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RROW CAMPAIGN 2016 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어라

삶 속에서 더 이상 없어서는 안 되는 경제적 수단 ‘돈’. 하지만 ‘돈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인간성 상실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최근 포털사이트 SNS 고민 상담 코너에도 돈 있으면 우쭐하고, 돈 없으면 고개 숙이는 게 인간사인 듯 눈물짓는 사연이 넘쳐납니다. 20대 한 청년은 80만 원 카드빚을 갚을 능력은 없고, 독촉전화 때문에 자주 ‘자살’의 유혹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돈 때문에 죽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위로의 댓글도 넘쳐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물질의 박탈감 때문에 서러움을 겪을 때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한 편의 기사는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합니다. 한 중년 여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이혼한 전 남편 어머니의 통장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이성 친구에게 차이고, 돈 때문에 부부가 이혼하고, 돈 때문에 겪는 슬픔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돈 때문에 겪는 자존심 상하는 일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평소 절친한 지인으로부터 <마사이 전사 레마솔라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돈 없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하버드까지 들어간 한 청년의 인생 스토리였습니다. 돈이 인간의 가치마저 결정짓는 시대에 그는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다
조지프 레마솔라이 레쿠톤은 아프리카 케냐의 동북부 사바나 출신의 유목민이었지만 하버드까지 들어간 유일한 마사이 족입니다. 마사이 족은 자긍심이 크고 용맹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어릴 적 레마솔라이는 사자를 맞닥뜨리고 혼이 나간 채 줄행랑을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사이 족으로서 얼마나 비겁하고 부끄러움이 많은지를 알게 됩니다. 유약한 레마솔라이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레마솔라이는 인구 10만여 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 부족인 알리알 출신입니다. 그들은 메마른 평원에서 지냈습니다. 평균 37.8도의 무더위로 사막이 펼쳐진 곳에서 농작물의 재배도 어려워서 가축을 키우고 살았습니다. 소, 염소, 양, 낙타, 당나귀 등 가축을 키웠고 가난한 유목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레마솔라이 가족도 하루 종일 가축을 돌보며 지냈습니다.

소수의 인종이라 소외되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을 위해 케냐 정부에서는 학교에 다녀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법으로 한 가족 한 자녀 교육법을 제정했지만 실제로 유목민의 삶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채 성장한 어린 레마솔라이는 어렵사리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학교는 집에서 2주나 걸리는 꽤 먼 곳에 있고, 일곱살 나이에 학교를 찾아 혼자 등교해야만 했습니다. 너무 먼 길이라 방학이 되어야만 집에 올 수 있었던 길. 동굴이나 화물 트럭 짐칸 등에서 노숙하며 몇 날 며칠 걸려 겨우 집으로 오고 갑니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군소리 없이 일어나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입니다. 온종일 먹은 것이라곤 떠나기 전에 음식 조금과 차를 마신 게 전부입니다. 레마솔라이는 그런 날이 비일비재해도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얇은 옷을 입은 그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추워도 그대로 견딜 때가 많았습니다. 신발의 질이 좋지 않지만 그마저도 신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돈이 없는 자신의 형편을 괴로워하고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발이 신발 노릇을 하니까 발이 튼튼해진다’라고요.

그리고 그는 학교에 열심히 다닙니다. 그 이유는 정부 기관에서 알리알 부족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레마솔라이는 그 자신이 ‘언젠가 부족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류 고등학교인 카라바크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식을 배웠지만 부모 형제 앞에서 그런 배움을 뽐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 간의 전통을 사랑했고, 가족과 있을 때는 스스로 마사이 전통 옷을 입고 몸에 구슬을 둘렀습니다.

레마솔라이가 다닌 곳은 케냐 대통령 다니엘 아랍 모이가 후원하는 학교였습니다. 레마솔라이는 축구부 주장 중 한 명이었는데, 하루는 대통령이 학교에 찾아와 그에게 경기에 이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대통령과 한 소년의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축구 시합에 이긴 레마솔라이는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오랜 가뭄과 가족의 가난한 삶에 대해, 마사이 족의 가축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레마솔라이의 가정 형편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점점 학비를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그때 그의 소식을 전해들은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 카바라크 고등학교 학비를 모두 지불해줍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는 오지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소를 운반하는 트럭을 얻어타야 했고 소똥과 오줌으로 범벅이 되는 경험을 자주 해야 합니다. 그런 광경은 마치 돈 한 푼 없는 청년에게 고생길만 열린 것 같이 보입니다.

가난했지만 건강했던 마음
하지만 레마솔라이가 그런 환경 속에서 잃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가난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 건전한 사고를 할 줄 알았던 그는 푸른 초원, 드넓은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여러 변수 속에서 순응하는 마음,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자연환경을 통해 그의 가족은 여러 날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가뭄, 비를 내려받아야 하는 날씨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모자람을 너무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그들에게 전깃불이 되고, 바람은 그들에게 에어컨과 같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빠른 교통수단, 값나가는 전자제품으로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일도 ‘돈’을 지불하고 대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레마솔라이를 보면 문명의 이기심이 오히려 우리에게 마땅히 생각해야 할 마음을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레마솔라이는 미국의 여러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역시 학비가 없어서 어떤 대학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세인트로렌스대학에서 그의 입학을 허락하기 위해 직접 찾아옵니다. 그는 기적적으로 미국 대학에 들어갔고 마사이 족 첫 번째 대학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랭글리학교에 교사가 되었습니다. 결국 마사이 족 최초로 하버드 석사 과정도 밟았습니다. 그는 미국인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가곤 했습니다. 부족들을 향해 교육을 지원하고 후원하도록 권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바랐던 것처럼요.

레마솔라이는 2008년 케냐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돈이 없던 자신의 청춘을 비관하기보다 부족함속에서 ‘남을 위하는 마음’ 하나를 가졌습니다. 레마솔라이는 가난 속에서도 자신이 품었던 소중한 가치와 마음을 지켜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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