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한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송태진 씨가 아프리카를 <투머로우>에 소개한다. 최근 모기로 인해 옮겨지는 끔찍한 질병 때문에 전세계가 모기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케냐에서는 그러한 질병에 어떻게 대처하고 또 가난 때문에 얼마나 불쌍한 죽음이 나타나고 있는지 생생히 알아보자.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무엇일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은퇴하고 자선 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가장 위험한 동물 순위를 게시했다.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가를 기준으로 매긴 섬뜩한 자료다.
 그에 따르면 ‘죠스’로 유명한 상어는 1년에 10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사자에게 100명, 하마에게 500명, 악어에게 1,000명이 죽는다. 의외로 25,000명이 개로부터 광견병에 걸려 사망한다. 뱀은 무려 50,000다명의 삶을 앗아갔다. 이들은 1위를 기록한 최악의 살인범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그것은 말라리아, 황열, 뎅기열, 뇌염, 지카 바이러스 등의 질병을 1년에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감염시키고 그 중 백만 명 이상을 죽게 한다. 그 괴물은 바로 ‘모기’다.

인간과 모기와의 싸움 - 절반의 성공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가 개척된 이후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곳곳에 식민 거점을 건설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풍토병이 이방인들을 막아섰다. 호기롭게 내륙으로 행군을 떠난 탐사대원들은 얼마 못가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며 괴롭게 죽어갔다. 참혹한 괴질의 정확한 원인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풍토병은 유럽인뿐 아니라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떤 이는 적도의 강렬한 태양이 문제라고 했고, 누군가는 악령의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속수무책으로 질병에게 당하기만 하던 인간들은 수백 년이 흐른 19세기 초에 반전의 계기를 만든다. 열대 우림 속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던 탐험가들이 ‘퀴닌’을 손에 넣은 것. 퀴닌은 키나나무에서 추출한 천연 항말라리아 물질이다. 여전히 병의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예방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의 열강들은 퀴닌을 앞세워 아프리카의 해안을 넘어 내륙 지방까지 식민지를 건설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질병들이 모기를 거쳐 감염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모기가 병의 매개체라는 걸 알게 된 인간들은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DDT로 대표되는 엄청난 양의 살충제가 전 지구에 살포됐고, 모기의 서식에 적합한 더러운 물웅덩이를 제거하고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을 개선시켰다. 모기장, 모기향, 모기 유인전등, 모기 퇴치 음파 등 모기를 몰아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었고 혁신적인 제품들이 개발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모기 질병인 말라리아는 한때 북반구와 남반구 전역에서 발병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대지방보다 높은 위도에서는 자취를 감추었고 적도 인근 열대지방으로 범위가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불과 몇십 년 전까지 ‘학질’이라고 불리는 ‘삼일열 말라리아’가 존재했었으나 계속된 방역 활동으로 이제는 북한과 휴전선인근 지역을 제외하곤 말라리아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천연두를 몰아냈던 것처럼 모기 질병과의 싸움에서도 승기를 잡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모기는 여전히 살아있다. 인간이 모기를 죽이는 방법을 찾는 것만큼 모기도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살충제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모기가 몇 분 후 날개를 털고 다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살충제 내성이 생긴 모기는 예전보다 더욱 독하고 위험한 성분을 사용해야 없앨 수 있게 되었다.
 모기에게 붙어살며 전염병을 일으키는 말라리아 원충 또한 더욱 간교해졌다. 한때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 정복의 문을 열어주었던 퀴닌은 이제 힘을 많이 잃었다. 퀴닌을 원료로 한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의 효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제약회사에서는 메플로퀸, 판시다 등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있지만 말라리아 원충도 빠르고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인간은 모기와의 싸움에서 아직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끝나지 않은, 하지만 꽤나 여유로워진 싸움
모기 관련 질병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아프리카인들은 어떨까? 국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그들은 매우 훌륭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다. 깊은 시골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라리아의 발병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학교와 가정에서 보건 교육이 이뤄지며 모기를 피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스프레이 살충제, 액체 훈증 모기향, 테니스 라켓을 닮은 전기 모기채 등 다양한 모기 퇴치 상품들의 인기가 좋다. 모기장은 거의 모든 집에 보급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모기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구호단체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케냐에서는 여성이 임신을 하면 병원에서 모기장을 무료로 지급할 정도다.
 이렇게 모기장이 흔하다보니 재미있게도 본래 용도와 다른 분야에서 모기장이 창의적으로 쓰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빅토리아 호수 근처의 주민들은 구호단체가 나눠준 모기장으로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다. 어린이들은 축구 골대에 새로운 망을 달 때 낡은 모기장을 사용한다. 병아리들은 모기장이 둘러쳐진 닭장에서 모이를 먹는다. 어느 재봉사는 모기장으로 혁신적인 옷을 디자인하기도 했고, 고물 장수는 모기장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커다란 주머니를 만들었다. 다른 천으로 그처럼 큰 주머니를 만든다면 굉장히 비쌌을 게 분명하다. 모기장은 본의 아니게 아프리카인들의 건강뿐 아니라 생활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케냐의 대도시 나이로비에 사는 버나드에게 평소 모기장을 잘 사용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집에 어린 아들이 있어서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늘 모기장을 치고 잔다고 말했다. 그런데 밤에 TV 보는 게 불편하다고 한다. 모기장 안에서 TV를 봐야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고. 과거 풍토병의 정체를 몰라 악령의 저주로 여기며 두려워하던 시절과는 달리 오늘날아프리카인들은 TV 볼 때 방해하는 귀찮은 악동 같은 이미지로 말라리아를 대한다. 모기와의 싸움에 익숙해지며 그들은 정확한 지식을 숙지하게 되었고 모기의 공격을 여유롭게 대처하고 있다.

말라리아 퇴치의 진짜 문제는 빈곤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의 케냐인 10여 명에게 마지막으로 말라리아에 걸린 게 언제인지 물어봤다. 나의 예상과 다른 놀라운 대답을 들었다. 최근 5년 내로 말라리아를 앓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은 9년 전에 걸렸었고, 다른 한 명은 살면서 한 번도 말라리아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비교적 최근에 겪은 사람들 역시 그 병에 늘 시달려 온 것이 아니라 수 년에 한 번 꼴로 드물게 만난 것이었다. 몇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한 확률이다. 해마다 한 번 이상은 찾아오는 감기나 설사 따위의 질병보다 발병률이 현저히 낮다.
 실제로 성인이 된 후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성인들은 모기 관련 질환에 대한 지식이 있어 예방을 할 수 있고, 말라리아 발병 시 몸 상태를 경험으로 알기에 검사를 받고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말라리아로 죽는 경우는 검진을 받지 않고 참다가 병을 키운 경우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치료를 받고 회복 된다.
 그렇다면 1년 동안 모기에게 희생당하는 100만 명에 관한 엄청난 통계는 어떻게 만들어진 수치일까? 안타깝게도 그 사망자의 대부분은 어린 아이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다.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없이 하루 벌어 간신히 하루를 사는 빈곤층. 그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가난한 부모는 아이를 보살펴주고 싶지만 육아를 감당할 만한 돈이 없다. 그저 없는 살림에도 건강히 자라주길 막연히 바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자고 있는 요람에 쳐진 모기장의 작은 틈으로 모기 한 마리가 들어오고 아이는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감염된다. 며칠 후 아기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는마을의 약국으로 향한다. 열이 펄펄 나는, 울 힘도 잃어버린 조그만 아이를 안고 도착한 약국. 약사는 아이가 말라리아인 것을 직감하고 피 검사를 해보자고 하지만 빈곤한 부모는 피 검사비 50실링(약 550원)이 부담됐다.
 부모는 그래도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 약사에게 약이라도 한 번 보여 달라고 말한다. 약사는 말라리아 약을 꺼내며 가격을 알려준다. 80실링... 우리 돈900원이 못되는 적은 돈이다. 피 검사비와 약값을 합하면 130실링이 필요했다. 고작 1달러 남짓한 돈이지만 가난한 부모는 그 돈을 꺼내길 주저했다. 약을 사면 온 가족이 굶어야하고 당장 필요한 공금을 밀리게 된다. 내일 남편이 일터에 갈 때 버스를 못 타고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말라리아 약을 살지 말지 고민하던 부모는 문득 어쩌면 아이의 병이 말라리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으레 아프다 낫다를 반복하지 않던가. 지금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일 뿐 말라리아는 아닐 것이다. 며칠 전까지 건강했던 아이니까 조금만 잘 먹고 잘 자면 병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부모는 약사에게 말라리아 약 대신 5실링(50원 정도)짜리 진통제 ‘파나돌’을 달라고 말한다. 약사는 숨을 헐떡이는 아이의 상태가 불안했지만, 눈앞의 꾀죄죄 한 손님이 말라리아 약을 살 돈이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파나 돌을 꺼내준다. 집에 온 부모는 아이에게 진통제를 먹이며 건강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말라리아는 진통제로 치료되지 않았다. 며칠 후 아이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단돈 1달러가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 아이는 말라리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케냐에는 장례식을 거하게 치르지 않으면 죽은 이의 영혼이 저주를 내린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해도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부모는 빚을 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천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아기의 장례를 치른다. 일주일이 넘도록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하루 종일 제공되는 고기와 술을 먹으며 하객들은 귀가 찢어질 듯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이렇게 유쾌하게 장례식을 치러야 죽은 이의 영혼도 즐겁게 명계로 간다고 여긴다. 결국 안 그래도 가난하게 살던 부모는 1달러짜리 말라리아 약을 사길 주저하다가 아이도 잃어 버리고 장례비용 수천 달러를 빚으로 얻으며 더욱 가난해지고 만다. 가난이 더 큰 가난을 낳는 슬픈 현실이다

1달러에 불과한 말라리아 약조차 살 돈이 없어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으며,가족들은 빚을 내어 장례식을 치르는 가난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1달러에 불과한 말라리아 약조차 살 돈이 없어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으며,가족들은 빚을 내어 장례식을 치르는 가난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모기에서 자유로워질 아프리카
이것이 말라리아로 인해 1년 동안 발생하는 사망자 백만 명을 둘러싼 흔한 이야기다. 간단한 통계 숫자 뒤에 감춰진 비극이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수없이 벌어진다. 말라리아가 너무나 치명적이고 무서운 질병 이어서 사람이 그토록 많이 죽는 게 아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모기와의 싸움에 익숙해졌고 막아낼 방법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난은 그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말라리아가 퇴치되기 위해 서는 먼저 그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리아를 완전히 이길 수 없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지난해 12월부터 아프리카 케냐 GBS TV방송국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느낀 경험들을 그의 따뜻한 필치로 소개한다.
쏭태의 생생한 아프리카 이야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impo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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