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만덕고 '진로의 날'_멘토링2 서수원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전교생 321명 중에 312등 이었습니다. ‘나도 대학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이대로 는 안 되겠다’ 싶어,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정말 그것이 저의 한계였습니다. 대학 입학 후 계속 고민했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면 일단 좋은 성적, 좋은 대학 등 수많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해보니 아버지가 저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가족을 위해 궂은일을 묵묵히 하셨는데,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니 저는 더욱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나’로 계속해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제가 가진 삶의 태도나 방식으로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충분히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깊은 고민 끝에 저는 정말 나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내려놓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배워 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아이와의 인연, 내 인생의 꿈이 되다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고민 끝에, 2008년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이 있는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1년동안 해외봉사를 다녀오고자 결정했습니다. 모잠비크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쓰는데, 저는 ‘Hello? I’m fine!’ 수준의 언어만 구사하던 상태여서 몸으로 하는 봉사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모잠비크 국민은 에이즈, 빈부 격차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흙먼지가 날리는 바닥에 나뭇가지로 집을 지어 놓고 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천 평짜리 수영장이 딸린 집 옆에, 나뭇가지로 집을 지어놓고 12명 정도가 모여 살던 집에 현지인 친구가 살았습니다.

망고 철에는 하루 종일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따먹기도 하고, 망고뿐만 아니라 오렌지, 코코넛, 탄제린 등의 다양한 과일을 따 먹고 레몬을 따서 주스를 만들어 먹기도 하며 재밌게 지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현지의 한 꼬마 아이를 알게 됐어요. 그 꼬마 아이는 유독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하고 가까이 오질 않았어요. 하루는 이 꼬마 아이 혼자놀러 와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기는 심각한 병이 있어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꼬마의 할아버지도 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저는 순수한 눈망울을 한 아이를 보며 고민이 생겼습니다.

더 넓은 무대, 더 넓은 세계로 꿈의 날개를 펼치다
내게 순수한 미소를 전해준 이 아이들은 소망 없이 살아가는데, ‘그들과 상관없이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을 잡고 편하게만 살아간다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행복할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 꿈은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어떤 직업을 갖는 게 아니었습니다.

해외봉사를 통해 저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큰 인생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해외봉사를 다녀와서는 과에서 1등도 했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다녀온 친구들과 ‘허준’이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준비하여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한국 배우로 공연도 하는 뜻깊고 멋진 경험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봉사 정신을 품자, 저는 더 넓은 세계를 더 넓은 무대로 삼아 꿈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2009년, 러시아 연해주 지방으로 봉사하러 떠난 굿뉴스코 단원들과 함께 고려인 탐방을 하며 고려인 할머니를 도와 영하의 날씨에 밭일을 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감기에 심하게 걸려 힘들기도 했지만 제 인생에 의미 있는 그림들을 하나둘씩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게 도전 정신을 가르쳐 준 해외봉사
그리고 주변의 권유로 브라질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포르투갈어’ 전공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6개월 만에 상파울루의 한 사립대학교 포르투갈어과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브라질의 대학들은 대학마다 자체 시험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외국인전형 프로그램이 없어서 브라질 사람들과 똑같이 입시를 봐야 했습니다. 포르투갈어(국어), 수학, 영어, 역사 등의 객관식 시험과 논술 시험을 치렀는데, 논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합격했습니다.

집안 형편으로는 비행기 삯을 마련하기도 어려웠는데 해외봉사를 통해 배운 도전정신이 제 삶에 빛을 발하게 해주었습니다. 아르바이트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주상파울루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우리 기업 브라질 진출 지원 센터’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우고 싶은 꿈
그 후에 중남미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인 브라질의 상파울루대학교에서 교환학생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랭귀지트 레이너스’라는 회사에 상파울루 지부 한국어 강사로 등록되어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지식경제부 주최 포르투갈어 말하기대회에서 은상, 외교부 주최 포르투갈어 말하기 대회에서 금상을 탔고, 중학교 영어 수업시간에 한번도 깨어있던 적이 없던 내가, 전국 대학생 영어말하기대회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대상인 부산광역시장상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영어를 잘 구사할 줄 모르지만, 제 실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불과 몇 년 전에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남아 가정을 이루는 것조차 꿈이어야 했던 저에게 특별한 꿈이 생겼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병원이나 학교를 짓고 운영하고 싶습니다. 삶의 존재 가치에 대해 사고하고 삶의 태도를 전환한 덕분입니다.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공부를 하고 꿈을 꾸게 되니, 생각지도 못한 더 넓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수원
부산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 졸업. 2008년 모잠비크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그는 삶의 변화를 입고 다채로운 경험을 해왔다.

강연에서 나는 ‘바보이다’ 라고 하셨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과 부딪히고 소통하면서 자신을 가꾼 인생 강연이 너무 멋있었다. 아프리카에 병원 짓기라는 꿈이 너무 아름다워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학년, 고영현

해외봉사에서 얻은 서수원의 커리어 스펙
2010년 브라질 우니싼따나 Uni Sant'Anna 대학 합격 2011년 입학, 주상파울루 대한민국총영사관 근무. 2012년 지식경제부 주최 포르투갈어 말하기대회 은상. 2013년 상파울루대학교 교환학생. 2013년 외교부 주최 포르투갈어 말하기대회 금상. 2013년 IYF영어말하기대회 부산울산경남본선 대상. (부산광역시장상) 2014년 포스코브라질 진출팀 어학강사. 2016년 부산광역시 시민통역서포터즈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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