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테이너 강사 민진홍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벌던 때보다 수억 원의 빚을 진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서울 강남의 카페에서 만난 민진홍 씨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 보였다. ‘이 사람, 정말 사업실패를 비관해 자살까지 시도했던 사람 맞나?’ 싶을 정도다. 그는 자신이 변화된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행복의 기준을 ‘풍족’에서 ‘만족’으로 옮긴 것, 그리고 당연하게 여기던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한 달 평균수입 6천만 원, 오픈카·고급 스포츠카 등 외제 고급차 세 대 보유,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삶이 아닐까. 민진홍 씨가 그랬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그는 키즈카페, 음식점, 완구 및 과자 수입·유통 등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던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장님이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사장 소리를 들었던 건 아니다. 서른 살 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띈 어느 임원의 급여명세서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세금을 제하고 600만~700만 원이란 액수가 찍힌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한 달에 500만 원만 받아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주차장에 세워진 사장님이나 협력업체 대표님들의 고급승용차도 제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욕망의 끝, 막장드라마는 내 이야기였다

그날부터 그는 ‘어떻게 하면 큰돈을 벌까?’만을 고민했다. 월급쟁이 생활로는 큰돈을 벌 가능성이 1%도 없어 보였다. 결국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장에 사표를 낸 뒤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컨설팅 사업을 시작으로 수입과자 유통, 키즈카페와 어린이 음식점, 완구 판매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여 나갔다’는 것이 그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 사업들은 하는 족족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어느새 그는 자신이 부러워하던 임원들의 열 배가 넘는 돈을 한 달에 벌어들이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마음에 쏙 드는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 결혼도 했고, 자신을 빼닮은 아들도 둘이나 얻었다. 하지만 그의 사전에 ‘만족’이란 단어는 없었다.

“사업이 잘되면서 그토록 갖고 싶던 외제차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얼마 못 가더군요. 그리고 길에 나가보니 같은 브랜드 차가 너무 흔한 거예요. 결국 한 대에 3억짜리 차를 장만했습니다. 당시 그런 차를 가진 사람은 제가 살던 울산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기쁨도 석 달을 넘기지는 못하더군요.”

진홍 씨는 유난히 여행을 좋아했다. 대학생 때도 방학이 되면 항상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사업에 성공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유럽 등지로 40~45일 일정의 휴가를 다녀올 정도였다. 그만큼의 금전적·시간적 여유를 갖춘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나는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욕심은 끝이 없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제 사업에도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영학에 보면 ‘하인리히의 법칙’이란 게 있어요. 큰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지는 게 아니라 사소한 위험이나 사건·사고들을 방치한 끝에 생기는 법입니다. 제가 하던 키즈카페들 역시 경쟁업체들이 나타나면서 손님이 점점 줄고 있었고, 주식투자·레스토랑 사업 등에 손을 댔다가 수억을 날렸지요.”

욕망의 끝은 추락이었다. 돈 욕심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급기야 완구 판매권 소송에 휘말려 수십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물질만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달려온 그의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해 부모님은 평생 모은 재산과 연금을 내놓아야 했다. 아내도 두 아들을 데리고 여수의 친정으로 가 버렸다. 올해 초 발간

한 책 <땡큐파워>에서 민진홍 씨는 그때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예전에 잘나갔을 때 아침드라마를 보며 ‘어떻게 저런 일이 있지? 참 막장이다’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시청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삶 자체가 막장드라마가 되었고, 나는 삶의 마지막 벼랑 끝에 있었다.”

돌이킴의 시간 속에서 ‘감사전도사’로 변신하다

두 달 간을 폐인처럼 지내며 자살을 시도한 것도 여러 차례. 가족도 친구도 직원들도 모두 그를 떠나갔다. ‘어서 빨리 내 돈 내놓으라’며 독촉하는 사람들만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계룡산에서 열흘 간칩거하며, 그는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그는 더 이상 100명 넘는 직원들이 굽신대는 사장이 아니었다. 빚쟁이요, 인생의 실패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속초서 울산까지 13일간 도보여행을 하며 그동안 읽은 책, 들었던 강연과 세미나 등을 되새기면서 ‘성공한 사람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제가 잊고 있던 것은 바로 ‘감사’였습니다.”

무뚝뚝하지만 평생 자식에게 헌신하며 뒷바라지해 온 아버지, ‘쓸데없는 잔소리마시라’며 면박을 주는데도 자식 걱정에 충고를 그치지 않으시던 어머니. 10년 가까이 살면서도 설거지 한 번 도와주지 않았던 아내, 일에 바빠 사흘에 한 번 집에 들어가느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던 두 아들. 이처럼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더, 더, 더’에 집착한 채 살아온 지난날이 몹시 부끄러웠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절망을 딛고 일어설 힘이 솟았다고 한다.

“다른 분들은 저처럼 고통스런 과정을 밟지 않고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감사가 가진 힘, ‘땡큐파워’를 주제로 대중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던 참석자가 20~30명으로 늘었고, 기업체 등에서도 강연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끊어진 마음을 잇는 마법의 주문 ‘감사합니다’

진홍 씨가 강연을 통해 전하는 ‘21일 감사프로그램’의 핵심은 단순하다. 21일 동안 감사일지를 쓸 것, 즉 그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하루 세 가지씩 감사할 조건을 찾아 SNS에 올려 가족, 지인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고작 글 몇 줄 올린다고 삶이 바뀔까?’ 그런 속내를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그는 감사 프로그램의 성공사례를 술술 풀어놓았다.

“하루는 강연을 마쳤는데 어머니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남편과 고2 딸이 사이가 나빠 말 한 마디 안 한 지 2년이 넘었다’는 거였어요. ‘당장 가족끼리 SNS에 감사일지를 써 보시라’고 권해 드렸어요. 나흘째에 딸이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 감사했다’는 글을 올렸는데, 아버지가 ‘그 일로 감사했다니 나도 기분이 좋구나’라고 댓글을 다셨어요. 그렇게 막혀 있던 말문이 트인 거예요. 21일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을 때는 딸이 아버지에게 ‘외식 한번 하자’고 할 정도로 부녀관계가 좋아졌다더군요.”

일본의 다케다제과는 직원들에게 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게끔 독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자를 만들 때면 ‘감사합니다’가 녹음된 테이프를 항상 틀어놓을 뿐 아니라, 하루에 일정한 횟수 이상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한 직원에게는 별도의 상여금까지 지급한다. 그래서일까, 다케다제과는 일본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또 국내의 ‘네패스’라는 기업에서는 기계에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붙여놓고 직원들이 오갈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네패스는 반도체 생산기업이라 기계가 고장나서 멈추면 하루에 1억 가까운 손해가 나거든요. 재미있는 건 그렇게 한 뒤 고장이 현격히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감사의 위력은 의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성경 데살로니가전서의 구절

에 착안해 ‘감사를 하면 인체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감사하면 낙관, 열정, 활력을 주관하는 뇌 좌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돼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행복감이 증가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감사일지는 결국 상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장場입니다. 그 사람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되니까요. 하루에 세 가지씩 꾸준히 감사일지를 쓰면 사고방식도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감사의 에너지가 세상을 뒤덮길 바라며

땡큐테이너로 활동한 지 1년 넘게 지난 지금, SNS상에서 운영되는 감사일지 모임은 그가 아는 것만 160개가 넘는다. 2천 명이 넘는 회원들이 매일 감사일지를 올리고 있다. 감사일지를 공유하면서 소원하던 가족관계가 회복되고, 서로 반목하던 직원들이 소통하고 단합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올라올 때면 더없이 신이 난다는 민진홍 씨. 하지만 감사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는 자신이라고 털어놓는다.

“아내가 저를 보며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전까지 ‘가장은 돈만 벌어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일에 빠져 산 나머지 가족들에게 많이 소홀했거든요. 아버지 학교에도 등록해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지도 배우고 틈틈이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돕습니다.” 진홍 씨는 현재 본인이 강연을 하는 것외에 자신을 대신해서 감사의 에너지를 전할 ‘땡큐테이너’들을 길러내는 일에도 열심이다. 초등학교 교사, 대학 교수, 의사, 마술사 등 다양한 직업 출신인 땡큐테이너의수는 현재 34명. 앞으로 10년 안에 전국에1만여 개의 감사소모임을 만들고, 해외로도 활동영역을 넓혀 자신이 경험한 ‘땡큐 파워’를 널리널리 전하는 것이 그의 최종목표라고 한다.

한 시간에 걸친 민진홍 씨와의 인터뷰는 바닥을 친 뒤에야 자신을 끌고 다니던 욕심을 내려놓은 한 사람의 일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훌륭한 인생코칭 시간이었다.

카페를 나서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보고 나왔기에 마침 우산을 챙겨 갖고 나온 상태였다. 예상보다 빗방울이 억세다 보니 살짝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어 생애 첫 감사일지를 써 보기로 했다. “비가 쏟아지네요. 그러잖아도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데, 비가 온 덕분에 미세먼지가 말끔히 사라져 감사합니다.”

땡큐테이너 민진홍
그의 명함에 적힌 직업은 ‘땡큐테이너’다. 감사를 뜻하는 ‘thank you’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감사전도사를 뜻한다. 강연 때면 그는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사업실패로 수십억의 빚을 진 뒤 욕망을 내려놓고 감사하는 법을 배운 제 인생에 여러분을 대입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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