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도 전쟁중이다⑤

지난 5월 10일, 두 아이돌스타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네티즌들 사이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일주일 전 어느 케이블방송에 출연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제작진은 역사 속 위인들과 유명인들 20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 이름을 맞혀보라는 미션을 냈다. 둘은 축구선수 박지성과 배우 브래드 피트의 이름은 쉽게 맞혔지만, 안중근 의사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제작진이 안중근이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를 힌트로 알려줬지만, 한 사람은 ‘긴또깡’, 또 한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했다.

이 장면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금방 여기저기서 두 사람의 부족한 역사 인식을 탓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두 스타는 삽시간에 네티즌들 사이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먹고 사는 게 연예인 아닌가. 두 사람은 SNS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몇몇 스타들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일일까? 역사인식의 부재는 일반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주진오 교수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본인들에게 폭탄을 던진 인물을 ‘안중근 의사(정답은 윤봉길)’로 알고 있는 비율이 40%라고 한다.

지난 2009년 6월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6.25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역시 충격적이다. 20대 이상 성인 5명 중 2명이 6.25의 발발연도를 알지 못했으며, 그 중 20대의 비율이 56.5%로 가장 높았다.

심지어 북한이 한반도 공산화의 야욕으로 일으킨 6.25를 ‘미국과 소련을 대신한 전쟁’ ‘민족해방전쟁’ ‘남한이 북침한 전쟁’으로 알고 있는 중고생도 30%나 되어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이 크게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미래를 찾고 싶다면 역사를 기억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찬란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역사 덕분이었다. 과거의 실패는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겨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먼저 과거에 비슷한 상황이 없었는지 역사를 참조하고,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이 같은 점에서 미루어볼 때 우리 청년들의 역사인식 부재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자못 염려스럽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안정행정부의 ‘2013 국민안보의식 여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청년들의 안보의식은 건전하고 투철하다. ‘북한이 앞으로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무력도발을 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만 19~29세의 72.3%가 ‘높다’고 답변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도 71.0%가 ‘우리 안보에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막아야 한다’고 답해 북핵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6월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6·25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기꺼이 참전하겠다’고 대답한 20대 남성의 비율은 91%나 되었다.

지난해 8월 북한의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당시 98명의 국군 장병들이 전역연기를 신청했다. 올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 전역연기를 희망한 장병들의 수는 그 다섯 배에 이르는 500여 명으로 늘었다. 군에 다녀온 사람은 안다. 군인이라면 누구나 건강한 몸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가족에게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전역연기를 신청했다는 사실은 후배들만 적과 맞서게 두고 먼저 갈 수 없다는 미안함과 애국심의 표현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올 상반기 ‘태양의 후예’로 신드롬을 일으킨 송중기, ‘제빵왕 김탁구’로 유명한 윤시윤, 아역스타 출신 유승호. 이 셋은 모두 현역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송중기는 육군 율곡부대 수색대대에서, 윤시윤은 대한민국 최강의 부대인 해병대에서, 그리고 유승호는 이기자부대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했다. 그동안 각종 훈련에서 열외되는 등 특혜 논란이 일던 연예병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과감하게 현역 복무를 택하는 것이 스타들 사이에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심심찮게 전해지는 해외 영주권자의 자진입대 소식도 우리 가슴을 시원케 한다.

전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가 있다. 뉴스시간에 앵커가 '오늘 오후에 북한에서 발사한 포탄이 전방지역에 떨어졌다’는 속보를 전한다. 그 뉴스를 본 외국인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큰일났네.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냐?’ 그런데 앵커는 아랑곳 않고 ‘다음 소식은…’ 하며 뉴스를 진행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안보 불감증을 꼬집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동아시아연구원 정한울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북의 도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대응이 과거에 비해 차분하고 성숙해진 증거’라는 것.

이렇듯 투철하고 성숙해진 우리 청년들의 안보의식은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역사인식의 부재는 아쉬운 대목이다. 60년 넘게 끌어온 6.25를 종식시키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려면 뜨거운 가슴과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차가운 머리와 지성을 겸비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아물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낳은 역사는 더욱 깊이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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