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창단 후 이탈리아 리바 델 가르다 합창콩쿠르,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석권하며 세계 최고로 발돋움한 그라시아스합창단! 그라시아스의 대표공연인 크리스마스 칸타타 2막에서 주인공 앤드류 역을 맡아 섬세하고 천진난만한 소년의 감성을 노래로 표현한 소프라노 이수연이 얼마 전 독창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성취감도 크지만, 더 큰 꿈이 있기에 도전을 멈출 수 없다는 그녀를 만났다.

지난 6월 3일 저녁 7시 30분, 소프라노 이수연의 독창회가 열리는 경기도 화성시 태안로의 화성아트홀. 1층 486석 2층 196석 규모의 공연장에는 빈자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공연의 막을 여는 그라시아스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박쥐’ 서곡 연주가 끝나고, 소프라노 이수연이 무대에 올랐다. 민트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가 부른 첫 곡은 독일의 낭만주의 음악가 슈만이 작곡한 ‘술라이카의 노래Lied der Suleika’. 연이어 이탈리아 가곡 ‘입맞춤 Il bacio’을 불렀다. 사랑하는 여인의 설렘을 표현한 경쾌한 멜로디와 가사내용, 이수연 특유의 청량한 음색이 민트색과 잘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에 나오는 아리아 ‘지금은 날 비웃고 있지만’. 그리고 각종 배경음악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슈베르트의 ‘송어’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삽입곡 ‘I Feel Pretty’까지 그녀가 이날 부른 노래는 모두 열네 곡이었다. 아우르는 언어도 한국어, 영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일곱 가지나 된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풍성한 레퍼토리는 그간 그녀가 갈고닦은 음악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케 했다. 작고 가녀린 체구에서 나온 맑은 소리는 홀을 가득 채웠고, 마음이 동한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동료에게 귀를 열 때 음악도 자란다
독창회가 끝나고 2주 뒤, 인천에서 한창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소프라노 이수연을 만났다. 우선 독창회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성악가들에게 그간 자신이 습득한 음악을 선보이는 독창회는 특별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성악가는 독창회를 ‘관객과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수석지휘자인 보리스 아발랸은 ‘독창회는 큰 축제이지만 어려운 시험’이라고 푼다. 합창과 달리 개인의 기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리여서다.적어도 한 시간은 오롯이 자신의 음악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밀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곡을, 완벽에 가깝게 연습해야 한다.

 “제게는 이번 독창회가 제 한계를 뛰어넘는 큰 도전이었어요. 열네 곡이나 되는 노래들을 가사와 멜로디까지 정확하게 외워야 했으니까요. 그라시아스가 세계 최고의 합창단으로 도약하면서 관객의 기대도 높아진 만큼, 한 곡 한 곡 최고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최선을 다했는데도 단장님이나 선배 단원들로부터 ‘아직 많이 부족하다’ ‘실망스럽다’ 등의 반응이 돌아올 때면 섭섭함에 남몰래 눈물을 쏟기도 했다는 이수연.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관객을 위해 최고의 음악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동료들의 격려가 자신을 일으켜 세웠단다.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지만 마음은 늘 함께인 부모님과 독창회 후 기념촬영.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지만 마음은 늘 함께인 부모님과 독창회 후 기념촬영.

 “수첩을 준비해서 단장님이나 동료 단원들의 조언을 빠짐없이 받아적었습니다. ‘발성은 이렇게 해라’ ‘이 노래의 이 대목은 이렇게 표현하라’는 음악적인 요소들 외에 입장할 때 걸음걸이나 드레스를 손으로 잡는 방법 등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요. 그렇게 하나하나 고쳐가는 동안 제 음악이 발전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는 동료들의 쓴 소리도 기쁘게 받을 수 있었어요.”

확신이 있으면 수만 명 앞에서도 떨리지 않아
이수연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음악을 좋아한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를 시작했고,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목련화’ ‘비목’ 같은 가곡이나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피아노는 잠깐 배운 적이 있지만, 집안사정이 어렵다 보니 성악은 배울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주변에 지도해줄 분도 안 계신 데다 개인교습을 받으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는 화학을 전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의 권유로 응시한 그라시아스 오디션에 합격해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경험이 없는 그녀가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발성법, 시창視唱(악보만 보고 노래하는 훈련), 청음聽音(음을 듣고 악보에 적는 훈련) 등 음악이론의 모든 것을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다. 클래식음악에 꼭 필요한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까지 배워야 했다. 올해는 그녀가 입단한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음악이라는 외길만 걸어오기가 지겹거나 힘들지는 않았을까.
 “그런 적은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제기량이 성장하지 않고 멈춰 있을 때가 더 힘듭니다. 오페라의 아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노래에 감정을 실어 부르려면 절대로 뜻을 대강 훑어서는 안 되고, 우리말처럼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철저히 공부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외국어 가사를 모두 암기하느냐?’고 신기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정말 자다가 눈을 떠도 입에서 줄줄 나올만큼 무조건 외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곡 하나를 놓고 적어도 백 번 이상 ‘이 대목은 어떤 악상樂想으로 표현할까?’를 연구한다는 이수연. 문득 지난해 7월 5일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IYF 월드캠프 개막식이 생각났다. 4만 명이 넘는 관객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린 가운데서도 그녀는 조금도 떨리는 기색 없이 하와이 민요 ‘Pearly Shells진주조개 잡이’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렇게 많은 관객이 모인 무대라면 저도 당연히 떨립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그런 긴장을 경험하는 것은 어쩌면 좋은 일 아닐까요? 제가 부를 노래를 충분히 연습해서 ‘이거다’ 하는 확신을 얻으면 큰 무대 앞에서도 대범해지고, ‘어떻게 하면 이 노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더군요.”

다시 찾은 음악의 꿈, 새로 얻은 최고의 꿈
소프라노 이수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그녀가 지난 10년 동안 최고의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던 시간들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독창회라는 큰 산을 넘었다는 성취감보다, 오히려 그 산을 넘을 수 있게 끌어주고 뒷받침해 준 단장님과 동료 단원들, 스태프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짙게 배어나왔다.
 “이번에 저희 그라시아스 합창단·오케스트라에서는 저까지 모두 열네 명의 단원들이 3주에 걸쳐 독창회·독주회를 열었습니다. 대개 독창회나 독주회를 하면 메인 가수·연주자 외에 피아노 반주자 한 명 정도가 와서 단출하게 공연하는 경우가 많대요. 하지만 저희 그라시아스에서는 40여명의 관현악 연주자들이 늘 함께 다니며 협연하니까 공연장 관계자들도 그 규모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스케줄이 빡빡해 힘들 법한데도 묵묵히 무대 설치와 철수, 조명, 음향 작업에 함께하는 스태프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접어야만 했던 성악가의 꿈을, 가족 같은 단장님과 동료들을 만나 다시 이룰 수 있었다는 소프라노 이수연. 밝게 웃는 그녀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라시아스에서 활동하는 동안 새로운 꿈이 하나 더 생겼단다.
“그 꿈은 바로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입니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소프라노 ‘에디타그루베로바’ 같은 성악가가 되고 싶어요. 올해로 만 70세인데도 고음을 정말 자유롭게 소화해내거든요.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관객들에게 ‘아, 잘하네~’ 정도의 감흥밖에 주지 못하는 가수가 있는 반면, 목소리가 나쁘고 음정이 맞지 않아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가 있잖아요? 그 가수가 슬픈 노래를 부르면 나도 슬퍼지고, 반대로 기쁜 노래를 부르면 나도 함께 기뻐지고…. 그런 가수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이수연은 ‘이만하면 됐다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 말을 들으니 반가웠다. 앞으로 언제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세월의 간격만큼 그녀의 음악은 더욱 무르익고 풍성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프라노 이수연
그녀의 어린시절 사진첩을 보면 유난히 노래하는 모습이 많다. 음악은 그녀의 꿈이자 삶의 일부였다. 그라시아스에 입단한 지 올해로 10년째.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음악을 접는가 했지만, 그라시아스를 만나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된 하루하루가 기쁘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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