겠지만, 손가락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컵도 쥐고 유용하게 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과 문화,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면 하나로 화합할 수 있습니다.”
 다국적 학생들을 지도하는 멘토인 그는 학생들이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학생과 총장 사이에도 세대 차이가 있고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그는 젊은 학생들을 믿고 포용하려 한다.
 “저는 절망을 갖기보다 소망을 품고 싶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지만 법만으로 잡아나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이어달리기 선수가 다음 주자를 믿고 바통을 넘겨주듯이 저도 청소년들을 믿고 그들에게 다음 세대를 맡기고 싶습니다. 이들이 제게 얼마나 많은 도움과 기쁨을 줄지 상상이 됩니다.”
 국제발칸대학교는 ‘내일의 리더를 키운다’라는 교육이념으로 발칸반도를 이끌어 갈 리더들을 키우고 있다. 이스마일 총장은 인성교육을 도입해 마음을 교류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알렉산더처럼 위대한 인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옛날의 따뜻했던 이웃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이스마일 총장은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마케도니아 관광 Tip
아직 남동유럽으로의 여행은 우리나라에 보편화되진 않았다. 최근 이색 관광지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의 여행지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를 하나 꼽자면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 오흐리드와 오흐리드 호수가 있다. 도시와 호수 둘 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맑고 투명한 호수에서 수영하거나 선탠해보길 추천한다. 수도 스코페 역시 화려하진 않지만 도시 곳곳의 유적지와 싼 물가,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휴양하기에는 최적의 여행지이다.

이스마일 코자유수프오을루Ismail KOCAYUSUFOǦLU
아나돌루대학에서 수학을 전공, 학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조교생활을 시작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박사 학위를 위해 6년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다. 터키 오스만가지 대학에서 경력을 쌓던 중 마케도니아 국제발칸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현재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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