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딸 현경이가 대학에 들어갔다. 인천에 있는 대학이라 우리 집이 있는 고양시 덕양구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가려면 세 시간이 걸린다. 마침 딸의 친구들 중에도 인천의 대학에 다니게 된 학생이 둘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두 시간 반이 걸린단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나 하숙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어느 날, 딸과 그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이 집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구나. 학교 가까이에 방을 얻어 학교에 다니면 시간도 아낄 수 있고, 등하교 때 만원 버스나 전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여러 모로 편할 테지. 하지만 먼 곳에서 통학하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야. 사람들은 흔히 쉽고 편하고 단순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어렵고 부담스럽고 복잡한 삶이 우리에게 더 유익할 때가 많단다.”
 물론 집에서 학교까지 가까우면 시간이 적게 들 테지만, 사람의 심리상 그렇게 여유가 생긴 시간을 반드시 유용하게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유를 부리다 삶이 나태해지고 급기야 생활의 패턴마저 깨지기 쉽다. 실제로 학교까지 걸어서 5분 거리에 산다는 어느 대학생에게 물어 보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까우니 그만큼 등하교 시간이 절약될 텐데,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니?” 그러자 그 학생은 “수업 시작 30분 전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가방 챙겨 뛰어갈 때가 많아요. 전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를 떨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늦잠을 거든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결국 딸과 친구들은 내 말을 따라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아침 9시 수업에 늦지 않게 가려면 적어도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해 6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갖고 놀거나 TV를 보는 습관이 사라졌다. 또 버스나 전철에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알차게 쓸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예습·복습을 한다고 했다. 자칫 길에 버려질 시간이 유용한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언젠가 은사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 반찬으로 미역이 나왔다. 미끌미끌해 쇠젓가락으로는 잘 집히지 않았다. 미역을 집는 데는 꺼칠꺼칠한 나무젓가락이 제격이다. “이걸 써보시지요”라며 나무젓가락을 권해 드렸지만 은사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잘 안 집히면 어떤가?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먹으면 되지.”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같은 일을 해도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손쉽고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편해질수록 만족하기보다 더 편한 것을 찾는다. 그러는 동안 마음이 점점 약해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게 된다.
 현대인의 필수품 스마트폰에는 계산기, MP3 플레이어, 웹브라우저 등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어 매우 편리하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골똘히 생각하고 책을 뒤지거나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며 답을 찾는 일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만 하면 금방 답이 나오니 말이다. 그러나 검색해서 찾은 지식은 내가 고생해가며 터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 잊어버려도 금방 다시 찾아보면 되니까 귀담아 듣거나 집중해서 머리에 담아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을 점점 기계가 대체하고 있는 요즘, 이제는 생각하는 것마저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한번은 새벽 3시가 넘었는데 딸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뭘 하느냐?”고 물어보니 과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 하루에 왕복 여섯 시간씩 들여가며 학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아껴 쓰려고 노력하는데도 말이에요. 그냥 가까운 데서 학교에 다니면 안 될까요?”라고 하소연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그래, 힘들지? 네가 힘들 걸 알면서도 아빠가 먼 곳까지 학교를 다니게 한 건 네가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의 힘을 키우길 바라기 때문이야. 늘 똑같은 무게의 아령만 든다면 근육은 어느 정도 이상 강해지지 않는단다. 더 무거운 아령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근력이 강해지듯, 마음의 힘도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강해지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얻은 마음의 힘은 네가 나중에 인생에서 만날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아빠는 그 마음의 힘을 너에게 길러주고 싶었단다.”
 내 말에 딸도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대학생이 된 지도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났다. 전에 비해 딸의 마음이 훌쩍 자란 것이 느껴진다. 어렵고 하기 싫은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뿐 아니라, 작은 일 하나도 깊이 생각하며 처리하는 것이 보였다. 크고 작은 부담들과 맞서 싸우는 동안 마음이 강해진 것이다. ‘입에 써야 약이 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마음은 어려움을 뛰어넘으면서 강해진다. 편하고 쉬운 것만을 좇아 사는 삶은 강한 마음을 가질 기회를 놓치며 사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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