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드레스를 벗어라_상담 Q&A

한 부모님이 속이 상해서 편집부로 문의를 해왔습니다. 자식이 시큰둥하거나 대화가 안될 때 ‘자존심이 상한다’며 속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대학생이 된 자녀를 여전히 아이같이 느끼는 부모. 서로 동상이몽을 하는 듯합니다. 상담가로 활동 중인 강정곤(국제마인드교육원 교육위원) 씨와의 상담 코너를 통해,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녀를, 그리고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려드립니다.

[아들] 제가 부모님의 자존심을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 건가요? 제가 볼 때 부모님은 자존심이 강하신 편입니다. 평소 저는 소심한 편이라 마음 속 이야기를 잘 못하는데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나면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고민은 제쳐 두고 “옆집 누구는 어떻더라, 성적이 얼마더라. 나는 너에게 모자람 없이 다해주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르냐?”부터 저를 애처럼 대하시는 엄마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입을 닫곤 합니다. 우리 엄마는 언제까지 그러실까요? 그리고 왜 저를 믿지 못하고 그렇게 잔소리만 할까요?

강정곤: 꾸중하시는 부모님을 향해 반항하고 싶은 그 마음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그 마음을 잘못 처리함으로써 문제가 되고 있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부모와 갈등 속에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갈등을 치유하고 개선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기술이며 10대와 20대는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든 서로 상처와 오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가 없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고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일 겁니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와 자식 사이는 어떨까요? 예외 없이 이 사이에도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나이 차이가 약 30살정도 납니다. 이런 나이 차이를 ‘세대차’라고 부릅니다. 부모와 자녀가 살아온 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세대차로 인해 서로의 마음이 잘 흐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자녀를 볼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걱정하고 염려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 자식들의 귀에는 그 말이 관심보다 간섭과 잔소리로 들려 짜증을 내고 반항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모와 자식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에는 자주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고 이야기하면서 나눠야 합니다. 우리 학생은 부모님과 마음의 대화가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로 윽박지 르거나 자신만의 생각을 주장하며 화를 내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가 중요합니다. 오늘날은 가족 구성원이 서로 바빠서 대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갑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로의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서로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를 알기 위해 대화가 필요합니다. 부모님은 우리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

니라 학생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몰라서 표현을 잘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갈등이 점점 쌓이다 보니 부모님을 향해 마음의 문과 입을 닫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대학생 MT 때 속리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한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학생은 아버지가 싫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권위주위적이라 대화하기가 어렵고 공감하기도 쉽지 않아서 적당히 마찰 없이 거리를 유지한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진심으로 아들을 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만난 적 없이 자신이 만들어놓은 아버지의 이미지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와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그 결과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같이 대화하는 동안 학생은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며 대화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떨어져 남남처럼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간에 갈등이 일어나면 서로 마음을 알 때까지 계속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를 멈추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엄마] 아들이 고등학교 때 이성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저는 아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해 말렸는데, 그게 잘못된 것일까요?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이성을 사귀어도 제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젠 엄마가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하고 예전과 달리 무뚝뚝해져버린 아들에게 서운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듣고 대답하던 아들이 점점 말이 없습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저는 여전히 아들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요.

강정곤: 엄마의 입장에서 변해가는 아들을 보면서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많이 섭섭함을 느끼고 계시네요.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실망감도 들고요. 그런데 자식들이 변해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성장을 시작합니다. 성장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마다 나타나는 특성들이 다르죠. 그러나 부모는 자녀의 성장과 상관없이 자식을 항상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우스운 이야기로 80세 된 할머니가 50세 된 아들과 버스를 타면서 버스 요금을 내며 “어른 하나, 애 하나요”라고 말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는 부모의 마음에서는 자식이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이 돌봐 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어린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한 발 물러나 지켜보고 격려해주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자녀는 나름대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부모는 혹시 자식이 잘못될까 걱정하면서 자녀를 통제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간섭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아들의 입장과 마음을 생각지 않는 걱정과 조언은 오히려 대화를 차단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는 많은 10대와 20대들과 자주 상담하는데, 어느 날 고민이 있다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3인 아들 녀석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는데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부딪히는 문제로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날 아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아들아, 너를 사랑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해도, 아빠나 엄마가 다 잘하는 것은 아니란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마치 초보운전자와 같아서 실수하기도 하고 잘못할 수도 있단다. 그러니까 네가 마음에 문제가 되는 무슨 일이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거야.”

그날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다보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경쟁 사회 속에서 늘 바쁘고 여유 없이 일에 치이며 살다보니 가족 간에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음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 생활양식, 기호, 취미 등이 다양해짐에 따라 주변 사람들 간에 갈등의 요소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대화를 하며 상대의 진심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대할 때 행복한 가족, 조화로운 가족관계가 이뤄지고, 더 나아가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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