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인 (대구보건대학교 간호학과 4학년)

고등학교 재학 당시 어느 날, 아버지께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청천벽력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말기신부전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위독하다고 했습니다. 평소 건강하셨던 분이었기에 가족 모두가 믿기 힘들었고 당사자인 아버지께서 가장 힘들어하셨습니다. 몇 시간씩 누워서 몸에 있는 혈액을 다 걸러내는 투석을 일주일에 3~4번 하는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 기적적으로 지인분이 신장을 기증하여 아버지는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매달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매일 적지 않은 양의 약을 드셔야 하는 등 평생 동안 해내가야 할 과제가 주어진 편찮은 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위해 매일 아침 출근길을 나섭니다.

박혜인 장학재단과 함께한 나눔의 기쁨을 전도하며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현재 ‘메이크 어 위시재단’의 대학생 소원 정기팀으로 활동하며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도출하고 꿈을 이루어주는 키다리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박혜인 장학재단과 함께한 나눔의 기쁨을 전도하며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현재 ‘메이크 어 위시재단’의 대학생 소원 정기팀으로 활동하며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도출하고 꿈을 이루어주는 키다리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아팠던 시기 속에서 피어난 꿈
저희 가족에게 버팀목과 같았던 아버지가 쓰러져가고 있을 때 그런 기색조차 몰랐던 제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때부터 내 가족은 아프게 할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간호사라는 꿈을 가졌고, 열심히 공부하여 간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언니와 동생 그리고 저의 교육을 책임지기에는 많은 부담과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밤낮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꼬박꼬박 모은 돈을 등록금과 생활비에 보탰습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학업에 매진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역시나 다른 친구들보다 모든 방면에서 뒤처졌고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생각했던 대학생활과 현실생활은 달랐고 아르바이트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나 한심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고 어쩔 수 없이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졸업하고 갚으면 된다며 괜찮다고 하셨지만 어린 딸에게 빚을 안겨주었다는 생각에 굉장히 미안해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욱 죄송스러워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업에 집중을 하니 2점 초반대였던 점수가 4점 대로 올랐고, 한국장학재단에서 실시하는 사랑드림나눔 장학금 장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비보다 훨씬 값진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을 도울 방법이 아르바이트 밖에 없을까?
고아소녀 주디의 소중한 재능과 꿈을 함께 지켜주었던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를 아시나요? 동화 밖 세상에서도 키다리 아저씨는 존재했습니다. 저는 한국장학재단 주최로 한국가스공사에서 실시한 온누리 장학생에 선발되고 본사에 초대되어 장학증서도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저처럼 학업을 이어나가기가 부담되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따뜻한 장학금이었습니다.

한국가스공사에서는 사회공헌사업인 ‘온누리사업’을 통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겨울철 난방유, 연탄 등 지원부터 지역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 사업까지 추진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사장님께서는 저희에게 회사내부를 구경시켜주며 한국가스공사에서 하는 일을 친절히 알려주셨고 식사도 같이 하며 장학금을 받은 이들에게 칭찬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돈을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에 ‘키다리 아저씨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사회의 온정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한국가스공사에서 장학금을 받고 본사에 방문하여 부사장님도 만나고 신문에도 실렸다고 하니 부모님께서는 저를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아르바이트만이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때에 느꼈던 절망과 다르게 가족 모두가 행복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난치병 아동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Wish Day’파티를 열었다. 제주도 여행을 소원으로 정해 미리 가고 싶은곳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소망을 빌었다.
난치병 아동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Wish Day’파티를 열었다. 제주도 여행을 소원으로 정해 미리 가고 싶은곳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소망을 빌었다.

나눔을 나눔으로 되갚다
이전에는 대출로 인한 엄청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공존했습니다. 속으로는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을까?’라며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그날 이후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니 나보다 못한 상황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에서 멈추지 않고 저는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그 첫 번째로는 소액의 후원을 매달 지원했습니다. ‘한국헬프에이지’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를 겪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하여 노인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극복하도록 노인자조모임을 전국적으로 형성하여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노령화 되면서 겪는 가슴 아픈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저소득층의 노인들과 독거노인을 돕고자 하였습니다. 많은 금액을 후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문제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나눔 나눔이 모여 제가 느꼈던 큰 기쁨으로 어르신들에게 다가 갈 생각을 하니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봉사활동에 많은 관심이 생겨 ‘메이크 어 위시재단’에서 실시하는,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꿈을 이루기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제한이 많이 따르는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것입니다.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따뜻함을 나누는 행복함이 그 힘든 과정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지원 사업을 알면서 지역 아동센터에 나가 저소득층 초등학생에게 교과지도를 해주며 인생의 멘토로도 활동했습니다. 초등학교라는 사회에서도 누구는 과외를 받으며 학원까지 다니지만 누구는 급식비를 내기도 어렵다는 현실이 서글펐습니다. 그러한 친구들의 멘토가 되어 수학 공식, 영어 단어 하나보다 더 값진 따뜻한 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후원도 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나누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나눔의 실천, 그보다 값진 일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편찮으신 아버지를 보면서 다시는 가족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간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은 어린 제가 감당하기에는 절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장학재단과 한국가스공사에서 나눈 베풂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뀌었으며 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간호사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키다리 간호사라는 별명이 붙을 때까지 제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가겠습니다. 이 글을 보며 저와 같이 현실에 절망해 있을 친구들에게 희망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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